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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김대중vs김영삼, 라이벌 시대는 3당 합당때 이미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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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형의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vs김영삼>/왕의서재/2011년

“오랜 동지였고 경쟁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고 하니 정말 마음이 아프다. 평생을 함께했다. 화해도 경쟁도 없는 40여년을 함께했는데…” 2009 8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이 서거했을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YS)은 이런 말로 평생의 라이벌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편 이보다 일주일 전인 810 DJ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은 YS는 두 사람이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제는 화해한 것으로 봐도 좋다”는 말로 라이벌 시대의 종언을 고했다. 누구 맘대로
?

평생을 동지이자 라이벌로 경쟁해 온 DJ YS는 분명 한국 정치사의 라이벌임에는 틀림없다. 또 두 사람의 라이벌 관계는 한국 현대 정치사와 맥을 같이 하기도 한다
.
'
양김'이라는 말이 더 친숙한 두 사람의 라이벌 관계는 여러 면에서 마치 숙명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출생지역, 집안내력, 성장 배경, 외모성격, 정치 스타일 등등
...

그러나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자신의 반쪽이 무너져 내렸다며 애통해 하던 DJ는 그 슬픔이 너무나 컸던지 채 100일도 못되어 아끼던 후배 정치인의 뒤를 따라 영면에 들고 말았다. 이 때 언론들은 DJ 개인의 정치역정 뿐만 아니라 YS와의 50년 라이벌 관계가 끝났다는 보도도 비중있게 다뤘다과연 그랬을까? 양김 중 한 사람이 죽어서야 라이벌 관계는 끝이 났을까? 한국 정치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지극히 사적인 평가일 수도...이동형의 책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vs김영삼> '영원한 라이벌'이라는 수식어가 못내 아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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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라이벌 김대중vs김영삼>은 저자 이동형이 인터넷에 연재한 글을 새로 다듬고 추가해서 펴낸 책이다. 스스로를 3류로 표현한 저자는 정치 무관심에 빠져있는 젊은이들이 가려지거나 포장된 역사 밖의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양김 시대'에 대한 가치판단보다는 한국 현대사이기도 한 양김의 전쟁을 통해 역사의 굽이굽이를 상기시키는 데 촛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언뜻언뜻 내비치는 양김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책을 읽는 또 하나의 흥미를 주기도 한다
.   

라이벌 시대의 명암

 

저자의 말대로 한국 현대사이기도 한 양김의 라이벌 관계는 신생 독립국 한국이 민주주의적 발전을 이룩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라이벌의 존재 이유는 시너지 효과의 극대화라고 할 수 있다. DJ와 YS의 경쟁이 그랬다. 때로는 진흙탕 싸움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어찌됐건 그 과정은 민주주의가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길이기도 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라는 쿠데타 세력에 맞서 공동전선을 형성하기도 하고 한편 독자노선을 걷기도 했지만 결국엔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바로 양김이었다. 지금이야 양김의 평가가 어떠하든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양김의 역할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어느 누구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양김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긍정적인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민주주의가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기도 했고 정치지형을 왜곡시키는 장본인이 되기도 했다. 특히 1980년과 1987년, 양김의 분열은 독재정권의 붕괴를 민주정부 수립으로 연결시키지 못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역사적 순간마다 분열로 일관했던 양김을 비판하면서도 독재정권이 획책한 고도의 정치적 술수에 양김이 놀아났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전두환 장군 되겠다. "김대중을 사면복권해줘서 야당의 분열을 획책하고 이로써 사회의 혼란을 부추겨 과격시위를 일으킨 뒤, 그 명분으로 내가 나서야지"라는 시나리오가 착착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3장 전두환 시대 '서울의 봄' 중에서-

게다가 양김은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감정을 고착화시켰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물론 조직적인 지역감정 조장은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기획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양김 특히 DJ는 1971년 대선의 야당 후보로서 지역감정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반면 DJ와 YS는 지역적 기반을 통해 정치생명을 연장해 왔다는 점을 부인할 수도 없다. 양김의 분열은 지역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패이게 하는 원인이었으니까. 
   

라이벌에서 대결의 시대로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언론들이 양김의 라이벌 시대가 끝났다며 호들갑을 떨때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바로 1990년 3당 합당으로 양김의 라이벌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이상 선의의 경쟁은 없었다. 대신 양김은 각각 진보와 보수의 얼굴이 되고 말았다.(개인적으로 DJ를 결코 진보 정치인으로 보지 않지만 지나치게 우편향된 한국 정치 현실이 만들어낸 아이러니?....)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한민국의 정치를 20년 이상 늦춘 쓰레기같은 짓거리'였던 3당 합당은 '구국의 결단'이라던 YS의 주장과 달리 한낱 야합에 불과했다. 군부독재 청산을 외치던 YS가 군부의 품에 안겨 권력의 달콤함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이쯤 되면 DJ와 YS의 정치적 라이벌 관계는 DJ의 판정승이 아닐까. 참 정치란 알 수 없다. 민족과 민주와 인권과 호남을 쓰레기통에 쳐넣어버린 3당야합은 YS와 DJ가 차례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vs김영삼>은 마치 야사를 읽는 듯 흥미진진하다. 그렇다고 저자의 상상과 허구는 결코 아니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저자의 편안하고 쉬운 필체로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한국 현대사 강의 같은 느낌이다. 저자는 양김의 라이벌 관계를 최대한 관조적 입장에서 바라보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저자의 가치판단은 책 속 여기저기서 들키고 만다. YS를 냉소적으로 바라본다면 DJ에 대해서는 조금은 안타까운 시선을 주고있다.

여기서 하나 살펴볼 점이 있다. 87년 대선을 논하면서 모든 사람들(특히 민주화에 별 관심도 없었던 조중동과 김대중이라고 하면 무턱대고 싫어하는 진보인사들)이 대선 패배로 김대중을 끄집어내어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부관참시까지 한다. … 그런데 김대중이 정말 그렇게 죽을죄를 지었나? 이 문제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X새끼가 되어야 할 정도로 그렇게 죽을죄를 졌나 이 말이다. -제3장 전두화 시대 '1987년 대통령 선거' 중에서-

저자가 DJ를 옹호한 발언을 하면서 자신이 경북 안동 출신임을 밝히는 대목에서는 왜곡된 한국정치의 현실을 보는 듯 영 개운치가 못하다. 한편 양김의 라이벌 시대를 DJ의 판정승으로 결론지어버린 나는 DJ와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점이 저자와는 또 다르게 알수없는 어색함과 불편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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