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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신탁통치를 둘러싼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과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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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의 <혈맥>/1946년

1945년 12월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소집된 모스크바 3상회의는 세계사적 의미와는 별개로 한국 현대사에서는 이념대립을 폭발시키는 뇌관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던 미국과 영국, 소련 외상대표들로 구성된 모스크바3상회의는 한국의 전후문제 처리방안을 발표했는데 한국을 독립국가로 재건설할 것과 한국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미·소공동위원회의 역할, 한국임시정부와의 협의를 거친 신탁통치안 확정 등 3개안이었다. 특히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꿈꾸고 있던 민중들에게 신탁통치는 일제 강점기의 연장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극심한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이런 분위기는 국내언론의 왜곡보도도 한 몫 했다. 미국의 4개국 대표(미국,영국,소련,중국)에 의한 신탁통치안과 소련이 주장한 한국의 민주주의적인 임시정부와의 협의를 거친 신탁통치안이 소련의 신탁통치 찬성과 미국의 반대로 보도되면서 해방정국은 극심한 좌우대립의 전장이 되고 말았고 이후 분단과 전쟁이라는 한국 현대사 참극으로 이어졌다.  

김영수의 소설 <혈맥>은 해방정국에서 신탁통치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좌우대립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 게다가 이런 정치적 이념대립의 상대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점은 비극적 상황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무언가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기도 한다. 

 

           ▲ 신탁통치를 둘러싸고 해방정국은 극심한 좌우대립의 장이 되었고 분단과 전쟁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찬탁과 반탁 사이에서

앞서 언급했던대로 소련의 신탁통치 찬성 미국의 반대라는 국내 언론의 오보는 반탁을 넘어 반소와 반공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우익정당의 요직에 있는 이필호 박사와 아들인 의대생 이기호의 반탁과 찬탁에 대한 공방은 신탁통치에 대한 고민보다는 정치적으로 갈렸던 해방정국의 혼란이 그대로 나타나있다.

"조선의 노동자·농민이 지금 무엇을 요구허구 있구, 어떠한 정부를 바라구 있다는 걸 아버지는 모르십니다. 인민을 무시허구 정당도 정부도 성립 안됩니다."
"아니, 그래 인마, 신탁통치를 지지헌다는 놈들과 통일을 해. 그런 놈들허구……"
"……가장 진보적인 민주주의 독립국가를 이루도록 연합국이 후원을 해주는 것입니다."
"아니 인마, 옳지, 인제 보니까, 네가 바루 그, 그, 공산당 패구나. 그놈들 패야." -<혈맥> 중에서-

문제는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세력들간의 신탁통치를 둘러싼 갈등이 폭력적 양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혈맥>에서는 이기호가 테러를 당하고 아버지의 병원에 실려오면서 이들 부자지간의 갈등은 절정으로 치닫게 된다. 아들의 치료를 거부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당시 이념대립의 잔혹성과 맹목성을 보게 된다.

이념에 우선하는 것

아무리 이념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부자지만 가족이라는 핏줄(혈맥)은 결코 이념에 종속될 수 없는 강력한 끌림이었다. 이필호 박사가 마치 무엇에 홀린 듯 병원으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은 어떤 주의나 이념도 가족, 사람에 우선할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박사는 자기도 모르게 푸시시 일어났다. 왜, 어쩌자고,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 몰랐다. 저절로 일어서졌고, 저절로 일어선 것이었다. 박사는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섰다. 이것도 저절로 나서진 것이요, 저절로 발길이 내킨 것이었다. -<혈맥> 중에서-

그러나 너무 밋밋하지 않은가! 뻔한 전개와 뻔한 결말. 너무 진부함을 느낄 것이다. 극한의 대립이 단순히 핏줄 때문에 해소된다는 것은 당시 해방정국에 대한 이해의 부족인지도 모른다. 일제 통치를 끝내고 광복을 찾은 조선민중들에게 가장 큰 과제는 새 독립국가의 건설이었다. 좌든 우든 그들이 그리는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국민이었다. 그게 포용이던 흡수던 간에 새 국가의 건설은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그렇다면 저자의 의도는 단순히 핏줄을 강조했다기보다는 국가를 구성할 수 있는 구성원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핏줄(혈맥)은 국가의 온전한 구성원을 확보하기 위한 희망이나 열망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바람과는 달리 이념갈등은 결국 분단으로 이어졌고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전쟁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또 기억해야 할 것은 모스크바3상회의 즉 신탁통치를 둘러싼 갈등은 친일파들이 반탁운동에 적극 가담하는 등 그들이 정치적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완전한 친일청산의 기회를 놓치고마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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