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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백범, 일제의 심장을 정조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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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의 <도왜실기>


1896년 어전회의를 마친 고종은 급히 제물포로 전화를 걸었다. 일본군 대위 츠치다를 살해한 김창수란 자의 사형집행을 막기 위해서였다. 김창수는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우연히 평상복을 입은 츠치다를 만났다. 김창수는 그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낭인 중 한명으로 생각하고 분함을 이기지 못해 그의 칼을 빼앗아 그를 살해했다. 자신의 행동에 당당했던 김창수는 도피하지 않고 경찰에 체포되어 제물포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종의 전화로 사형을 면한 그는 3년 후 탈옥하여 심산유곡을 방랑하며 훗날을 기약한다. 1896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전화에 얽힌 유명한 일화다.


김창수, 그가 바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백범 김구다. 이 사건 이후 백범은 신분노출을 막기 위해 본명인 김창수를 김구로 개명했다. 김구의 호인 백범이 백정과 범부에서 따온 것이라 하니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임시정부의 문지기를 자처한 그의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알 수 있다.

작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행사도 우여곡절 끝에 백범 묘역에서 진행되었다. 또 친일인명사전을 백범에게 바치는 것으로 대역사를 세상에 공개했다. 한국 현대사의 중심으로 우뚝 서 있는 백범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사였다.

『도왜실기(屠倭實記)』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백범이 1932년 주도한 일련의 대일본 폭탄테러 활동의 진상을 중국인에게 알리기 위해 중국어로 쓴 책이다.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도왜실기』는 임시정부 요인의 환국 후 1946년에 독립운동가 엄항섭이 우리말로 고쳐 발간하면서 독립운동 관계자료와 논문을 보충한 것이다.

『도왜실기』의 구성은 백범의 전기를 시작으로 백범이 조직한 <한인애국단>의 활동상황이 기술되어 있다. 즉 이봉창 의사의 '도쿄 1'8 폭탄사건',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폭탄사건', 최흥식, 유상근 의사의 '대련 폭탄사건'의 진상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부록에는 당시 신문자료와 서신, 한국 독립운동에 관한 논문 및 한국광복군 약사와 독립군가가 실려있다.

백범은 왜 중국인들에게 굳이 책까지 내면서 이들 사건의 진상을 알리려 했을까? 백범의 탁월한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주변국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대한민중의 단순한 애국심만으로는 조국의 독립을 쟁취할 수 없음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오늘 중화민국이 왜적에게 당함이 우리 한국과 다름없으니 중국 국민이여, 이제는 땅이 크고 물자가 많음만을 자랑하지 말고 한국인을 망국노라 모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동정하고 공동 분투하여 강고한 항일연합전선을 결성해야 함을 한'중 양대 민족에게 간절히 바라 마지않는다. -도왜실기』 <왜적의 말발굽 아래 있는> 중에서-

또 『도왜실기』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던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조국사랑에 대한 열정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부 보수를 자처하는 일부 극우세력들이 백범을 테러리스트로 폄하하는 발언들이 종종 보도되곤 한다. 최근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서 자국의 문화와 종교를 지키려는 중동 국가들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테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백범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것이다. 물론 자국의 문화와 종교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는 동의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표적으로 한 무력공격에는 동의할 수도 없을 뿐더러 비판받아 마땅하다. 반면 백범이 죽이고자 했던 대상은 일본 국민들이 아닌 일본 제국주의자들이었다. 백범도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도왜실기』가 이들 극우세력들에게 백범을 폄하하고 상해임시정부를 부정하는 근거를 제공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들은 친일파 청산작업마저도 '좌파'들의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으로 왜곡하고 일본의 침략을 근대화로 미화하고 있다. 한편 이들의 편향된 역사인식은 끝나지 않은 과거청산에 대한 지속적인 추진을 역설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다.

"왜적은 본단이 싸움하기를 즐긴다고 하나, 우리는 인류의 진정한 행복을 위하여 싸우기를 희망할 뿐이고 침략성을 가진, 명분없는 싸움을 바라는 자가 아니다. 우리가 허다한 희생을 돌아보지 않고 끝내 폭력적인 행동으로 대항하는 것은 우리에겐 무기가 없고 사선을 넘나드는 용기만을 가진 한국 사람인지라 이 길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독립이 성취되기 전까지는 이런 강렬한 행동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도왜실기』 <대련 폭파사건의 진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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