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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아이가 아이다워 너무 슬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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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의 <남생이>/1938년

1989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의 생존과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 등 아동 인권과 관련된 모든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인종이나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등에 따라 차별받지 않을 권리, 생명을 존중받을 권리, 부모로부터 양육받을 권리, 폭력과 학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등 아동인권에 관한 총 54개 조항으로 된 국제법이 유엔아동권리협약이다.

 한편 아동권리는 일반적인 자유의지로서의 권리와는 조금 다른 성격을 지닌다. 생물학적이나 정신적으로 미성숙된 탓에 성인의 그것과 달리 어른에 의해 보호되고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비해 아동권리에 대한 사회적, 법률적 장치가 진화되었다고 해서 아이들은 행복해졌을까? 아동권리를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말한다면 아이가 아이답다는 표현일 것이다. 어느 별에서 온것처럼 깨끗하고 맑은 순수함. 순수함을 더럽히지 않고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아동권리라면 이 질문의 답은 '글쎄'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다.

노마의 나무 오르기


여기 아이가 아이다워 너무 슬픈 이야기가 있어 한토막 소개하고자 한다. 일제 강점기 방정환만큼 널리 알려진 아동문학가는 아니지만 현덕은 그만의 색깔과 시선으로 아이들의 세계를 그려냈다. 그의 데뷔작이기도 했던 소설 <남생이>에는 틈틈이 나무 올라가기에 열고가 난 '노마'라는 아이가 등장한다. '노마'는 이후 현덕이 썼던 동화의 주인공으로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노마의 나무 오르기는 이 소설의 주제를 아우르는 핵심적인 상징이다. 폐병에 걸린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 선창에서 들병장수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는 어머니가 있지만 노마는 곰보가 단숨에 오르는 양버들나무에 오르기 위해 볼이 긁히고 손바닥에 상처가 나도 바지가 찢겨도 오르기를 멈추지 않는다. 

노마의 나무 오르기는 어른이 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다. 

이 고비를 넘기기만 하였으면 금방 거기는 선창이 있고, 활동사진이 있고, 돈이 있고, 그리고 능히 어른의 세계에 한몫 들 수 있는 딴 세상이 있다. 그때에 노마는 자기 아니라도 족히 아버지 모시고 잘 살 수 있는 노마임을 여봐란 듯이 어머니에게 보여줄 수도 있으련만 아아! -<남생이> 중에서-

노마의 아이다운 순수함은 들병장수 어머니가 선창에서 외갓남자들과 희롱하는 장면에서 여지없이 나타난다. 자신도 한 번 받아보지 못했던 뭇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 어머니가 자랑스러워 큰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가 되레 혼나기도 한다. 또 노마가 나무 오르기에 성공한 날 무병장수를 상징한다는 남생이 한 마리에 의지해 살고 있던 아버지가 죽었지만 통곡을 하는 어머니와 동네 어른들 틈바구니에서도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이 장면은 어머니가 털보 아저씨와 함께 집에 왔을 때 자리를 피해주는 아버지의 행동과 오버랩되면서 허위와 가식에 찬 어른들의 세계가 적나라하게 폭로되고 만다.
노마의 아이다운 순수함은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민초들의 궁핍한 삶과 이를 헤쳐나가는 어른들의 비상식적 행동을 더욱 비극적으로 전달해 준다. 또 사회적, 경제적 장애물로 인해 희망을 찾으려는 노마만의 동심의 세계가 훼손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아이다운 순수함을 지켜주는 것이 아동인권

TV 볼 시간이 거의 없는 내가 매주 빠뜨리지 않고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SBS에서 방영되고 있는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이 그것이다. 개그맨 염경환의 아들 은율이 때문이다. 이제 일곱 살인 은율이의 인텨뷰는 진행자가 아닌 아빠가 대신한다. 또 속담퀴즈에서도 늘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들고는 정답과는 상관없이 장황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속담을 설명해 낸다. 게다가 이를 지켜보는 아빠의 흐뭇해 하는 표정이 TV 속 가득 클로즈업된다. 반면 은율이 또래의 예닐곱 살 다른 아이들은 속담퀴즈의 정답을 속속 맞춰낸다. 누가 더 아이다운 아이일까?

앞서도 자문했던 아동권리협약 등 제도적, 법률적으로 아동인권을 보호해 줄 장치가 마련되었다고 해서 우리 아이들은 예전보다 더 행복해 졌을까. 소설 <남생이> 속 노마의 동심은 지켜지고 있을까. 아쉽게도 주먹만한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기아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아닌 아이들이다. 또 그리 멀리 가지 않더라도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아이 어른'을 강요받는다. 부모와 사회의 욕심은 아이들의 뇌 속에 순수한 동심보다는 어른들도 감당키 어려운 각종 지식과 정보를 담는 데 혈안이다. <붕어빵> 속 아이들이 어른들도 긴가민가하는 속담을 척척 알아맞추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강요된 지식과 강요된 행복을 진짜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어른들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불평등과 부조리를 최소한 아이들만은 느낄 수 없게 해 주는 것이 아동권리과 아동인권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도 마찬가지다. 내 부모가 가난해서 나만 특별히 제공된 밥을 먹어야 한다고 느낀다면 이것은 유엔아동인권협약에 대한 심각한 침해고 또다른 형태의 아동학대다.

아이가 아이다울 때 슬픔을 느끼는 것은 어른들이 훼손시켜버린 세상에 대한 역설이 아닐까. 
아이가 아이다워 행복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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