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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내가 아편쟁이 지기미 영감을 좋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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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량의 <지기미>/1941년

지기미의 시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인 '지게미'의 경상도 지방 방언이라고 한다. 또 경북 지방에서는 '주근깨'를 지기미라고 한단다. 이런 사전적 의미 말고도 지기미는 우리에게 더 친숙(?)한 의미가 있다. 일상에서 자주 듣는, 누구나 한번쯤은 사용해봤을 욕설이 그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특별한 의미보다는 습관적으로 말끝마다 '지기미'를 연발하곤 한다. 1941년 《삼천리》에 발표된 김사량의 소설 <지기미>의 주인공 지기미 영감이 그랬다.

소설 전체를 보건대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 부두 노동자의 궁핍했던 삶과 식민지 조선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차별과 편견에 대한 울분의 토로가 '지기미'였음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 '나'도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는 말에서 '지기미'에는 또다른 상징적 의미가 있지는 않을까 궁금해진다. 창비사에서 출간한 <20세기 한국소설>의 해설을 맡은 윤대석씨에 따르면 김사량이 이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붙인 제목이 '벌레'였다고 한다. 결국 저자에게 '지기미'는 '벌레'와 같은 의미였던 것이다. 비로소 김사량의 소설 <지기미>의 주제가 좀 더 확실해진다. 

일제강점기 재일조선인 노동자들의 비참함 삶

소설의 배경은 일본 시바우라 부두다. 이곳에서 막노동을 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는 죄다 조선일 출신들이다. 화가 지망생인 '나'의 유일한 말동무인 지기미 영감의 말대로 그들의 하루하루는 지기미지기미지기미다. 즉 벌레만도 못한 삶은 식민지 노동자들의 삶은 이런 욕설로 울분이라도 토해내지 않으면 미쳐버릴 지경이다. 

그리고 어느 함바에나 십 첩 남짓한 방에 한 사십 명씩이 들고 날친다. 감자더미처럼, 어쩌면 또 석탄더미처럼 밤만 되면은 그들은 여덟시부터 볏짚짝 같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세상모르게 잠이 들어 꾸르렁거린다. 새벽 세시에 일을 나가고 오후 세시가 넘어서야 돌아오는 것이다. 열두 시간의 고된 노동인데 또 새벽에 나가야만 되는 일이라 밤이 이른 터이다. -<지기미> 중에서-

이들의 고단한 삶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만난 동포들끼리도 살갑기는커녕 괜히 친한 척 등이라도 툭툭 쳤다가는 따귀를 얻어맞기 쉽상이다. 밥이 인권이란 말은 예나 지금이나 새삼스럽지 않다. 식민지 이주민이 겪어야만 했던 비참한 삶은 동포의 정마저도 사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반도 북쪽 지역 이주민들이 만주에서 겪었던 처절한 삶과의 투쟁을 반도 남쪽 지역 조선인들은 일본에서 뼈에 사무치게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XX대학 사회학부 자비유학생이라는 어느 대학생이 조선인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체험하고자 이곳 시바우라 부두에 왔다가 발광을 하고 미쳐버린 장면은 조선 이주민들이 감내해야만 했던 노동강도와 차별, 편견, 비루한 현실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뜻밖에도 발광한 이 대학생은 지기미 영감이 건내 준 약으로 진정된다. 그 약의 정체는 아편이었다.

저자는 왜 하필 아편쟁이를 주인공으로 설정했을까?

'나'의 유일한 친구인 지기미 영감은 아편쟁이다. 이 시바우라 부두 조선인 사회에서도 철저하게 왕따를 당하고 있는 지기미 영감이지만 그도 한 때는 삼정위 출신 군인이었다. '나'를 아편으로 유혹하는 그지만 '나'는 그를 미워할 수가 없다. 심지어는 그의 아편을 먹어서라도 그와 친구로 남고싶을 정도로 그는 따뜻하다.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출근 시간만 다가오면 부두 노동자들을 깨우는 일이 그의 일상 중 하나다. 또 그는 밥집 구름다리 위 한쪽 끝에 걸린 모노호시대(빨래줄을 받치는 장대)에 햇빛이 비추면 그 그림자로 인해 조선인 노동자들의 숙소가 쇠창살이 둘러쳐진 감옥처럼 보여 낮이면 이곳에 누워 그림자의 모양을 바꾸곤 한다.

저자에게 아니 화가인 '나'에게 비친 지기미 영감은 밟아도 밟아도 다시 일어서는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한 희망의 상징이다. 또 내가 아편쟁이 지기미 영감을 이해하는 것은 아편이라도 아니면 견뎌낼 수 없는 조선인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직접 관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편이라는 소설적 장치를 통해 조선인 노동자들의 처참한 삶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 <지기미>의 작가 김사량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특이한 이력은 한 때 그를 친일문학인으로 낙인찍기도 했다. 이문열이나 복거일 등이 '당시에 친일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었나' 하고 친일문학인들을 비호할 때도 김사량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나 싶다. 김사량의 소설 중 많은 작품들이 일본어로 쓰여졌고 일본 대표 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어로 작품을 쓰고 친일잡지에 게재됐다고 해서 내용을 간과한 채 그를 친일문학인으로 낙인찍을 수 있을까? 그에 대한 평가가 인색한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김사량의 또다른 소설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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