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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인생은 박치기다' 왜곡된 성공신화는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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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우의 <인생은 박치기다>/씨네21/2009년

어릴 적 육지에서 뱃길로 2시간을 달려야 땅을 밟을 수 있는 깡촌에 살았던 탓에 내 또래들이 이해하기 힘든 추억들이 많다. 섬 전체 통틀어 TV가 있는 집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 그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TV 옆에는 노란 밧데리통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밧데리값였을까? 큰 스포츠 경기라도 볼라치면 10원을 내야만 했다(내가 돈을 내지 않았기에 가물가물!..10원은 아니고 1원짜리로 기억된다. 아무튼). 특히 내가 사는 동네에는 TV를 가진 집이 없어 산넘어 다른 동네로 가야만 했으니....당시에는 아버지 손잡고 가는 길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지만 지금은 추억이 되었다.


당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복싱과 프로레슬링, 그리고 고교야구였다. 무엇보다도 프로레슬링의 김일은 아빠 손에 이끌려갔던 어린 코흘리개에게는 충격과 동시에 알 수 없는 꿈이었다. 경기 내내 수세에 몰리다가도 박치기 한 방으로 경기를 끝내버리는 김일은 먹고 사는 것조차 힘에 겨웠던 부모님 세대에게는 청량제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상황종료를 알리는 박치기를 뒤로 하고 피로 범벅이 된 김일의 얼굴이 흑백 테레비(?)를 통해 클로즈업될 때면 여기저기서 어른들의 짠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김일의 박치기는 승리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도전이기도 했다.

여기 인생은 박치기라며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끊임없이 도전해 보라고 권유하는 사람이 있다. 재일 조선인 이봉우이다. 그는 영화 제작자이며 배용준과 최지우 전에 미풍이었지만 처음으로 일본 내 한류 바람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일본인도 그렇다고 한국인도 아니다. 그의 국적은 조선이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음에도 그가 생각하는 조국을 방문하는 데는 안기부 직원의 감시가 뒤따라야만 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에서 살고 있음에도 조선사람이라는 이유로 아니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꿈을 접어야만 했던 때도 있었다.

그의 히트 영화 [박치기]는 그의 삶이 투영된 영화가 아니었을까? 교토 히가시고 학생들과 조선고 학생들간의 경쟁과 사랑을 얘기한 박치기는 일본사회에 낄 수 없는 소외감과 그런 일본사회를 바라보는 적대감, 그리고 일본사회와 화합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왜 하필 박치기일까? 일본사회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지만 동화될 수 없는 재일 한국인들, 재일 조선인들에게 박치기는 도전이다. 차별에 대한 도전이고 편견에 대한 도전이며 그들과 동화하고자 하는 도전인 것이다.

일본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박치기만큼이나 힘겨웠던 것은 그가 꿈꾸던 영화 제작자로서의 삶이었다. 한국영화를 바라보던 일본인들의 시각이 아직은 삼류영화에 불과했지만 그는 [서편제]와 [쉬리]로 일본에 한류붐의 불을 지폈다. 그런 그에게도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았다. 그러나 그의 무모한 도전(?)은 최근에 한국에서도 상영되었던 [훌라걸스]의 성공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담담히 회고하면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희망을 잡으라고 조언한다. 인생 뭐 있어?. 이도 저도 안될 때는 박치기 한 방 날리면 되지.....

그러나 청년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떠벌이기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이 아니 절망을 딛고 희망을 꿈꾸기에는 너무도 큰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노력만 하면 개천에서 용날 수 있다는 이런 류의 소설들이 어쩌면 기성세대의 자기변명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헤어나올 수 없는 올가미를 만들어 놓고는 어디 한 번 탈출해 봐라! 하는 식이다.

왜곡된 성공신화가 너무도 많은 세상이기에....그렇지만 <인생은 박치기다> 이 책이 주저 앉을 수도 또 주저 앉힐 수도 없는 우리 사회의 미래들에게 소박한 희망이라도 꿈꿀 수 있게 해 준다면 그것은 저자의 희망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생은 박치기다』가 흥미로운 또다른 이유는 다양한 영화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영화들을 떠올리며 추억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포스팅은 재발행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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