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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해구' 부성애로도 막지못한 자연과 시간의 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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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시종(1944~)의 <해구>/「현대문학」148호(1967.4)

올림푸스의 주인 제우스에게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 제우스가 신 중의 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출생의 비밀 때문이다. 제우스는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 등 그리스 신화의 쟁쟁한 이 신들이 사실은 제우스의 누이이고 형이었다. 그러나 이들 남매의 아버지에게는 엽기적인 버릇이 있었다. 자식을 낳는 족족 집어삼켜버렸던 것이다. 다행히 제우스는 어머니 레아의 지혜로 이 운명을 피했던 것이다. 훗날 제우스는 메티스에게 구토제를 구해 아버지가 삼켰던 누이와 형들을 토해내게 한다. 이들은 신생아 적 모습 그대로였다. 가장 늦게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제우스가 신들의 제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렇다면 이런 제우스의 아버지는 도대체 누구였단 말인가! 우라노스(하늘의 신)와 가이아(대지의 신)와 사이에서 태어난 크로노스(Cronus)가 바로 제우스의 아버지이다. 크로노스는 시간을 상징한다. 자식을 낳는 족족 삼켜버리는 그의 엽기적인 행각은 '시간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는 시간, 세월의 본질적 특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백시종의 소설 <해구>는 이런 시간의 본질을 잘 드러내고 있다. 시간 앞에 무기력한 인간, 비단 시간만이 아니다. 비극적 운명을 재촉하는 시간 앞에 자연이라는 거대한 힘의 공습은 한없이 나약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정체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표현하지 않는 사랑'으로 정의되곤 하는 부성애는 비극적 운명에 반전을 꾀해 보지만 결코 환대받을 수 없는 사랑으로 전락하고 만다. 작가 백시종이 즐겨쓰는 지고지순한 인간의 사랑이 물질적 욕망과 결합하여 발현된 부성애가 더욱 슬프디 슬프게 다가온다.
 

사건은 주인공 그가 해다리(해구)를 잡으려는 욕심에 낚시배를 빌려타고 아들 선찬과 선찬의 애견 누렁이를 데리고 귀신섬(소치섬)에 갔다가 도망가는 해다리를 잡기 위해 바위 구멍으로 들어간 선찬이 갇히는 데서 시작한다. 바다 한 가운데 덩그러니 자리잡은 귀신섬에 서서히 밀물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바닷물이 귀신섬을 덮어버리는 순간 모든 게 끝장난다. 다가오는 운명의 시간 앞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인 저항을 한다. 자연과 시간을 상대로...

바다가 아니 자연이 인간에게 늘 풍요로움만을 주지는 않는다. 시간은 무작정 인간의 편의대로 기다려주지 않는다. 인간의 욕심과 같은 수준으로 자연과 시간은 언제든 무시무시한 괴물로 변신한다. 귀신섬처럼 말이다. 인간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기 위해 귀신섬은 썰물이 되면 모습을 드러낸다. 홀연히 나타난 귀신섬은 밀물이 되면 바다 저 밑으로 사라진다. 소설 속에서 귀신섬은 자연과 시간이 중첩된 상징적 표현이다. 그래서 무한정 자애로울 수만은 없다. 

소설은 또 현재와 과거가 끊임없이 교차한다. 주인공 그가 빌린 고깃배의 주인은 아내와 함께 도망간 길만의 아버지 윤영감이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평생을 윤영감네 머슴으로 살다가 죽었다. 일가친척 없이 쓸쓸히 생을 마감한 장모, 그 장모한테서 얻은 개가 누렁이였다. 아들 선찬이는 어미의 정을 누렁이에게서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런 시간의 교차적 서술을 통해 시간 앞에 나약한 아니 시간이 만들어낸 어리석은 인간의 전형을 보여준다. 

결국 주인공 그는 옷을 벗어 바위 구멍을 촘촘이 막고는 마을 장정들의 도움을 요청하기로 하고 배의 닻을 끌어 올리고 파도를 타고 마을로 향한다. 그러나 한번 시작된 자연과 시간의 공습은 멈추는 법이 없다. 또 주인공 그의 부성애는 하찮은 욕심으로 동정심을 얻지 못한다. 지금의 운명이 해다리를 잡으려는 그의 욕심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한편 그의 욕심이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욕심이었다는 점에서 부성애는 또 하나의 슬픔으로 가슴을 억누르는 것이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막혀 있는 구멍을 바라보았다. 머리만 남은 귀신섬이 흰 파도에 짓눌리고 있었다. 바위는 무겁고 짙은 흙색이었다. 배가 찌우뚱 소리를 냈다. 물새가 소치섬 주위를 희게 맴돌고 있었다. 파도가 쳐들어가고 있었다. -<해구> 중에서-

시간은 기억을 삼켜버린다. 그것이 망각이다. 세월이 약이겠지요라는 대중가요도 있다. 망각으로 모든 게 해결된다면 그 어찌 좋지 아니하겠는가!  그러나 바람난 아내와 도망간 길만이 아버지의 배를 빌린 주인공 그처럼 망각은 부끄러운 시간의 반복일 뿐이다. 소설 <해구>의 주제와 크로노스 신화의 경고는 시간 앞에 부끄럽지 않은, 더 나아가 시간 위에 먼지가 누렇게 쌓이고 쌓인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그런 삶을 의미하는 게 않을런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망각을 염원하고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까지는 그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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