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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신화 일반

개[犬]는 불온한 인간의 업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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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그렇게 즐겨 보지 않는다. 즐겨 보지 않는다기보다 내 생활 싸이클에서 TV를 볼만한 여유가 없다는게 정확한 이유일게다. 그나마 일요일 아침은 이런 소소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시간대다. 그러나 지난 일요일 아침은 TV를 아니본만 못했다. 일명 '황구 학대사건'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SBS <TV 동물농장>은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비록 모자이크 처리가 되긴 했지만 TV 화면을 가득 채운 처참한 황구의 모습. 황구는 누군가의 각목으로 심하게 맞아 안구가 돌출된 처참한 상태였으며 발견 즉시 동물병원으로 후송되어 안구 적출 수술과 턱골절 접합시술을 받은 사건이 소개되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동물보호론자도 아니고 아파트나 공원 등에서 애완견을 끌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인상부터 찌푸리는가 하면 개고기 문화에 결코 부끄럽지 않은 우리 식문화라고 자부하는 내가 아니 누구라도 이 장면에서 분노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는 윤리의 문제고 인권이 있듯이 동물에게도 인간으로부터 보호받아야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생태계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며 사는 인간과 동물이지만 서로에게는 최소한의 예의라는 게 있지 않을까? 특히 '이성'이라는 우월적 재능을 자부하는 인간이라면 생태계에 존재하는 예의범절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특정 동물을 신성시하는 토테미즘이 존재하는 것도 약육강식의 생태계를 살아가는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가 발현된 결과라 하겠다. 이번 '황구 학대사건'은 인간과 동물의 구별이 없었던 먼 옛날의 기억을 망각하고 끝없는 진화라는 신의 은총을 남용한 인간의 잔혹성이 투영된 사건이었다. 특히 신화는 이런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밝혀줄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인간이 자연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제시해 주고 있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아무튼 신화에서 인간과 동물은 자연을 형성하는 각각의 주체임에는 틀림없다.     
 

마야문명 몰락 직전의 마야 전사들의 투쟁을 다룬 멜 깁슨의 영화 <아포칼립토>를 보면 주인공 '표범 발'이 재규어와 싸우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또 마야 전사들의 용맹성은 재규어 사냥으로 증명되곤 했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살육이 아니다. 신성성에 대한 의식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마야인들은 재규어를 신성한 동물로 여겼다. 우리가 호랑이나 곰을 신성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야 문명과 인접한 곳에 위치한 아즈텍 문명(현 멕시코와 근방)에서도 재규어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창조신화를 보면 많은 동물들이 신의 능력으로 출현했고 인간도 그 동물들 중 하나였으며 때로는 인간이 동물로 변하기도 하고 동물이 인간이 되기도 한다. 또 마야 신화와 아즈텍 신화는 창조와 파괴의 반복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그들은 현재 살고 있는 세계 이전의 또다른 세계가 있다고 믿었다. 마야와 아즈텍 신화의 창조와 파괴의 반복은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에 의해 2012년 종말이라는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마야와 아즈텍 신화의 선세계를 자세히 언급하자면 다소 복잡해 진다. 다만 여기에서는 4개의 선세계를 소개하고 아즈텍인들의 창조신화를 통해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서만 알아보고자 한다. 아즈텍 신화에서 창조자는 오메테요틀이다. 오메테요틀은 네 명을 아들을 낳는다. 붉은 테스카틀리포카, 검은 테스카틀리포카, 케찰코아틀, 우이칠로포틀리가 그들이다. 이 네 명의 신들은 서로 투쟁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때로는 파괴하기도 한다.    


최초의 선세계인 '대지의 선세계'를 창조한 신이 바로 검은 테스카틀리포카다. 아즈텍 지역에서 발견되는 메머드 화석을 통해 아즈텍인들은 '대지의 선세계'에는 거인들이 살았던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검은 테스카틀리포카의 선세계는 창조자 오메테요틀의 셋째 아들 케찰코아틀에게 멸망당한다. 이때 죽은 검은 테스카틀리포카가 환생한 동물이 재규어다. 재규어가 아즈텍인들에게 신성시될만한 충분한 이유이지싶다.

이렇게 케찰코아틀은 두번째 선세계인 '바람의 선세계'를 창조하지만 다시 테스카틀리포카에 의해 멸망당한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케찰코아틀과 인간들이 그들의 과거를 기억하게 하기 위해 이들을 원숭이로 변신시킨다. 첫번째 선세계를 파괴했던 케찰코아틀은 두번째 선세계의 희생자가 되기도 하지만 다시 세번째 선세계의 파괴자로 다시 등장한다. 케찰코아틀은 비의 신 틀락록이 다스리고 있던 세번째 선세계 '비의 선세계'를 파괴하고 여기에 살던 인간들을 칠면조로 바꾸어 놓는다.
 
이제 네번째 선세계가 '물의 선세계'가 될거란 것쯤은 짐작할 것이다. '물의 선세계'에서는 전세계 모든 지역의 신화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홍수신화를 볼 수 있는데 이 '물의 선세계'는 틀락록의 아내이자 강의 여신인 찰치우틀리쿠에가 지배한다. 대홍수로 파괴된 '물의 선세계' 인간들은 모두 물고기로 변하고 만다. 이때 노아의 방주처럼 살아남은 인간이 있었으니 타타(Tata)네네(Nene)가 그들이다. 종족번식을 위해 신은 이들에게 부부의 지위를 주는 건 당연한 것.

신화에서 인간은 늘 원죄를 가지게 된다. 늘 뒤를 돌아보고 살라는 신화의 상징인 셈이다. 테스카틀리포카는 타타와 네네 부부에게 옥수수 이삭만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명령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사과 열매를 따서 먹지 말아야 했듯이.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가 그랬던 것처럼 인간의 호기심이란 절제하기 힘든 본성 중 하나다.

타타와 네네 부부는 어느날 테스카틀리포카의 명령을 어기고 불을 피워 물고기를 구워먹고 만다. 천상에 연기가 자욱하게 피워오르니 이기심 많은 신들이 가만 있을리 없었다. 이는 천상을 태우는 행위로 신을 모독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신들의 심기를 건드린 타타와 네네의 행동에 화가 난 테스카틀리포카는 타타와 네네의 머리를 잘라 그들의 엉덩이에 붙여 버렸다. 엉덩이에 붙은 머리는 차츰 꼬리로 변하게 되고 이렇게 해서 타타와 네네는 최초의 가 된 것이다. 

개를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로 남긴 것도 인류의 원제를 잊지 말라는 신화의 상징인 것이다. 개는 불온한 인간의 업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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