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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따따부따

반값 등록금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눕히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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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조급하게 서둘러서 하지 말고 차분하게 시간을 갖고 진지하게 대안을 마련하라"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반값 등록금을 두고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13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정부가 정책을 한 번 잘못 세우면 국가가 흔들릴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두고 주객이 전도되었다고들 하던가! 현정부 초기 각종 국책사업을 두고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했던 얘기들을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대통령이 다시 국민들에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문득 그리스 신화의 유명한 도둑 프로크루스테스가 떠오른다. 그에게는 아주 요상하면서도 살벌한 취미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스의 시조영웅이자 아테나이 왕 아에게우스의 사생아였던 테세우스는 아버지가 남긴 신표인 가죽신과 칼 한자루를 찾아 고국인 아테나이로 머나먼 여정을 시작한다. 영웅은 난세에 나고 가시밭길을 걸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나는 법. 그리스 신화도 고국으로 향하는 테세우스에게 안전한 뱃길보다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육로를 강요한다. 테세우스가 이 여정 중에 만났던 강도가 있었으니 그 유명한 프로크루스테스다.    

그리스 신화('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출처)에 따르면 아테네 교외의 언덕에 집을 짓고 살면서 강도질을 했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집에는 침대가 하나 있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단순히 여행자의 개나리 봇짐만 훔친게 아니었다. 후환을 없애기 위해 여행자들을 그냥 살려 보내는 법이 없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던지 프로크루스테스는 살인을 행하는데도 자신만의 명분이 있었다. 여행자를 자신의 침대에 눕힌 다음 여행자의 키가 자신의 침대보다 짧으면 작다는 이유로 침대 길이에 맞춰 늘려서 죽였고 침대보다 길면 또 크다는 이유로 침대 길이에 맞게 잘라서 죽였다고 한다. 그래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똑같은 키를 가진 여행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지는 않았을까? 있을 수 없었다. 이 침대의 길이는 프로크루스테스가 맘대로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일상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말인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억지로 꿰맞추려는 '아집과 편견'을 의미한다. 

현정부 초기 국민들은 4대강 사업, 미국산 쇠고기 수입, 세종시 원안 수정 등 각종 국책사업에 대해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진지한 토론을 통해 가장 합당한 결론을 내려줄 것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무슨 신념에서인지 늘 모르쇠로 일관했다. 아니 독단과 독선을 넘어 늘 국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취급을 당해야만 했다. 촛불도 들어봤지만 남은 거라곤 치사한 보복뿐이었다.

마치 조급증 환자처럼 나 아니면 안된다는 식으로 4대강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죽어가건, 4대강 주변에 있는 한 도시가 며칠째 수돗물이 끊기건 아랑곳하지 않고 쉼없이 포크레인 굉음만 울려대던 대통령이 이제는 위험천만한 여유를 부리고 있다. 꿈과 낭만으로 충만해야 할 청년들이 지금 살인적인 등록금으로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기나 하는 것인지...

학자금 대출 때문에 신용불량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있는 청년들이 부지기수고, 최저임금에도 훨씬 못미치는 편의점에서 학비를 벌고 있으며 심지어는 홍등가로 내몰리는 여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이런 현실이 대통령에게는 그저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리는 모양이다. 13일 열렸던 수석비서관회의 관련 보도를 보면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이명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들에게 고등교육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고, 또 여기서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지 현실을 점검하고 지시했단다. 도대체 집권 4년 동안 뭘 했길래 아직도 우리 교육의 참담한 현실을 모르고 있단 말인지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이었다는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자기변명치고는 너무 천박스럽기 짝이 없다. 신선 놀음에 도끼 자루 썩어가는 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멀쩡한 4대강이 뭐 그리 시급한 일이라고 앞뒤 안가리고 밀어부치더니 하루하루 나락으로 추락해가는 젊은이들의 일상에는 화투패만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청와대에는 전자동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놓여있지않나싶다. 나만 옳으니 나만 따르라는 아집과 독선이 새삼 무섭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거 아는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세월이 흘러 낡고 헤져 폐기처분되지 않았다. 테세우스가 누군가! 아리아드네의 실(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법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을 잡고 미궁에 들어가 반인반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영웅이 아니었던가! 프로크루스테스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신화 속으로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신화의 메타포는 '아집', '편견', '독선', '독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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