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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80년 5월과 87년 5월의 단상 그리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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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담의 <깃발>/1988년

그해 5월은 뜨거웠다. 여름의 문턱을 넘어가는 태양이 뜨거웠고 태양의 열기를 온전히 담아내는 아스팔트가 뜨거웠고 그 아스팔트를 채운 사람들의 열정은 계절을 앞지르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87년 5월은 그렇게 뜨거운 공기를 호흡하며 시작되었다. 거리는 온통 시위대로 가득찼다. 거리에 넘쳐나는 시위대의 숫자만큼 수업도 오전에 마치는 날이 늘어났다. 아마도 야간에 있을 시위에 합류하지 못하게 하기위한 궁여지책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오전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가지 않았다. 누구랄 것도 없이 가톨릭 회관으로 모였다. 우리의 목적지는 가톨릭 회관 4층이었다. 험난한 길이었다. 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땀냄새로 가득했고 가톨릭 회관 바깥 인도에는 사람들의 행렬로 끝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80년 5월 광주를 보았다. 가톨릭 회관에서는 5.18 광주 사진전과 영상전이 열리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준비로 한참 정신없을 중학교 3학년이 그런 곳에 갈 시간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평준화 지역인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80년 광주가 궁금했다. 어른들한테 들은 얘기만으로는 직성이 풀리지 않을만큼 호기심이 충만한 나이였으니까. 게다가 광주에서 불과 1시간도 안된 거리에 살면서 광주의 그날을 모르고 있었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각 학교에서 나온 선생님들이 친구들을 붙들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것뿐이었다. 선생님들에 이끌려 그곳을 벗어나는 친구들은 없었다. 우리만큼이나 선생님들도 80년 광주가 궁금했을 것이다.

어느덧 중년이 된 오늘 또다시 80년 5월 광주를 보았다. 이번에는 사진이나 영상이 아닌 책이다. 홍희담의 소설 <깃발>은 80년 광주를 에둘러 얘기하지 않는다. 그날의 비극 속으로 직접 뛰어들고 있다. 그래서 관념적이지도 않고 쓸데없는 호기심이 발동하지도 않는다. 소설 <깃발>은 80년 5월 광주에서 살아남은 순분이라는 노동자가 전하는 그날의 참극이자 새 세상에 대한 깨우침이다. 


87년 5월 우리가 본 광주는 철없는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80년 5월은 눈을 감아도 마치 악몽을 꾼듯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었다. 남자라는 이유로 울지 않으려 했지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흐느낌은 남자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아니 그 상황에서 남자의 자존심은 허세였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그래도 소리없이. 교과서를 찢어버리고 싶었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주인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나라라고 했다. 정의로운 사회라고 했다. 그렇게 배웠고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뻔뻔했다. 교과서를 만든 사람들은 얼굴에 철판이라도 깔고 사는 모양이다. 거짓말하지 말라더니 그들은 철없는 우리를 상대로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아버지를 따라 거리로 나갔다. 사람들은 광장으로 광장으로 모였다. 사람들이 모인 광장은 군중이 되었다. 군중들 앞에는 어김없이 검푸른 악마들이 줄지어 섰고 그 뒤로는 희멀건 백골이 도열해 있었다. 그놈의 지랄탄이 군중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 광장은 어느새 텅비어 정적만 흐르고 있었다. 대신 골목 골목에는 물을 떠나르는 아줌마들이 있었고 쫓기는 사람들을 위해 대문을 열어놓았다. 아마 80년 5월 광주가 그랬을 것이다. 사람들은 광장이 막히면 교회로 성당으로 그렇게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최루가스로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르게 범벅이 되었지만 그날 아버지 어깨 너무로 진짜 민주주의를 보았다.

그렇게 사람들은 87년 6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순분에게 80년 5월은 온몸에 신열이 나고 헛소리가 튀어나오는 악몽이었다. 생생한 비명 소리와 칼부림, 찢긴 시체 더미 온전히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었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은 도청으로 도청으로 모여들었다.

"순분아 생각해봐.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의 선택을. 분수대 앞에 모인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야. 와이더블류씨에이는 언제든지 선택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그리고 도청은…"
"도청은 죽음을 결단하는 사람들의 것이야.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것이지." -<깃발> 중에서-
 
순분은 보았다. 야만적인 정권을 보았고 은혜로운 나라 미국의 실체를 보았다. 군작전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은 공수부대의 광주 투입을 막아줄 줄 알았다. 그러나 끝내 광주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준다던 대한민국 군대의 살육현장이 되고 말았다. 순분은 보았다. 대한민국의 주인이 누구이고 광주를 지킨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도청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말없이 눈만 번쩍이던 사람, 턱에 칼자국이 있던 사람, 거친 욕을 끊임없이 해대던 사람, 몸집은 작은데 손이 유난히 컸던 사람, 밥을 먹으면서 총만은 거머쥐고 있던 사람, 해맑은 어린 사람 등 고단한 세상을 힘겹게 사는 순분의 이웃들이었다. 순분은 자기 대신 도청에 남은 형자의 유언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도청에 끝까지 남아있던 사람들을 잘 기억해둬. 어떤 사람들이 이 항쟁에 가담했고 투쟁했고 죽었는가를 꼭 기억해야 돼. 그러면 너희들은 알게 될거야. 어떤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가는가를… 그것은 곧 너희들의 힘이 될 거야." -<깃발> 중에서-

그렇게 80년 5월 광주는 87년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80년 5월 광주를 생생하게 묘사한 것으로 주목을 받았던 소설 <깃발> 이었지만 분명 한계는 있다. 지나치게 계급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광주항쟁이 초기 일부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 시민들의 항쟁으로 변모하는 과정 중 후자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고는 하지만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볼때 조금은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이 1988년에 발표되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저자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1988년 당시만 해도 여전히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건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어느 매체보다 직접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충분히 문학사적으로 평가할만한 대목이다. 

87년 5월에 보았던 80년 5월의 진실, 80년 5월에도 그랬고 87년 5월에도 그랬듯이 위정자들은 광주의 비극을 숨기려 하지만 역사라는 거대한 물결은 그날의 진실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2011년 오늘, 광주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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