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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어린이날에 읽는 방정환 탐정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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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1899~1931)의 <칠칠단의 비밀>/「어린이」연재(1926~1927)/사계절 펴냄, 김병하 그림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인생의 절반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는데도 망각의 한계를 뛰어넘어 여전히 흥얼거릴 수 있는 이 가사가 바로 어린이날 노래다. 국민학교(초등학교) 교가도 토씨 하나라도 틀리면 선생님의 호된 매질을 견뎌야 했던 국민교육헌장도 세월의 강에 흘려보냈건만 어린이날 노래만큼은 실낱같은 기억의 끝자락을 옴팡 붙들고 있으니 그날이 무던히도 특별하긴 특별했나보다. 하기야 어릴 적 그날의 의미는 설날 받은 세뱃돈과 추석날 먹었던 맛난 음식에 감히 견줄 수 없는 우리들만의 명절이고 우리들만의 세상이었다.

한편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니 왜 그날만 특별해야 했을까 하는 씁쓸함이 문득문득 스쳐지나가곤 한다. 며칠 전 접했던 기사 한토막은 이 특별한 날이 왜 특별해질수 밖에 없는지 의문해결의 단초를 제공해 주고만다.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어린이날을 앞두고 설문을 벌인 '2011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의 국제비교'를 보면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이 때에 철없는 아이들의 투정쯤으로 치부하기에는 물질이 행복의 척도가 아니라는 새삼스런 진리가 버겁게 다가오는 오늘이다. 


소파 방정환이 어린이날을 만든 데는 이 날이 특별한 날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이 있지는 않았을까?

칠칠단의 음모를 파헤쳐라!

책 블로거로서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한다면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이 동화작가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니 얼핏 알았다치더라도 어떤 동화들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어른이 되어서야 처음 접해본 방정환의 동화 <칠칠단의 비밀>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칠칠단, 도대체 칠칠단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이 말해주듯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하게 느껴지는 어린이 탐정소설이 바로 <칠칠단의 비밀>이다. 외남산 망원리의 복사꽃, 장충단의 개나리, 서강 건너와 청량리의 수양버들...서울의 봄에 찾아온 일본 곡마단. 이 곡마단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줄타기하는 열네살 여자아이와 열여섯살 남자아이다. 무대에서는 아슬아슬한 곡예로 박수갈채를 받지만 무대 뒤편에서는 곡마단 단장의 가혹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아이들이다.

꽃이 만개한 봄날, 곡마단을 찾아온 한 노인의 등장으로 밝혀진 곡마단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출생의 비밀은 <칠칠단의 비밀>을 본격적인 탐정소설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한다. 곡마단의 이 아이들은 다름아닌 조선 사람이었고 순자와 상호라는 이름을 가진 친남매였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남매는 탈출을 감행하지만 상호만이 성공하게 되고 순자는 곡마단 단장의 폭력 속에 중국으로까지 끌려가게 된다. 

일본 곡마단은 보통의 서커스단이 아니었다. 중국인과 협작한 칠칠단이라는 조직의 일원으로 그들은 무서운 음모를 숨기고 조선 땅에서 곡마단으로 위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칠칠단, 이름만으로 짐작하듯 그들의 암호는 숫자 '7'이다. 그들의 아지트를 들어갈 때도 일곱 번 문을 두드리고 서로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손가락으로 칠을 만든다. 그렇다면 칠칠단은 무슨 음모를 꾸미기 위해 곡마단으로 위장하고 조선 땅을 누비고 다녔을까?

탐정이 된 상호의 뒤를 따라 그들의 음모를 파헤쳐보자. 아니 여기까지다. 아이와 함께 도란도란 앉아 칠칠단의 추악한 음모를 직접 추적해 보기 바란다. 오늘은 어린이날이 아닌가!  

어린이날과 피리부는 사나이

어린이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소파 방정환이다. 그는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고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는 등 짧은 생을 살았지만 어린이 문화운동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인물이다. 동화 <칠칠단의 비밀>도 그가 창간한 잡지 <어린이>에 1926년부터 1927년까지 연재된 소설이다. 그러나 방정환에 대한 연구는 그리 활발하게 일어나지 않고 있다. 아동인권에 대한 빈약한 사회적 인식만큼이나... 

혹자는 동시대 지식인들이 일제의 탄압으로 잦은 활동상의 제약을 받았던 것과는 달리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했다는 점에서 친일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혹일뿐 구체적인 자료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파 방정환의 평전인 <조선청년 방정환>에 따르면 그는 사회주의적 경향이 짙은 작품들을 남겼다고 한다. 한복의 개량화와 대가족 제도의 혁파를 주장하는 등 진보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했단다. 또 재밌는 사실은 국내 최초의 비행사로 알려진 안창남이 일본 도쿄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비행기를 몰고 날아왔던 고국비행쇼의 기획자가 방정환이었다고 한다.

방정환이 처음으로 어린이날을 제정한 날은 1923년 5월1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이 노동절과 겹치는 탓에 5월 첫째주 요일로 바꾸었는데 해방 후 5월5일로 정착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독일 하멜른시에는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아동인권을 말할 때 자주 언급되곤 하는 전설로 13세기 독일 하멜른시에 쥐로 인한 전염병이 창궐할 때 '피리부는 사나이'가 나타나 쥐떼들을 강물 속으로 유인해 전염병을 막았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피리부는 사나이'에게 약속했던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 이에 앙심을 품은 '피리부는 사나이'는 하멜른시의 어린이들을 어디론가 유인해 데리고 갔다는 전설이다. 

아직도 체벌이 교육적이라는 아동인권에 대한 저급한 사회인식이 팽배해 있고 아이들에 대한 무상급식보다는 시혜적·선별적 급식이라는 아동인권을 도외시한 복지가 정부정책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뿐인가! 가정에서도 아동의 권리보다는 부모의 욕심과 기대치에 따른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가정과 사회의 아동인권에 대한 인식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피리부는 사나이'의 출현은 예고된 수순인지도 모를 일이다. 

1959년 11월20일 제14차 UN총회에서 채택된 '아동인권선언'에는 인종과 종교, 태생이나 성별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적절한 영양과 주거, 의료 등의 혜택을 받을 권리,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와 놀이와 여가시간을 받을 권리, 전쟁이나 재난으로부터 제일 먼저 보호받고 구조될 권리, 학대·방임·착취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등을 명시하고 있다.

어린이날 아침, '아동인권선언'을 한번쯤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더이상 어린이날이 특별한 날이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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