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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똥배충만 아저씨들, 그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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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홍은미의 <아저씨 록밴드를 결성하다>/2009년/글담 펴냄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공자는 자신의 일생을 이렇게 표현했다. 삶을 배우고 어느 순간부터는 삶을 달관했다는 공자의 말에서 성인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삶에 대한 학습과 달관의 중간지점이 바로 사십이다. 공자는 이 사십을 불혹이라 했다. 내적인 갈등과 외적인 유혹을 감내해야 하는 나이가 사십이다. 그러나 성인으로 칭송받는 공자야 가능했겠지만 우리네 사십대가 받는 유혹을 불혹으로 견뎌내기에는 아틀라스 어깨에 놓여진 지구의 무게을 훨씬 더 초과한다.

그들의 또다른 이름 중년, 아저씨. 삶의 무게만큼이나 축 처진 똥배충만한 중년 아저씨들이지만 그들은 늘 반란을 꿈꾼다. 정치적으로도 그들이 움직이면 혁명이 된다. 그들의 반란은 세상을 바꾼다. 그러나 생활 반란은 여전히 남편이란 이름으로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정의된 가장의 무게에 작아지고 또 작아진다. 여기 생활반란을 꿈꾸는 중년들이 있다. 중년 아저씨들의 생활반란, 그들의 아름다운 반란을 엿볼 수 있는 책이 있다.

[아저씨 록밴드를 결성하다]는 두 명의 젊은 여성이 꼰대 중년들에게 던지는 파격적이고 당돌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녀들이 말한 것처럼 똑같은 넥타이에 검은 양복으로 뱃살을 가린, 섹시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중년 남성들에게 굳이 뻔한 답이 올 것 같은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한민국 아저씨들이여! 당신을 찾고 당신을 즐겨라. 그러기 위해서는 당당해져라. 당당해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신하라’ 정도가 아닐까? 

대한민국 문화의 주류는 소위 말하는 강남문화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파도에 맞서 문화 다양성에 대한 욕구와 주장이 범람하지만 일상을 지배하는 미디어 속에서는 럭셔리한 명품들이 소개되고 부잣집 아들과 신데렐라를 꿈꾸는 평민 여성간의 사랑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압구정동에서 최신 유행하는 패션을 따라 해야만 현대를 사는 문화인이라고 떠들어댄다. 

[아저씨 록밴드를 결성하다]도 뱁새의 다리를 가진 보통 사람들이 범접하기에는 가랑이 찢어지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는 괴리감과 박탈감도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하며, 아직은 생소한 강남의 라이프 스타일 소개까지…그러나 나무만 보고 숲을 다 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두 명의 젊은 여성들이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 아저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살아온 삶에 대한 존경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바램일 것이다.

[아저씨 록밴드를 결성하다]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에서는 8명 중년 아저씨들의 무모한 도전과 놀이를 통해서 삶의 무료함에 지친 절망을 벗어 던지고 중년이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이라는 희망을 보여주고자 한다. 후반부에서는 배불뚜기 ‘중년 아저씨’가 아닌 ‘꽃중년’으로의 변신을 위한 팁을 소개해 주고 있다.

1990년대 말 찾아온 IMF와 그로부터 10년 뒤 찾아온 세계경제위기 상황에서 대한민국 중년 아저씨들의 자화상은 축 처진 어깨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긴 한숨이다. 가정과 직장을 삶의 최고 가치로 여기며 살아왔다. 이런 생의 한 가운데 ‘나’는 없었다. 아니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40대를 넘어서니까 밥벌이가 어느 정도 안정되고, 가정도 원만하고, 내가 죽도록 전력투구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는 거예요. 문득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죠. 내 것이 없다는 생각, 우리 나이 때면 다 하는 고민이에요. 난 도대체 뭔가, 내가 뭘 했나 하는 생각이 들 때 어디선가 음악 생각이 불끈 솟았어요.”(정승관)-Interview1 아저씨 록밴드를 결성하다 중에서

직장인 록밴드, 자전거 여행, 색소폰과 블러그, 스쿠버 다이빙, 플라잉 낚시, 패러글라이딩, 세일링 등은 인터뷰이들이 40대에 빠져드는 허탈감을 극복하고자 하는 나름의 인생 출발점이다. 여기 소개된 취미생활 뿐만 아니라 무료함에 빠진 중년 아저씨들에게는 삶의 무게에 잊고 살았던 자신의 꿈을 새로운 목표로 설정하고 시작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목표가 있을 때는 인생이 확실합니다. ‘나는 어떤 장애가 있더라도 이걸 뛰어넘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순간들이 연속해서 나타나죠. 하지만 제 나이가 되면 목표가 시시해지거나 아예 없어져 버립니다. 인생이 시시해지는 거죠.”(김병량)-Interview3 연극이 끝났다면 색소폰을 불어라 중에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CF가 유행한 적이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온 몸으로 부딪치며 가족과 직장과 사회를 위해 헌신해 온 중년들에게는 고객 숙인 아저씨가 아닌 그 동안의 삶에 대한 당당함도 필요하고 제2의 인생 황금기를 준비할 용기도 필요한 것이다.

“저 정말 열심히 살았거든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그래요, 전 재벌도 아니고 오너도 아니고 월급쟁이에요. 하지만 취미로 요트를 못 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와이프한테도 선언했어요. 내가 30년 동안 이 정도로 열심히 살았으니 취미생활은 하고 싶은 거 하겠다고요. 기러기 아빠들 보세요. 애들 미국이나 영국에 유학 보내면 일 년에 얼마가 들겠어요. 그걸 왜 자신에게 못 쓰는 거죠? 물론 와이프 몫은 따로 챙겨놓고 해야겠죠. 처자식은 영원히 남편 책임이니까. 하하.”(이명훈)-Interview8 태평양이 내 무덤이 된다 해도 중에서

중년 아저씨들의 ‘쿠데타’를 선동(?)한 두 명의 젊은 여성은 이제 본격적으로 ‘성공한 쿠데타’를 위한 전술을 가르치기에 이른다.


자글자글한 주름과 칙칙한 피부가 아저씨의 훈장이 아니라며 외모 가꾸는 남자가 사랑받는단다. 젓가락질 많이 가는 우리 음식과 밥만큼이나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소주와 폭탄주, 술 마신 다음날이면 무의식적으로 찾아가는 해장국집 대신 브런치와 와인, 사케와 라멘 그리고 베트남 칼국수를 드시란다.

강남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쉽게 접할 수 없는 외계문화 같지만 저자들이 ‘나’를 위한 투자에 무감각한 중년들에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 익숙해져 버린 아저씨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통해 끊임없는 변신을 유도하고 나아가 ‘나’를 찾으라는 간절한 바램이다.

꽃중년은 못되더라도 아저씨는 대한민국의 과거이자 현재요, 미래다. 여기에 소개된 인터뷰이들과달리 아직도 퇴근하면 알바를 두탕 세탕 뛰어야만 하는 아저씨들도 많고, 휴식이 필요한 주말이면 와이프와 자식들의 성화에 놀이공원에 끌려가는 아저씨들도 많다. 또 여전히 배바지와 대머리로 촌티 팍팍 내는 아저씨들도 많다.

하지만 음지든 양지든 사회 구석구석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아저씨들에게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재보선에서도 보았듯이 그들의 작은 반란에도 대한민국은 요동친다. 
배바지 아저씨들의 반란은 계속된다.

아줌마? 대한민국에는 아저씨도 있다

아저씨 록밴드를 결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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