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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공공도서관은 친일파를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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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2009년

이명박 정부가 이제는 공공연하게 '멍청한 정부'로 낙인찍혀 버렸다. 그것도 이명박 정부 텃밭에서 말이다. MB정권 탄생의 일등주역이라 할 수 있는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은 지난 4월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독립유공자 19명에 대한 서훈 취소 명단에 장지연이 포함된 것을 두고 '이 정권을 언필칭 보수정권이라고 하고 또 실제로 보수·우파 세력의 지지로 권력을 담임한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하는 일들을 보면 좋게 말해서 '실용'이고, 실제로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기회주의적' 집단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철학이 없는 정부로 규정했다.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장지연은 2009년 11월8일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로 독립운동을 했다는 초기와 달리 말년에는 일본 천황을 동양의 기초를 세운 태양으로 비유하는 등 친일행적으로 일관했다. 이런 장지연의 서훈 취소를 두고 이명박 정부를 향한 김대중 고문의 비난은 투정에 가깝다. 자신이 받은 언론 관계 상 중에 가장 영예롭게 여기는 '위암 장지연상'을 반납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단다. 

게다가 대한민국 대표 언론인(?)이라는 김대중 고문의 역사인식은 천박스럽기 그지없다. 

"나는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글 한 편만으로도 그분은 당대에 남을 항일지사였고 민족언론인이었음을 그 글의 맥박을 짚어 증언할 수 있다" - 김대중 고문의 칼럼 중에서-

이 무슨 해괴망측한 논리인가! 장지연이 친일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이 글 한 편으로 독립지사가 된다면 애써 친일파를 단죄하고 잘못된 과거를 청산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하기야 이들은 민간인 학살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마저도 '위대한 영도자'로 추앙하고 있으니 더 말하면 입만 아플 뿐이다.

뿐만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4월25일자 대전일보 칼럼을 보고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 대학교수는 대전일보 칼럼을 통해 이번 장지연의 서훈 취소 결정을 두고 오늘의 잣대로 역사를 재단하는 것은 부당하단다. 오늘의 잣대로 보면 세종대왕도 전제군주였고 이순신도 전제군주에 충성한 신하였단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보수들이 좋아하는 미국의 예를 친절하게 소개해 주고 잇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구절을 미국독립선언서에 넣은 토마스 제퍼슨도 사실은 수많은 하인들을 거느렸지만 오늘날에는 건국의 아버지로 미국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단다. 친일의 역사를 청산하지 말자는 말보다 더 무섭다.

공공도서관에는 <친일인명사전>이 없다

일부 보수를 가장한 수구정객들에게 휘둘릴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잘못된 과거의 청산이 대한민국에서만은 결코 녹녹치 않은 역사적 과제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또 하나 충격적인 사실은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할 공공도서관에 <친일인명사전>이 비치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공공도서관 보급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인천, 경기도 등 수도권에 위치한 공공도서관 중 <친일인명사전> 비치한 곳은 채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조사 결과 서울은 106곳 공공도서관 중 35곳, 경기도는 169곳 중 63곳, 인천은 16곳 중에 7곳만이 <친일인명사전>을 비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 1번지라는 강남도 총 9개 조사대상 공공도서관중 개포도서관 1곳만이 <친일인명사전>을 비치하고 있었다. 그나마 고양시와 부천시의 경우 조사대상 공공도서관 중 대부분이 <친일인명사전>을 비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가뭄의 단비가 되고 있다.

물론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출판사 입장의 조사이긴 하지만 <친일인명사전> 자체가 공공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또 <친일인명사전>은 30만원이라는 고가인 탓에 역사적 의미에 공감하더라도 개인이 구입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공공도서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 또한 <친일인명사전>을 구입하지는 못하고 후원인 자격으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매월 발행하는 소식지만을 받고 있는 처지다. 

우리네 공공도서관은 친일파가 너무도 싫은 모양이다. 아무리 친일파가 싫어도(?) 많은 사람들이 아픈 역사를 돌이켜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공공도서관의 역할이 아닐지.... 

뿐만 아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친일인명사전>을 검색해 봐도 그 흔한 책소개 한 줄 없다. 책소개는 물론 출판사 서평에 각종 미디어 서평까지 첨부한 여타 책들을 생각할 때 <친일인명사전>을 대하는 인터넷 서점의 태도가 안타까울 뿐이다. 

요즘은 도서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책을 신청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때 블로거 정신을 발휘해 거주하는 지역의 공공도서관 웹사이트를 접속해 <친일인명사전>을 희망도서로 신청해 보면 어떨까? 전국 모든 공공도서관에 <친일인명사전>이 비치될 수 있도록...
 
나는 그동안의 글에서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보수는 아름답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이번 김대중 칼럼을 보면서 보수의 실체를 아니 보수를 가장한 수구세력의 실체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김대중 고문은 친일파 서훈 취소를 의결한 이명박 정부를 향해 보수의 기본철학인 원칙과 가치에 대한 인식과 천착이 없다고 했다. 친일파 단죄가 보수의 기본철학을 무시했다면 그들이 말하는 보수의 원칙과 가치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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