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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성공적인 귀농을 위한 제1과 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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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영(1908~1960)<제일과 제일장>/「인문평론」1(1939.10)

 

사람은 누구나 흙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꼭 그래야만 되는 필연적 이유도 이론도 없다. 가장 자연스런 인간의 성정이다. 굳이 얘기한다면 흙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 빼고는 달리 인간의 회귀본능을 설명할 길이 없다. 특히 석회 반죽을 사이에 두고 흙과 결별해 사는 도시인들에게 보드라운 흙의 감촉은 그야말로 삶의 청량제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주말이면 맨발로 황톳길을 걷기도 하고 주말농장을 찾아 잊혀져 가는 흙내음을 되살리려 한다. 급기야 귀농 열풍이라는 현대판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직면해 있다.

 

이무영의 <제일과 제일장>은 카프 계열의 농민문학과 이광수, 심훈 등의 계몽적 농민문학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다. 또 이무영 자신의 체험적 소설이기도 하다. 그는 소설 <제일과 제일장>을 내놓기 전 동아일보 기자직을 버리고 경기도 군포의 시골 마을로 내려가 농촌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니 나름대로 체험에 바탕을 둔 진정성이 느껴지는 소설이기도 하다. <제일과 제일장>은 끊임없이 소멸해 가는 어느 도시 지식인이 해방구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는 곧 현대인의 자서전이요, 자화상이다. 이 해방구가 바로 귀농이라는 점에서 최근의 귀농 열풍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제일과 제일장>에는 문학적 성과를 떠나 많은 도시인들이 꿈꾸는 귀농의 실체와 현실적 어려움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렇다면 주인공 수택이 귀농을 결심하고 고향에 내려가 살면서 흙의 의미를 깨닫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귀농을 계획하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적잖은 참고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수택에게 농촌은 정지용 시인이 노래했던 그런 고향의 모습이었을까?  

 

1. 환상에서 벗어나라

 

귀농은 늘 전원생활과 결부된다. 어릴 적 초원의 집이라는 외화에서 보았듯이 드넓게 펼쳐진 푸른 언덕에 한가로이 집 하나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양들은 집과 들을 넘나들며 자연과 인간과 동물이 완벽한 일체를 이루는 꿈을 꾼다. 수택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했던 도시 생활을 청산하면서 꿈꾸었던 귀농은 이랬다.

 

장성해서 가본 일도 없었지만 어렸을 제의 기억대로라면 그 아카시아숲 앞에는 상당히 깊은 물도있었고 큰 고기도 은비늘을 번득이었고 숲에서는 매미며 꾀꼬리도 울었던 것같이 기억되었고숲 속의 원두막 정취도 그지없이 시적인 듯이 기억이 되었으나 -<제일과 제일장>중에서-

 

귀농은 현실이고 팍팍한 삶의 연장이다. 수택이 맞닥뜨린 농촌의 현실은 송사리때도 발소리에 놀라 쩔쩔맬 뿐이고 이 숲 속에서 울어대는 꾀꼬리는 필시 청산과부임에 틀림없을 정도로 보잘 것 없었다. 수택의 손에 들린 것은 원고지가 아니라 낫뿐이었다. 아니 낫질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게 귀농이었다. 수택 못지 않게 환상에 젖어있던 아내도 서투른 호미질이 익숙해져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게 농촌의 현실이었다.

 

수택은 깨어진 환상의 조각들을 밟으며 이대로 농촌생활을 접어야만 했을까? 꿈과 현실이 주는 괴리를 극복한 채 농촌생활을 중도에 접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환상을 포기한 순간 수택은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생각지 못했던 농촌생활의 또 다른 환상(?)을 발견하게 된다.

 

수택은 빨래 자리로 놓은 돌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양치를 쳤다. 아침저녁으로 반죽한 치분(치약)으로만 닦아온 이가 물로만 웅얼웅얼해 뱉어도 입 안이 환한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는 삽을 질질 끌고 징검다리를 건너 논길로 들어섰다. 광대 줄타듯 하던 논두렁도 어느새 평지처럼 평탄해진 것 같고 아래 종아리에 채는 이슬이 생기있는 감촉을 준다. 아스팔트를 거닐다가 상점에서 뿌린 물이 한 방울만 튀어도 시비를 걸던 일이 마치 옛날 꿈 같았다. -<제일과 제일장> 중에서-

 

수택은 풀향기가 구수하게 느껴졌고 눅눅하게 젖은 셔츠에서도 불쾌한 감촉이 없어졌다. 비로소 수택은 농촌 제일과를 마친 것이다. 마찬가지다. 귀농의 제1과는 귀농이 초원의 집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제 수택은 농촌생활을 순탄하게 꾸려나갈 수 있을까?

 

1. 과거를 버려라

 

수택이 농촌생활의 환상에서 벗어났지만 그는 여전히 양복조각을 입고 낫질하는 도시인의 때를 말끔히 씻지 못했다. 어느 날 아내가 설사를 했다. 문화생활을 해오던 소화기가 태업을 한 것이다. 그럴수록 수택은 과거와의 단절을 위해 무서운 정열로 자기의 농작물을 사랑했다. 수택이 마음의 투쟁을 거듭할수록 과거 도시생활의 추억은 그를 더욱더 힘들게 했다.

 

포근포근한 흙을 밟는 평범한 감촉보다도 가죽을 통해서 오는 포도(포장도로)의 감촉이 얼마나 현대적인가 했다. 그것은 마치 필 대로 핀 낡은 지폐를 만질 때와 빠작 소리가 그대로 나는 손이 베어질 것 같은 새 지폐를 만질 때의 감촉과의 차이와도 같았다. 사람에게서나 자연에서나 입체적인 선의 미가 그리웠다. -<제일과 제일장> 중에서-

 

그뿐인가! 애써 지은 농사도 이것 떼고 저것 떼고 나니 남은 건 한심할 정도로 보잘 것 없었다. 그가 진정한 농민이 되기 위해서는 참새를 원망하고 벼멸구에 분노해야 했다. 수확한 사십 석 중 스물닷 섬을 소작료로 바친 지주를 원망하듯...그의 농촌사람이 되기 위한 투쟁은 처절했다.

 

그렇다. 하루바삐 나도 대처 사람의 탈을 벗고 흙과 친하자. 그래서 흙의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제일과 제일장>중에서-

 

수택의 농촌생활 제1장은 눈물과 코피를 쏟으며 짊어진 볏더미만큼이나 무거웠다. 그에게 과거는 망각해야 할 대상이었고 이 지게를 짊어지고 있는 이상 더 이상 기억 속에 남아있을 리 없었다. 귀농의 제1장은 과거와의 투쟁이 아닐까? 귀농의 현실적 어려움이 무릇 이것뿐이랴마는 지금도 귀농을 준비하고 또는 귀농의 꿈을 일궈가고 있는 이들에게는 무사히 마쳐야만 하는 최소한의 제1과 제1장이지 싶다.

 

마지막으로 흙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아버지는 왜 좀도둑을 때려눕힌 수택에게 작대기 매질을 가했을까?

***이 포스팅은 이무영의 소설 <제일과 제일장>의 감상문일뿐입니다. 귀농에 대한 보다 심도있는 자료를 원한다면 다음 블로거의 글을 참고해 주십시오. 아이엠피터, 하늘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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