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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일제시대에도 부동산투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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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소설] 중 이태준의 『복덕방』/「조광」17호(1937.3)/창비사 펴냄

한국 사람들처럼 땅에 대한 집착이 강한 국민이 있을까 싶다
. 우리 사회에서 땅은 단순한 재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땅은 권력이요, 명예다. 우리 사회에 부동산 투기가 망국병이라는 오명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는 것도 이런 땅에 대한 무한한 집착이 가져온 자연스런 결과인지도 모른다. 내집에 대한 서민들의 꿈이 강렬할수록 부동산 투기는 더욱 악랄한 악마의 발톱이 되어 서민들의 꿈을 산산조각 내어 버리곤 한다. 불꺼진 아파트가 넘쳐나는데 왜 집없는 서민들은 내집 마련을 요원한 꿈처럼 생각해야만 하는 것일까?

 

부동산 투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거늘 왜 근절되지 않는 것일까? 다양한 해법들이 모색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부동산 투기 근절에 대한 권력자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서민들은 더욱 더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 수 밖에 없게 된다. 권력의 핵심과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정책 입안자들이 모두 그들이 가진 권력만큼이나 많은 땅, 부동산을 소유한 기득권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부동산 투기는 이미 법의 잣대를 넘어선지 오래다. 부동산 투기쯤이야 대통령이 되는데 장관이 되는데 의미있는 결격사유가 되지 않는다. 그들만의 리그 속에 서민들은 늘 찬밥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게 현실이다.

 

일제시대에도 부동산투기가 있었다

 

그렇다면 부동산투기가 과연 오늘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1937년 「조광」에 발표된 이태준의 단편소설 『복덕방』에서도 부동산투기의 피해자가 자살하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다.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보면 이렇다.

 

관변에 있는 모 유력자를 통해 황해 연안에 제2의 나진이 생긴다는 말이 나돈다. 안초시는 무용수인 딸을 설득해 연구소 집을 어느 신탁회사에 맡기고 삼천 원을 돌려 나진 땅에 투자하게 된다. 그러나 삼천 원이 오륙만 원은 될 거라 믿었던 안초시의 꿈은 일 년만에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관변에 있다는 모 유력자의 음모에 삼천 원만 날리고 만 것이다. 나진을 축항 후보지로 측량까지 하기는 했으나 무슨 결점이 있었는지 모르나 사업은 중단되고 서둘러 나진에 땅을 샀던 그 모씨가 그 땅을 처분하기 위해 꾸민 연극인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온갖 비난을 떠안야 했던 안초시는 독약을 먹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오늘날과 똑 같은 부동산투기 범죄가 일제시대에도 있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근대화의 어두운 그림자

 

안초시의 죽음이 가져온 결과는 어떠했을까? 또 안초시가 부동산 투기에 눈을 돌려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태준은 소설 『복덕방』을 통해 근대화가만들어낸 부동산투기의 생생한 모습 뿐만 아니라 배금주의에 물든 세태와 이로 인해 파괴되어가는 가족간 윤리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는 복덕방, 어릴 적 복덕방이 그랬던 것처럼 이태준의 소설에서도 복덕방은 소외된 군상들의 집합소로 그려지고 있다. 한때 대한제국 장교였던 서참위, 칼을 차고 훈련원에서 호령하던 기개는 온데간데 없고 지금은 복덕방 영감으로 기생이나 갈보 따위가 사글셋방을 얻어달래도 예 예하고 따라나서야만 하는 신세다. 또 박희완 영감도 늘상 이 복덕방에서 죽치고 있는데 그는 재판소에 다니는 조카가 대서업 운동을 한다며 <속독국어독본>이란 책을 끼고 와 외기도 하고 그것을 베개 삼아 낮잠을 자기도 한다. 안초시는 아예 복덕방을 내집처럼 잠까지 빌려 잔다.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다 실패했고 집까지 잡혀서 돈을 마련했으나 화재로 거지신세가 된 그였다.

 

세 영감 중에서도 안초시는 성공한 딸까지 있었으나 안경다리 하나 제대로 못 사고 종이노끈인 채로 쓰고 다녔다. 신문마다 얼굴이 나오는 안초시의 딸은 무용수다. 돈은 꽤나 벌었으나 연구소를 낸다, 집을 뜯어고친다, 유성기를 사들인다, 교제를 하며 돌아다닌다 하면서도 아버지에게는 푼 돈 몇 십전만 쥐어줄 뿐이다. 안경화 무용연구소 소장쯤 되나보다. 이런 안초시에게 돈에 대한 갈망은 누구보다 처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벌인 게 나진 땅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나진 땅 투자 실패로 자살한 안초시를 대하는 딸의 태도에서 근대화의 슬픈 그림자를 보게 된다. 안초시의 딸 안경화는 아버지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서참위에게 엎드려 울면서까지 아버지의 자살을 숨겨달라고 애원한다. 바로 안경화 자신의 명예 때문이었다. 서참위는 안경화에게 부친 위해 든 보험 전부를 부친을 위해 쓴다는 약속을 받고 안초시의 자살을 비밀로 해 두기로 한다. 서참위는 안경화를 봐서 온 조문객들이 모인 영결식장에서 뼈있는 조사를 한다.

 

나 서참윌세. 알겠나? 자네 참 호살세 호사야잘 죽었느니. 자네 살았으문 이만호살 해보겠나? 인전 안경다리 고칠 걱정두 없구아무튼지….” -『복덕방』 중에서

 

서참위와 박희완 영감은 영결식장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도로 술집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여전히 저자 이태준이 주목하는 인물은 소시민들이다. 근대화의 새 물결에 밀려난 복덕방과 그 복덕방에 모여든 퇴물 인생들 그리고 근대화의 단물을 먹고 자란 젊은 세대간의 갈등을 통해 근대화로 잃어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보여주고 있다. 또 그 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이 부동산투기라는 사실은 대한민국 전체가 투기판으로 전락해가는 오늘, 무심코 넘어가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집은 책으로 채우고 화원은 꽃으로 메꾸어라*

신화읽기의 길라잡이;이윤기의 신화 시리즈

2011년 여강여호 서평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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