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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시한부 여자의 애인이 되어주고픈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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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소설] 중 이태준의 『까마귀』/「조광」3호(1936.1)/창비사 펴냄

호상
(好喪)이란 말이 있다.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의 죽음을 일컫는 말이다. 요즘에는 고통없이 생을 마감하는 죽음에도 호상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오래 살면서 고통없이 죽는다는 것은 인간이 지상에서 열망하는 마지막 바램인지도 모른다. 또 인간은 사후세계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꾸기도 한다. 간혹 사후세계를 경험했다는 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죽음 뒤에 오는 세상은 꽃과 빛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죽음도 아름다워야 할 것이다. 정말 그럴까? 세상에 아름다운 죽음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이태준의 『까마귀』는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서 찾고자 한다. 그래서인지 비평가들은 소설 『까마귀』를 사의 찬미라고도 한단다. ‘무장해제를 당한 포로들처럼서있는 정원의 나무들과 까마귀 울음소리는 소설 전체적인 분위기를 음산하게 이끌고 있다. 마치 죽음이 임박해 오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분위기다. 한편 아름다운 죽음을 갈망하는 주인공을 통해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작가 이태준의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또 우리가 불길한 징조를 알리는 새로 인식하고 있는 까마귀를 등장시켜  죽음과 동시에 주인공의 아름다운 죽음에 대한 열망을 형상화하고자 한다.  

 

시한부 여자의 애인이 되어 주고픈 남자

 

과연 아름다운 죽음이 있을까? 늘 괴벽한 문체를 고집하여 독자를 널리 갖지 못한 소설가인 주인공은 그의 괴벽한 문체만큼이나 죽음에 대한 생각도 남다르다. 그의 이런 태도는 그가 묵고 있는 친구네 별장 전나무 삭정가지에서 까악 까악울어대는 까마귀를 자연이 준 검음과 탁한 음성을 까닭 없이 저주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데서부터 엿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날 별장 정원에 매일같이 와서는 오래도록 햇볕만 쐬고 서 있다가는 되돌아가는 여인과 조우하게 되고 소설가인 자신을 알아보는 그 여인과 간단한 대화를 하게 되면서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의 괴벽한 성격은 정자지기를 통해 그 여인이 폐병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폐병! 그는 온전한 남의 일 같지 않게 마음이 쓰였다. 그렇게 예모있고 상냥스러운 대화를 지껄일 수 있는 아름다운 입술이 악마 같은 병균을 발산하리라는 사실은 상상만 하기에도 우울하였다. -『까마귀』 중에서-

 

급기야 그는 여자의 애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 여자에게 새 희망을 주고 죽음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애드가 알렌 포의 시 「레이벤」의 슬픈 주인공이 되어 애인의 아름다운 죽음을 지켜주고자 하는 것이다.

 

오오! 나의 레노어! 너는 아직 확실히 애인을 갖지 못했을 거다. 내가 너를 사랑해주며 내가 너의 주검을 지키는 슬픈 애인이 되어주마.’ -『까마귀』 중에서-

 

다소 감상적인 설정이기는 하나 이태준이 그의 소설에서 보여주는 일상을 사는 소시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느끼게 해 준다.

 

까마귀의 형상화

 

죽음에 대한 엇갈린 반응을 까마귀를 통해 형상화된다. 포의 시를 연상할만큼 아름다운 죽음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는 그와 달리 여자는 정원의 까마귀를 볼 때마다 무슨 음모를 가지고 복면하고서는 자신의 뒤를 쫓아다니는 음흉한 사내처럼 스름 끼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다. 여자도 처음에는 죽음을 꽃밭에 뛰어들 듯 아름답게 생각했다. 그러나 죽음이 임박해 오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죽음이 먼 미래인 자와 죽음이 현실인 자는 친구인 까마귀와 무서운 짐승으로서의 까마귀로 극명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

 

여자에게는 이미 애인이 있다. 그녀의 가슴에서 나온 피를 반 컵이나 먹기까지 한 애인이 있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의미가 없다. 산 자와 죽음에 다가서는 자와는 어쩔 수 없는 서로 다른 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자의 죽음을 암시했던 까마귀는 여자의 죽음을 아름답게 형상화하려는 주인공의 행동을 유발하게 되고 결국 그가 죽음의 공포를 인정하게끔 하는 소재가 되고 있다. 그는 여자가 꿈속에 봤다는 부적과 칼, 시퍼런 불이 든 까마귀 뱃속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까마귀 배를 갈라도 그 속에는 다른 새와 마찬가지로 내장뿐인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좀 덜게 해주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다시 쫓아가 발길을 들었으나 그때는 벌써 까마귀는 적을 볼 줄도 모르고 덮어누르는 죽음과 싸울 뿐이었다.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이 검은 새의 죽음의 고민을 내려다보며 그 병든 처녀의 임종을 상상해 보았다. 슬픈 일이었다. -『까마귀』 중에서-

 

싸락눈이 내리는 어느 오후 전나무 꼭대기에서 까마귀 서너 머리가 개울 건너 넓은 마당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여자를 실은 영구차였다. 그가 바라본 두어 대의 검은 자동차와 금빛 영구차에서 여전히 여자를 아름답게 보내주려는 저자의 애틋함이 묻어나는 소설이다.

 

소설 『까마귀』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우울하고 음습하다. 한편 이런 음산한 분위기는 현실에서 소외된 소시민을 연민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휴머니즘을 극대화시켜주는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까마귀들은 이날 저녁에도 별다른 소리는 없이 그저 까악까악거리다가 이따금씩 까르르 하고 그 GA 아래 R이 한없이 붙은 발음을 내곤 하였다. -『까마귀』 중에서-

*집은 책으로 채우고 화원은 꽃으로 메꾸어라*

신화읽기의 길라잡이;이윤기의 신화 시리즈

2011년 여강여호 서평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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