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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콩밭에서 로또대박을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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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소설] 중 김유정의 『금 따는 콩밭』/「개벽」속간 4호(1935.3)/창비사 펴냄

올 설은 어느 때보다 시장 바구니가 가벼웠다. 치솟는 물가, 쥐꼬리만큼 티도 안나게 부푼 월급봉투, 생색만 낸 최저임금. 경기회복을 입버릇처럼 떠들어대는 정부의 장밋빛 발표와는 달리 서민들 생활은 날이 갈수록 팍팍해져만 간다.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민심이 무섭다느니, 민심이 천심이라느니 입에 발린 소리가 난무하고 있다. 어디에도 진정성 있는 자기반성은 없다. 희망을 잃은 서민들, 도대체 서민들은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지 지나온 터널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마주치는 건 또 다른 터널뿐이다. 팍팍한 삶의 대안은 대박뿐이다. 여기저기 대박을 쫓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대박을 쫓다 지치면 쪽박인 것을 여기까지 생각할 틈이 없다.

 

대박을 쫓는 사람들

 

충청도 어디에는 로또 명당으로 유명한 로또 판매점이 있단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로또를 구입한 사람들 중 십 수 명이 대박의 꿈을 이루었다니 그야말로 명당은 명당이 확실해 보인다. 어느 여행사 관광상품에는 이 집을 방문할 수 있는 투어상품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한 번이라도 로또 1등을 배출한 판매점들은 의기양양하게 플랭카드를 내걸고 대박을 쫓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5등이라도 한 번 당첨되고 나면 로또 대박이 현실처럼 다가온다. 이번 주에는 오 천원, 다음주에는 만 원, 또 그 다음주에는 십 만원이렇게 불어난 돈은 급기야 사람을 미치게 하고 가산을 탕진하게 한다.    

 

어디 로또 뿐이던가! 강원도 어느 산골에는 카지노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로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한 번의 요행으로 하룻밤 새 수 억 원을 벌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쫑긋해 모이는 사람들이다. 숙소가 없으면 노숙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단 며칠 만에 수 억 원, 수십 억 원을 잃었다는 보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들 뒤에 수 억 원, 수십 억 원을 딴 이들이 숨어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대박의 주인공을 상상으로 창조해 내고 나 또한 그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산골 마을에는 오 갈데 없어 노숙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대박을 꿈꾸고 모여든 이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콩밭에서 콩 대신 금()을 따는 사람들

 

여기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이 또 있다. 충청도 어디도 아니고 강원도 어디도 아니다. 콩밭이다. 도대체 이 콩밭에는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길래 이들은 콩은 아니 거두고 곡괭이로 온종일 땅만 파고 있는 것일까?

 

김유정의 소설 『금 따는 콩밭』은 궁핍한 농촌현실이 해학적인 기법으로 묘사되고 있다.웃어야 되는데 웃을 수 없다. 콩밭에서 금을 캐고 있는 코미디 같은 설정에 얼마 지나지 않아 울어야 되는 반전, 이것이 김유정 소설의 특징이다.

 

영식과 그의 아내는 콩 농사는 안중에도 없다. 그저 어제도 오늘도 연신 곡괭이질만 한다. 징역 갈 줄 알라는 마름의 포악에도 이들 부부는 곡괭이질을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지금 말똥 버력(광석이나 석탄을 캘 때 나오는 광물 성분이 섞이지 않은 잡돌)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말똥 버력에는 금이 들어 있단다.

 

영식이 부부가 콩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데는 수재란 놈 때문이다. 아니 수재란 놈은 바람만 넣었을 뿐 이들의 팍팍한 현실이 주범이다. 올 봄 보낼 비료값, 품삯, 빚에 빚진 칠 원으로 나날이 쪼달리고 있는 판에 금점으로만 돌아다니고 있는 수재의 유혹은 너무도 달콤했다. 아내도 뒷집 양근댁이 금점 덕에 남편이 사다 준 흰 고무신을 신고 느릿느릿 걷는 것이 부러운 터였다. 올해는 금점 덕에 코다리(명태)를 먹겠구나 하는 생각에 속이 메질 듯 짜릿했던 아내는 영식의 옆구리를 찔러 벌인 일이었다. 영식이 부부는 빚까지 내어 산신에게 고사도 지냈다. 그러나 나오라는 금은 안 나오고 애먼 콩밭만 너덜너덜해 갔다.

 

금도 금이면 앨 써 키워 온 콩도 콩이었다. 거진 다 자란 허울 멀쓱한 놈들이 삽 끝에 으츠러지고 흙에 묻히고 하는 것이다. 그걸 보는 것은 썩 속이 아팠다. 애틋한 생각이 물밀 때 가끔 삽을 놓고 허리를 구부려서 콩잎의 흙을 털어주기도 했다. -『금 따는 콩밭』 중에서-

 

이들 부부는 콩밭이 다 망가진 후에야 대박 꿈에서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한다. 수재도 수재 나름대로 후탈을 막으려 붉은 황토로 말미를 번다. 그동안 붉은 황토를 본 적이 없는 영식이 부부는 버력이라는 수재의 말만 믿고 눈물까지 흘린다. 무지한 이들 부부를 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거짓말은 결코 오래 가지 않는 법. 영식과 수재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상상하는 그대로니 상상에 맡겨도 될 성 싶다.

 

김유정의 해학은 늘 슬프다. 『금 따는 콩밭』도 마찬가지다. 어리숙하고 순진해 보이는 영식이 부부를 보며 슬픈 웃음을 애써 참지 못하는 것도 김유정표 해학 때문이다. 땀 흘려 일하고 일한 대가로 충분히 삶이 영위되는 사회, 대박을 쫓지 않아도 삶 그 자체가 대박이 되는 인생, 정녕 꿈이란 말인가!

 

오늘도 충청도 어느 시골마을과 강원도 어느 산골마을에는 대박을 쫓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마치 불을 찾아 헤매는 불나방처럼….

우리네 마음을 콩밭으로 내몬 주범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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