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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공짜에 흥분한 나, 대머리 아저씨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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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년 동안 하루가 멀다하고 밤잠 설치고 휴일도 반납한 채 사업에 매달렸건만 결국 돌아온 건 빚 뿐이었다. 그나마 빚이야 어떻게든 갚지 못할까 싶었는데 문제는 건강이었다. 스트레스성 두통으로 일주일 중 5일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생활해야만 했다. 대학 졸업 후 불과 몇년에 불과했던 직장생활이 그렇게 자주 떠오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역마살 낀 성격도 아닌데 무슨 배짱으로 느닷없이 짐싸들고 대전으로 내려왔는지 소용없는 후회와 한숨만 연발하는 내가 얼마나 초라해 보이던지. 너무 철부지도 그렇다고 너무 어른도 아닌 황금같은 30대를 그렇게 어영부영 낙오자의 삶을 살았으니 참 딱하기도 했다. 게다가 너무 많아 고민이던 머리 숱은 어느날 만져보니 횡한 감촉만 느껴지고 세면대 물빛마저 검게 물든 걸 보면 거울 속 내가 그렇게 못나 보일 수가 없었다. 나이탓인지 시련탓인지 선명했던 기억들은 봄날 아지랭이 핀 들판을 보는 듯 실눈을 하고 봐도 어른어른하기만 했다. 그나마 블로그가 그 시련의 시간을 함께 해준 벗이 되어 주었다. 쇠퇴해가는 기억 대신 메모를 하자는 아주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으나 어느덧 하루 일과 중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아침에 퇴근하면 가장 먼저 블로그를 열어본다. 그리고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닌다. 베스트 셀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요즘 트렌드 정도는 알아야겠다 싶어서다. 그제는 알라딘을 로그인하고 깜짝 놀랐다. 전날까지만 해도 불과 책 한 권값 정도의 적립금이 있었을 뿐인데, 하루 아침에 2만원이 추가로 적립되어 있는게 아닌가! 적립항목을 보니 '우수리뷰대회 도서별 1위'...기분이야 더할 수 없이 흥분되었지만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알라딘 이벤트란을 뒤져보니 지난 연말에 있었던 '제6회 알라딘 우수 리뷰 대회' 이벤트에 참여해 박지성의 [나를 버리다] 서평 중 1위를 했단다. 블로그에 리뷰를 올릴 때마다 습관적으로 인터넷 서점에 같이 올리는 터라 이벤트 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이런 게 횡재가 아닌가 싶었다. 마침 구입하고 싶은 책이 있었는데 낼모레가 설이다 보니 금전적으로 고민이 됐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우연찮은 횡재와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공짜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되고 열광했던 마음을 잠시 접고 지금 나의 책읽기와 글쓰기는 여전히 초심을 지키고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에 비슷한 고민을 해왔던 터라... 

나의 책읽기와 글쓰기 모토는 '재밌게 읽고 내마음대로 쓰자'이다. 내가 서평전문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책이나 글쓰기로 밥벌어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그저 책을 좋아하는 독자일뿐이고 취미생활일 뿐인데 책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어야겠다 싶어서 정한 나름의 원칙이다. 그런데 최근 이 원칙이 조금씩 무너져리는 것 같다. 

나만의 기록이라 생각했던 블로그에 이웃이 많아지고 관심댓글을 많이 달리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쓸때마다 부담 아닌 부담을 느끼고 있다. 나만의 생각이 아닌 많은 이웃들과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자 은연중에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는 내 자신이 스쳐지나간다. 책 한 권을 읽더라도 읽은 이의 생각은 열이면 열, 백이면 백이 다 다를진대 나는 무엇을 공감이라 생각하고 글쓰는 부담을 애써 만들어내는지 나도 잘 모를 노릇이다. 그래서 자꾸 현학적이 되어간다. 많이 배우고 많이 아는 식자들만이 현학적인 글을 쓴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요즘 보니 나처럼 책에 관한 주변 지식이 많지 않아도, 끄적끄적대는 허접한 글에도 충분히 현학적인 때가 묻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블로그가 주는 단점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아!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다. 초심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책읽기도 글쓰기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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