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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그녀를 믿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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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1925년

사랑스런 사기꾼 영주(김하늘), 범생이 시골약사 희철(강동원). 그들은 기차 안에서 짐가방과 프로포즈 반지가 뒤바뀌는 운명으로 용강마을에서 동거 아닌 동거를 하게된다. 뛰어난 연기에 넋이 나간 희철 가족의 유별난 사랑으로 용강마을 탈출이 번번이 좌절된 영주는 희철을 [고추총각 선발대회] 1등으로 이끈 일등공신이 된다. 그러나 고추총각 희철을 위해 마련된 마을잔치에 나타난 두 명의 여인. 그들은 영주의 교도소 동기들이다. 믿지 못할 그녀, 그녀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믿지 못할 그녀 영주와 찌찔한 남자 희철 그리고 희철 가족을 둘러싼 유쾌발랄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 영화 속 영주만큼이나 믿지 못할 그녀가 있다. 영주와는 전혀 딴판의 그녀다. 사십에 가까운 노처녀에다 얼굴은 주근깨투성이고 처녀다운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가 없다. 그 뿐인가! 시들고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폼이 곰팡이 슬은 굴비를 연상시킨다. 현진건의 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는 여학교 기숙사 B사감의 사랑을 갈구하는 엽기행동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깊은 연민의 정을 느끼게도 한다. B사감이 한밤중에 보인 이상 야릇한 행동은 단순한 노처녀 히스테리였을까?

노처녀 히스테리?
 
B사감은 상상 속 노처녀의 모습 그대로다.  뾰족한 입을 앙다물고 돋보기 너머로 쌀쌀한 눈이 노릴 때면 기숙사 학생들은 오싹하고 몸서리를 치리만큼 엄격하고 매서운 그녀다. 영화 속 영주의 정체가 교도소 동기들에 의해 폭로되었다면 B사감의 엽기행각은 그녀가 손발이 떨리도록 싫어하는 '러브레터'로 인해 발각되고 만다. 그녀에게 남자란 믿지 못할 것, 여성을 잡어먹는 마귀, 연애니 자유니 신성이니 하는 것도 모두 악마가 지어앤 소리에 불과하다. 발신자도 모를 연애편지를 받은 여학생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안자 하느님 아버지를 찾으며 악마의 유혹에 떨어지려는어린 양을 구해달라고 기도까지 한다니 이 정도면 중증이다.


그녀가 싫어했던 것은 러브레터뿐이 아니었다. 기숙사를 면회 온 남자는 누구든 무슨 핑계를 하든 돌려보내기 일쑤였다. 이로 말미암아 학생들이 동맹휴업까지 한 마당이니 그녀의 히스테리가 영화필름 돌아가듯 생생하다. 현진건에게는 한국의 체 호프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단순히 단편소설의 대가를 넘어 짧은 글 속에 담아낸 인물들의 탁월한 성격묘사는 현진건이 한국의 대표 단편소설 작가라는 위상을 실감하게 된다.  

일탈하지 못한 그녀의 몸부림

현진건은 B사감도 여자요 사람이라는 진리를 코믹하면서도 애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밤만 되면 변신하는 그녀의 행각이 그렇다. 기숙사 여학생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그녀의 행동은 도대체 어떠했을까?

"인제 고만 놓아요. 키스가 너무 길지 않아요. 행여 남이 보면 어떡해요."
"길수록 더욱 좋지 않아요. 나는 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키스를 하여도 길다고는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짧은 것을 한하겠습니다."

그녀는 밤이면 밤마다 사감실에서 1인2역의 연기에 빠져 있었다. 사감실에는 기숙사 여학생에게 온 '러브레터' 봉투가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그녀는 굵은 목소리로 남자역을 하는가 하면 앵돌아서는(토라져 홱 돌아서서) 여자 목소리로 바꾸어 연기를 한다. 게다가 '러브레터' 한 장을 얼굴에 문지르며 울먹이기까지 한다.

"정 말씀이야요? 나를 그렇게 사랑하셔요? 당신의 목숨같이 나를 사랑하셔요? 나를 이 나를"

그녀의 이 엽기행각을 훔쳐보는 여학생의 눈은 급기야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늘 근엄하기만 했던 B사감, 그녀가 보인 엽기행각은 분명 일탈이다. 아니 일탈하지 못한 몸부림이다. 일탈을 꿈꾸지 않은 이가 있던가! 도덕의 틀에 갇혀사는 그녀에게 일탈은 꿈이자 삶의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도덕이 삶의 기본가치로서의 의미 이상으로 다가올 때, 때로는 그렇게 강요당할 때 일탈을 시도하게 된다. B사감도 그녀의 역할이 가지는 것 이상의 도덕적 가치를 강요받았거나 스스로 그 틀에 갇혀 헤어나지 못함으로써 괴이한 이중적 행동으로 이를 벗어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도덕은 사회의 윤활유같은 역할을 하면서도 개인에게는 무형의 압박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도덕이 강압통치의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 사회에서 정치적 일탈은 낭만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도덕은 삶의 가치이자 또 삶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도덕이 삶을 지배한다면 그 일탈의 파장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단 한 번도 일탈의 꿈을 실현해보지 못했던 B사감의 엽기행각이 안쓰럽고 애처롭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대 일탈을 꿈꾸는가?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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