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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로 도로에 갇힌 2시간, 답답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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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소리없이 내리던 함박눈이 아침이 되자 겨울비가 되어 온종일 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운치있게 들렸다. 눈보다는 비를 좋아하는지라 왠지 기분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을 하면서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다. 빗소리에 흥분되었는지 깨어보니 겨우 12시였다. 여전히 들릴락말락 빗방울 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있었다. 켜둔 채 잠이 들었는지 책상에 앉아 마우스를 잡으니 '픽'하면서 새까맣던 컴퓨터 화면에 내 블로그가 나타났다. 못다쓴 글도 올리고 책도 좀 보면서 뒤적뒤적하다보니 어느덧 5시. 하루종일 내리던 비도 멎은 듯 조용했다. 창밖을 내다보니 세상이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요놈의 겨울날씨, 참 변덕도 심하다' 평소보다 서둘러 출근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버스로 40분 정도 걸린다. 둔산동에서 신탄진까지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출근해서인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제는 눈이 하도 많이 내려 20분 정도 서둘렀다. 겨울비가 내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던 예감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악몽으로 변했다. 

온통 빙판길에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어깨는 잔뜩 움츠리고 시선은 발끝만을 보고 걸었다. 아무리 조심한다해도 넘어질뻔한 위기를 수차례 넘긴 건 순전히 탁월한 내 운동신경(?) 덕분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여기저기 중심을 잃고 춤을 추는 사람들이 보였다. 몇몇 자동차는 빙판 위에서 제 갈길을 잃고 힘없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타임월드 근처를 지나면서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지만 어느 곳 하나 말끔하게 눈이 치워진 곳이 없었다. 엉망이다. 최소한 자기 가게를 찾는 손님을 생각한다면 이럴 수는 없었다. 작은 배려가 고객을 감동시키는 법인데....

어렵사리 타임월드 지하도에 도착하자 온몸이 뻐근했다. 잠시 어깨를 펴고 지하도를 나오자 내가 타야할 버스가 승강장에 들어오고 있었다. 급히 버스를 탔다. 추운 날씨 탓인지 어제따라 사람들이 많았다. 어차피 거의 종점까지 가야해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맨 뒤로 이동했다. 버스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는데도 맨 뒷자리에 한 명 정도는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왜 저 자리는 비워두었을까?' 염치 불구하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여느 때처럼 책을 꺼내들었다. 요즘은 출퇴근 버스 안에서 중국의 문호 뤼신의 책을 읽고 있다. [아Q정전]


곧이어 버스가 출발했다. 그런데 영 시원찮다. 낮에 내린 비가 얼면서 도로는 온통 빙판이었다. 버스는 거북이보다 못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제 아무리 토끼가 게으르다해도 이 거북버스는 토끼를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 서둘러 출발했지만 출근시간은 빠듯해 보였다. 어쨌든 뤼신의 [아Q정전]을 다 읽었다. 거의 다 왔겠지 싶어 책을 덮고 밖을 내다보니 겨우 대화공단을 통과하고 있었다.

여전히 버스 안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버스는 대한통운 앞에서 신탄진 방향으로 우회전하자마자 멈추고 말았다. 이솝우화에서는 토끼가 게으름을 피우더니 어제는 요놈의 거북이가 낮잠을 자고 있었으니....5분이 지나고 10분이 흘렀는데도 버스는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을 보니 벌써 9시가 다 되었다. 같이 일하는 형님한테 좀 늦을 것 같다고 전화를 했다.

"형님, 전데요"
"왜? 내가 아직 안와서?"
"아뇨, 저 아직 버스 안이에요. 아직 와동도 못왔는데, 버스가 움직이질 않네요"
"나도 지금 40분째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다."
"그래요?..저도 서둘러 가겠습니다. ㅎㅎ"

여기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20분이 흘렀다.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어딘가와 전화통화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연축동이나 와동에 사는 사람들은 기다리다 지쳤는지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걸어갈 모양이었다. 도대체 사고 때문인지, 빙판이라 앞 차들이 언덕배기를 넘지 못하고 있는건지 답답했다. 앞에 있는 사람들도 버스기사에게 물어보지만 뾰족한 대답이 없었던지 답답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들 나름의 바쁜 이유가 있을진대 왜 이렇게 대기만 하고 있는지 알려주면 좋겠건만, 버스야 같은 노선의 다른 버스와 연락을 취하면 쉽게 알 수 있을텐데....여기도 서비스가 엉망인 건 마찬가지였다. 여기저기 발만 동동 구르는 소음이 들렸다. 처음 보는 옆사람에게 왜 이러냐고 묻는 승객들도 있다.

대기한 지 40분 정도가 흘렀을까? 버스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여기서부터는 느리지만 쉼없이 달렸고 나는 한일병원 정류장에서 내렸다. 9시가 출근시간인데 벌써 10시였다. 버스가 떠나고 건너편을 보니 이제는 시내로 들어가는 차들이 꼼짝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도로가 얼어서였나보다.

서둘러 회사에 들어가니 조금 전 통화했던 형님이 먼저 와 있었다. 형님도 방금 도착했단다. 그런데 항상 나보다 먼저 출근하던 직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이들도 도로에 있으리라. 들어보니 빙판길 사고 때문이었다고도 하고 자동차들이 언덕을 제대로 넘지 못해 그랬다고도 한다. 나와 형님은 불만을 토로했다. 방제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면 경찰들이라도 나와 통제를 하던지....눈이 내리기 시작한 시점도 4~5시 사이였으니 공무원들도 예상된 혼란이었을텐데....오는 중에 어디에도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형님도 마찬가지였단다. 여기도 엉망이다. 물론 좀 더 혼잡한 곳에는 경찰과 공무원들이 있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그래도 늑장대응이라는 비난은 피하지 못할 것 같다.

하기야 대전처럼 재해가 자주 일어나지 않는 곳에서는 모든 준비와 대응이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닐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그렇지. 그렇다면 몸으로라도 봉사해야 하는 게 시와 경찰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보다 늘 일찍 출근하던 직원들도 어제는 나보다 40분 늦게 출근했다.

늘 좋은 예감을 갖다주던 겨울비가 어제는 도로에 갇혀 2시간 동안 짜증나고 답답한 기억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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