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 포스팅/북 리뷰

책의 포로는 되지마라

반응형

▲한국의 책쟁이들▲임종업 지음

2009년 8월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살아생전에 독서광으로도 유명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종점에서도 만나지 못하는 기차 레일처럼 찬반의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를 평가하는 이들의 이념과 지역이 그를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세웠지만 그래도 이념과 지역을 떠나 동의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 최초의 고졸 대통령, IMF 위기극복, 최초로 남북정상회담 성사,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등 그를 대표하는 이런 단어들 뒤에는 끊임없는 책읽기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만권의 책이 쌓여있던 동교동 지하서재를 아직도 비자금 창고로 믿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의 책쟁이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책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저자의 말처럼 텔레비전이 왕왕대고 인터넷으로 무한정 정보가 흘러도 잉크·종이의 향이 고인 우물에 엎드린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왜 책의 무게로 바닥이 내려앉을까 두려워 편하디 편한 아파트 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책을 모으고 책을 읽는 것일까? 너무 거창한 답은 피하고자 한다. 그냥 책이 좋은 사람들이니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성공했냐의 여부를 떠나 그들이 현재 서 있는 자리를 책이 마련해 주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책쟁이들을 보면서 따라쟁이가 되면 될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현란한 비주얼이 판치는 세상에 보잘 것 없는 짬을 내어 허름한 동네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을 서핑할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다만 미련퉁이 책쟁이들을 통해 책읽기에 대한 부담만 잠시 내려놓으면 된다.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
최근에는 조금 덜하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유교적 권위주의는 우리의 책읽기를 무거운 짐처럼 느끼게 한다. 그림 하나 삽입되지 않고 깨알같은 글씨만 가득한 책만을 책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몇 년 전 출장차 일본에 간 적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다는 일본 국민. 내가 본 그들의 독서는 만화였다. 어릴 적 만화가게라도 가면 마치 불량학생 취급당했던 기억이 났다. 만화 마니아 박지수씨는 다섯 살 무렵 만화잡지 《보물섬》을 보면서 한글을 깨쳤다고 한다. 이래도 만화가 모범학생과 불량학생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지구상에서 활자화 된 책 중에서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없다. 자신의 나이에 맞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을 골라 읽으면 된다.


어떻게 책을 읽을 것인가?

적지 않은 아니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수능을 위해 책을 읽는다. 블로그 매니아들은 내 글을 뽐내기 위해 책을 읽는다. 어떤 이는 미디어에서 1년 동안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전 국민의 30%가 넘는다는 소식에 혹시 나도 그 집단에 속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서점을 찾는다. 자연스럽게 책읽기가 부담으로 다가온다.

읽고 싶을 때 읽어라. 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을 매워주는 것이 책이다. 직업의 종류만 수십만이니 경험하지 못한 일이 얼마나 많겠냐마는....

화천 상서 우체국장 조희봉씨는 책을 많이 사지만 요즘 책읽기는 거의 못한다고 한다. 봄이면 산나물, 여름이면 옥수수, 가을이면 추석 상품 등 제철 농산품을 판매하느라 시간을 낼 수 없단다. 스스로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을 없앴단다.

책을 읽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
얻을 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읽지 않는 게 좋다. 책읽기의 열매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책읽기의 즐거움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성숙해져 가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윤태규 선생님은 직업상 책읽기에 빠졌다. 아이들에게 재밌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자신도 배우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즐거운 책읽기를 통해 진리가 보이고 더불어 사는 사회 일원으로서 작은 역할이나마 하게 될 것이다.

‘황진이’,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로 불리고 황진이의 유혹을 사제관계로 승화시킨 화담 서경덕은 ‘독서란 사색하면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무슨 책을 읽을 것이며, 어떻게 읽을 것이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보다 중요한 것은 읽은 책에 의문을 갖는 것이다. 단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즐겁게 읽어야 되고 체험을 통해 행간을 읽을 수 있으면 된다.

책은 마음이 가는대로 읽되 책의 포로가 되면 안된다. 만나고 기꺼이 웃을 수 있어야 진정한 책읽기다.


반디앤루니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