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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캡틴 박지성, 더 큰 나를 위해 나를 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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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의 <나를 버리다>/2010년

2002년 6월14일. 5천만 붉은 악마의 시선은 온통 한국 대 포르투갈의 예선 마지막 경기가 펼쳐진 인천 문학경기장으로 향했다. 비록 폴란드를 상대로 월드컵 사상 첫승을 올리기는 했으나 16강 진출의 제물로 삼았던 미국과의 경기를 1대1로 비긴 탓에 붉은 악마의 열기는 한여름 태양보다도 더 이글거리고 있었다. 경기장에서, 거리에서, 집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고 때로는 숨을 죽이며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옆사람 손을 힘껏 잡아야만 했다.

이기면야 얼마나 좋겠냐마는 16강 진출을 위한 경우의 수를 따지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비겨야만 하는 경기. 그러나 포루트갈에는 세계적인 축구스타 피구가 버티고 있었다. 홈이라는 잇점 빼고는 어느 것 하나 포르투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우리로서는 져도 그만인 경기지만 어디 승부의 세계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기만 한 것일까! 더구나 월드컵 개최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경기였다.

붉은 악마의 간절한 심정이 전해졌을까? 포르투갈의 걸출한 스타 피구는 있으나 보이지 않았고 우리 선수들의 몸놀림은 그 어느 경기보다 가벼워 보였다. 득점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후반 25분 대표팀 막내 박지성은 날아오는 공을 가슴으로 트래핑한 뒤 절묘한 왼발 슛으로 포르투갈의 골문을 시원하게 뚫었다. 그는 대지가 진동하는 함성을 뚫고 어디론가 뛰었다. 그곳에는 히딩크 감독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승과 제자의 뜨거운 포옹이 전국을 감동시켰고 결국 1대0 승리, 그리고 16강 진출. 그날 경기는 한국 축구사에서 일대 사건이었다. '캡틴 박지성'은 그렇게 우리의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그는 어느덧 프리미어리그의 세계적인 축구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축선수가 되었고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가 되었다.  

박지성의 자전적 에세이 [나를 버리다]는 그의 성공 이야기가 아닌 아직도 진행형인 그의 꿈을 향한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가 평소에 보여준 깔끔한 인터뷰 실력만큼이나 간결하고 똑부러진 문체로 오늘의 박지성이 있기까지 겪어야 했던 숱한 어려움과 지금의 성공에 만족할 수 없는 그의 꿈이 담담하게 녹아든 책이다.

비록 김남일의 경고누적으로 맡게 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주장이지만 축구팬들에게 노란 완장의 박지성 없는 대표팀은 상상조차 싫은 현실이 되어 버렸다. 그는 별이다. 희망이다. 그리고 국민들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는 연인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 영원한 캡틴이 되었을까? 박지성은 말하낟. 더 큰 나를 위해 나를 버리라고...

박지성은 평발이다. 운동선수로는 특히 90분 내내 뛰어야만 하는 축구선수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키는 작고 그렇다고 뛰어난 발재간을 타고난 것도 아니다. 그를 눈여겨 봐주는 감독도 대학도 없었다. 그는 통닭집 사장이 부러운 그저그런 선수였다.

축구선수로서의 아킬레스건을 두루 갖춘(?) 그에게 노력은 단순히 듣기 좋으라고 하는 입바른 소리가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더 큰 자신을 만들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었다. 대표팀 선수가 되기까지도 그랬고 맨유(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도 그랬다.

"난 연습 절레가 돼야 했습니다. 축구를 막 시작하던 무렵에는 발등 구석구석마다 3000번 이상 볼이 닿아야 감각이 생긴다는 선생님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모든 훈련이 끝난 후에도 난 매일 빠짐없이 개인 훈련을 했습닏." -[나를 버려라] 중에서-

그는 유령이 되어야 했고 경기를 이기고도 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무릎에 난 부상의 흔적들을 북두칠성이라 부른다. 틀림없을게다. 하늘의 그것은 그냥 떠 있으면 되지만 박지성의 북두칠성은 열번 넘어지고 백번 채이고 천번 일어나야 생기는 별이니 말이다.

박지성은 말한다. 빛나는 명품 조연이 되고 싶다고, 보는 이들에게 골은 축구의 모든 것이다. 골이 이루어지기까지 수없이 벌어지는 노력의 과정들은 골 한 방으로 잊혀지고 골을 넣은 선수에게만 열광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열리는 프리미어리그도 박지성이 골을 넣어야만 대서특필된다. 우리는 늘 골넣는 박지성을 원한다. 그러나 박지성은 골잡이가 아니다. 그는 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게 공격수가 됐건 미드필더가 됐건 그리고 맨유에서건, 대표팀에서건.

"축구뿐 아니라 다른 조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역할을 망각하고 모두 보스가 되고픈 사람들로 넘치는 조직이 과연 제대로 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어떤 조직이든 경쟁은 필수적이라고 해도, 승리 그 이상을 뛰어넘는 경쟁은 스스로 무너지는 일일 것입니다." -[나를 버리다] 중에서-

박지성은 맨유의 골잡이 루니와의 찰떡궁합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자신이 비록 주연은 아니지만 조연으로서 최선을 다해야만 루니의 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그러잖은가! 아무리 주인공이 명연기를 펼치더라도 조연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영화는 대박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박지성은 명품조연 유해진과 많이 닮았다. 

 
 

또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꿈을 향한 노력과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래서 최고가 된 박지성 뒤에는 끊임없는 소통과 자기 희생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나를 위해 나를 버리는 방정식이 비로소 해법을 찾게 되는 과정이다.

[나를 버리다]에는 박지성의 꿈과 희망에 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박지성을 둘러싼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소개되어 있어 읽는 재미와 감동을 더해준다. 네티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박지성과 이영표가 경기 도중 손을 맞잡은 사진의 뒷얘기, 악동 루니를 비롯한 맨유의 세계적인 축구스타들에 관한 얘기, 허정무 감독과 히딩크 감독과의 인연 얘기, 처음으로 대표팀 숙소를 같이 쓴 선배 황선홍과 동료 대표팀 선수들 얘기, 가족과 연애, 결혼에 관한 그의 생각 등...

읽는 내내 박지성의 인터뷰처럼 차분해지면서도 서서히 다가오는 감동과 희망을 느끼게 될 것이다. 끝으로 박지성이 축구팬과 국민들에게 전하는 희망 메시지를 담는다.

"앞으로도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박지성이기를 희망합니다. 당신도 당신만의 그라운드에서 꿈을 이루길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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