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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따따부따

한 장의 사진이 되살린 잊혀진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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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후 5시가 가까와 오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급해지기 시작한다. 어떤 이는 살 것 없는데도 열린 가게를 들어가는가 하면 어떤 이는 잽싸게 골목길로 줄행랑을 친다. 가방을 둘러맨 학생들은 이도저도 못하고 우왕좌왕이다. 순간 어디선가 애국가가 들려온다. 사실은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다.

세상은 애국가를 빼면 그야말로 정적만이 남는다. 거리 위의 모든 이들이 동작그만을 한다. 어린 학생들과 어른들은 가슴에 손을 올린다. 교복에 모자를 쓰고 있는 어느 고등학생은 거수경례를 한다. 몇몇 아이들은 골목으로 몸을 피한 친구의 몸짓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연신 입술을 삐죽거린다. 옆에 서있던 아저씨가 눈치를 준다. 이내 긴장하고 웃음을 참는다. 애국가가 원래 이렇게 길었던가!

마음 속으로 애국가를 부르고 국가에 충성을 다짐했던 이가 몇이나 있었을까?

#2. 오늘도 완장 찬 사내들이 나를 기다린다. 멀리서 보는 학교는 삭막하기 그지 없다. 학교를 들어서는 친구들은 교문에서 몇 초간의 동작그만을 한다. 교문에서 정면을 향해 바라보면 늘 태극기가 힘없이 펄럭거리고 있다. 우리 학교뿐만이 아니라 모든 학교 풍경이 똑같았다.

교문에는 선이 하나 그어져 있다. 선에 닿을 듯 말 듯 두 발을 모으고 손을 가슴에 얹는다. 그리고는 바로 손을 내리고 선을 넘어선다. 완장 찬 사내가 부르더니 똑바로 하라며 다시 선 밖으로 밀어낸다. 이번에는 몇 초를 더 버텼다. 무사통과다. 이 선이 원래 그리도 높은 벽이었던가?

마음 속으로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를 외치고 국가에 충성을 다짐했던 이가 몇이나 있었을까?

#3. 시합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교실마다 참새들의 짹짹거리는 소리로 요란하다. 이 참새들 신기하게도 서로 다른 노래를 부르는데도 노랫말은 천편일률이다. 조국이 어떻니 백두산과 한라산이 어떻니 한다. 화음도 넣고 보니 그리 듣기 싫지는 않지만 노랫말은 여전히 이도 다 무시하고 똑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고 아름답다고만 한다.

교내 건전가요부르기 대회 당일, 우리반은 순위 안에 들지 못했다. 선생님은 왜 화음을 제대로 딱딱 못맞추었냐고 타박한다. 다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다들 무슨 반성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고개를 숙이고 속으로 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를 부르고 있다.

건전가요를 부르며 마음 속으로 국가에 충성을 다짐했던 이가 몇이나 있었을까?

#4. 어느덧 코와 입술 사이가 거뭇거뭇해졌다. 교실에는 각목으로 중심을 잡은 넓다란 패널이 여러장 널려 있다. 큰 전지에 피보다 진한 붉은색 물감으로 열심히들 뭔가를 쓰고 있다. 붉은색 글씨는 섬찟하다. 입으로 연신 바람과 열을 내어 글자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는 패널을 조심스레 감싼다. 패널을 든 친구를 중심으로 운동장에 모인다.

당황스럽다. 나에게 구호를 선창하란다. 창피하다. 해야만 한다. 앵앵거리는 모기소리마냥 다 죽어간다. 호랑이 선생님은 그렇게밖에 못하냐며 다시 하란다. 냅다 지른다. 붉은색 글자가 하늘을 날며 제법 굵은 목소리가 하나되어 허공을 가른다. 북한이 금강산댐을 건설한단다. 성금도 내란다. 엄마도 냈단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 돈이 어떤 놈 주머니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섬뜩한 구호를 외치며 마음 속으로 국가에 충성을 다짐했던 이가 몇이나 있었을까?

어제 아침에 배달된 신문(2010년 12월2일자 한겨레 신문)을 넘기다 본 사진 한 장이 잊혀진 기억들을 되살린다. 30년 전 그대로다.

 
▲오랫만에 보는 반공집회. 과연 이 아이들은 적개심으로 불타고 있을까?

언제부턴가 21세기와 20세기의 조우가 잦아졌다. 추억여행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겠냐마는 되살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뿐이다.

20세기 교장 선생님, 걱정마시라. 그리고 강요하지 마시라. 20세기의 구태를 강요하지 않아도 21세기 학생들은 당신보다 더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있으니...내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것은 어릴 적 배운 반공교육 때문이 아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갑게 살고 있는 땅이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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