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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지나치게 솔직한, 그래서 더욱 매력있는 백운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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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피천득은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형식이라고 했다. 덧붙여 필자가 가고 싶은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지만 차를 마시는 것과 같이 차가 그 방향을 가지지 아니 할 때에는 수돗물같이 무미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 또한 수필이라고 했다.
어찌 보면 비문학인이 가장 쓰기 쉬운 게 수필인듯 하면서도 일정부분 정형성을 띠고 있는 시나 소설에 비해 일정한 틀이 없기에 더 까다롭게 느껴지는 것이 수필이라는 의미같아 더 난해해 지는듯 하다.

수필이 그 쓰는 사람의 가장 솔직한 내면을 보여주는 문학형식이라고는 하나 자신의 글을 타인이 읽는다고 생각하면 아름답게 포장하고픈 유혹을 떨쳐버리기 힘든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더욱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야만 한다면 말이다.

범우사에서 출판한 『돌과의 문답』은 피천득이 말한 수필의 정의를 가장 충실하게 보여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해모수에서 동명왕, 유리왕에 이르는 고구려 영웅서사시로 유명한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글 중 오늘날 수필에 해당하는 글들만을 모아 새롭게 편집한 문고본이다. 즉 <동국이상국집>의 41권 중 19권부터 실린 잡저(雜著), 설(說), 잡문(雜文) 등의 수필들 중 인간 이규보를 특징지을 수 있는 글들을 모은 것이다. 한편 시(詩)만이 문학으로 인정받았던 고려 시대에 이렇게 많은 잡글(?)을 남긴 이규보도 평범한 선비가 아니었음이 미루어 짐작이 간다.

엮은이가 책의 머리말에 밝혔듯이 이규보는 당시 여느 선비들처럼 술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웅들의 신선놀음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미인은 멀리 했다고 하니 이 또한 그의 비범함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이규보도 관직에는 그의 문학을 이용할만큼 욕심이 많았다고 한다. 엮은이의 의도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돌과의 문답』에 실린 수필들은 이런 이규보를 특징지을 수 있는 편집이 엿보인다. 남다르게 인생을 관조하는 파격이 돋보이는 글들이 많다.

이 책의 첫번째 글인 <돌과의 문답>에서부터 그의 시문은 예사람을 본받지 않았다는 그의 문학적 특징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흔히 옛글에서 돌이나 바위는 변치않는 우직함과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지조를 상징하곤 한다. 그러나 이규보는 그만의 독특한 해석을 내놓는다. 한편으로는 그가 영향을 받았다는 노장 사상의 일면도 엿보인다.

"나는 안으로는 실상을 온전케 하고 밖으로는 연경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물(物)에 얽매이기도 하고 물에 무심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끌리기도 하고, 사람에게 아무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흔들면 움직이고, 부르면 가고, 행할만 하면 행하고 그칠만 하면 그치니 가(可)한 것도 가하지 않은 것도 없다. 너는 빈배를 보지 않았는가? 나는 이 빈 배와 같은 유(類)인데 네가 어찌 나를 힐난하느냐" - <돌과의 문답> 중에서 -


그는 똑같이 출발한 나룻배가 한 쪽이 빨리 도착한 것을 두고 갈대잎같은 배도 뇌물이 있고 없는데 따라 빠르기도 하고 느리기도 하는데 벼슬길 경쟁에서도 당연하지 않겠냐며 다른 날에 참고로 삼겠다고 한다. 자신의 문집에 이런 글도 남겼다니 오늘날 겉다르고 속다른 정치인들이 읽으면 얼굴이 붉어지리라! 뿐만 아니다. 술을 좋아했던 그였던지라 술병 또한 예사로이 바라보지 않는다.

"너의 뱃속에 담겨져 있는 것을, 사람들은 옮겨다가 자기의 뱃속에 넣고 있다. 너의 배는 비록 가득 찼다 하더라도 때때로 덜어내기 때문에 넘칠 염려가 없으나, 사람의 배는 가득가득 차도 반성할 줄 모르고 마시기만 하니 마침내 쓰러지기가 쉽도다." - <술준에게 붙이는 글> 중에서 -


현학적 허세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이규보의 글을 읽다보면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진다. 이게 또 수필을 읽는 재미다. 수필이 아니더라도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유명인들의 글을 읽다보면 지구상에 온갖 미사어구들을 동원한 가식에 역겨움을 느끼곤 하는데 정도(?)를 벗어난 이규보의 솔직함에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문고를 좋아한다. 서점에 가도 문고 코너를 가장 먼저 찾는다. 물론 문고 코너라고 해봐야 그 넓은 공간 중에 기둥 하나만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바지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문고는 언제 어디서든 꺼내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어찌보면 우리의 독서량이 적은 것도 개인들에게 현학적 책읽기가 알게모르게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양장처리된 두꺼운 책을 펼쳐야만 독서처럼 보이고 만화나 잡지, 문고 등을 들고 있으면 독서의 범주에서 빼버리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러나 활자화된 모든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심지어 그게 예술이든, 외설이든...그 가치는 사회나 타인의 시선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순전히 읽은이의 몫이다.

*오늘은 포스팅이 없어 지난 글을 다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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