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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켈트

로마 목욕 문화에 남아있는 켈트족 치유의 여신, 술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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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목욕 시스템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복합체 중 하나였다. 정신적·육체적 피로를 풀기 위한 다양한 방들로 구성된 로마 목욕탕의 의미는 위생의 원천 그 이상이었다. 목욕탕은 또한 중요한 문화의 원천이기도 했다. 아쿠아 술리스(고대 로마의 속국인 브리타니아에 있던 작은 도시, 오늘날 영국의 바스 서머셋)는 영국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로마 목욕탕 중 하나가 되었다. 오늘날 아쿠아 술리스는 켈트 부족들의 로마화 뿐만 아니라 오늘날 로마 밖에 있는 로마 목욕 시스템의 하이라이트로 인식되고 있다.

 

 

영국 서머셋 바스에 위치한 아쿠아 술리스는 이탈리아 반도 밖에 존재하는 로마 목욕탕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다. 여신 술리스Sulis(또는 술Sul)에게 바쳐진 아쿠아 술리스는 로마와 켈트의 종교와 문화의 결합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 술리스는 물과 치유 및 풍요의 여신으로 로마의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그리스의 아테나)에 동화되었다. 그러나 미네르바가 도착하기 전 술리스는 아쿠아 술리스 유적지에서 켈트인들에 의해 숭배되고 있었다. 이 온천이 자연치유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켈트인들은 이곳을 여신과 직접적으로 연결시켰다.

 

이 지역의 로마화와 관련된 고고학적 기록에 따르면 이 온천은 1만년 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700년경 이곳에 도착한 켈트인들은 온천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이곳을 다른 세계로 가는 많은 경로 중 하나라고 믿었다. 그들은 곧이어 신과 소통하기 위해 술리스 신전을 짓기 시작했다. 켈트인들이 이곳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즉 그들의 치유 관습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술리스 여신 이름으로 주문을 거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원전 43년까지 켈트 온천의 목적은 쓸모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로마인들이 이 지역에 관심을 갖고 동기화 과정을 준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이 오늘날의 바스에 왔을 때 그들은 켈트인들을 로마제국의 문화에 적응시키는 방법의 일환으로 그 온천을 활용하고자 했다. 바스는 이미 켈트인들에게 종교적으로 사랑받는 곳이었기 때문에 정복자들은 그곳을 로마 문화에 맞는 곳으로 바꾸려 했다. 이런 토착 전통을 채택하는 것은 로마인들이 정복지에서 수행한 고도의 전술이었다. 온천을 적절하게 로마 목욕탕으로 바꾸는 것은 현지인들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로마화시키는 훌륭한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켈트 여신 술리스에 대한 현지인들의 헌신이었다. 로마 정복자들은 자신들의 판테온에 켈트 신들을 병합하기 시작했고 미네르바Minerva(전쟁과 지혜의 여신, 그리스의 아테나Athena)가 술리스 여신에 대응하는 로마 여신으로 채택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술리스가 로마 여신과 완전히 일치하는 몇 안되는 켈트 여신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동일화 과정은 레누스 마르스Lenus Mars와 같은 켈트 남신들에서 주로 발생했다. 켈트 판테온에서 레누스는 치유의 신이었다. 그는 로마 전쟁의 신 마르스와 결합했다. 이렇게 결합된 레누스 마르스는 전쟁보다는 질병과 싸우면서 감염된 상처의 치유자가 되었다.

 

술리스는 이 규칙의 예외였는데 목욕 단지에 세워진 술리스 미네르바 동상의 단단한 청동 머리에서 가장 명백하게 증명된다. 켈트인들은 인간의 형태로 신을 묘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로마인들은 술리스를 미네르바와 같은 얼굴로 묘사했다. 그들은 아쿠아 술리스에서 미네르바의 특성을 섞어 술리스 미네르바를 탄생시켰다. 즉 술리스는 미네르바의 원래 특성을 가져와 지혜의 여신으로도 숭배되었다.

 

로마인들은 온천을 완전 기능을 하는 목욕 시설로 확장했다. 찬물과 더운물 욕조를 만들어서 각각의 구간을 통과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했다. 마지막에는 수영장을 만들어 여가를 즐길 수 있게 했다. 켈트인들의 치유 장소에 육체적·정신적 정화의 로마 표준을 결합해 로마인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켈트인들을 통치할 수 있었다. 한편 술리스는 로마 문화와 결합하면서 켈트인들의 전통을 고수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정체성을 현재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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