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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인류의 포기할 수 없는 꿈, 유토피아를 그린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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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6-에코와 조던2-델타는 생태 재앙이 불러온 지구 종말에서 살아남은 몇 안되는 생존자들이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곳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진 유토피아였다. 인간의 욕망이란 끝이 없는 법. 이들은 또 하나의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었다. 바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오염되지 않은 땅 '아일랜드'였다. 이들에게 있어 '아일랜드'는 삶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외부에서 날아든 나비 한 마리가 이들의 꿈을 처참하게 짓밟고 말았다. 

사실 그들은 스폰서(인간)에게 장기와 신체 부위를 제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이었다. 그들이 꿈꿔왔던 '아일랜드'는 결국 그들의 스폰서에게 장기와 신체 부위를 제공하고 맞는 비참한 죽음의 순간에 불과했다. 이완 맥그리거(링컨6-에코)와 스칼렛 요한슨(조던2-델타) 주연의 영화 <아일랜드>는 거대한 자본의 음모가 만들어낸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반유토피아)를 넘나드는 공상영화였다.

토마스 모어가 만들어낸 신조어, 유토피아(Utopia)는 인간의 이상향이다. 토마스 모어 전에도 유토피아는 다른 이름으로 존재했었고 이후에도 인간은 유토피아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책이나 영화, 그림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조선시대 화가 안견은 꿈 속에서 본 세상을 <몽유도원도>라는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렇다면 유토피아를 그린 소설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리고 이 소설들에서 그린 유토피아는 어떤 모습일까? 여기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제외하기로 한다.

유토피아가 최초로 언급된 책이라고 하면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와 [크리티아]를 꼽을 수 있다. 여기서 플라톤은 잃어 버린 화려했던 문명의 상징으로 아틀란티스를 언급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에 유래한 전설의 섬이 아틀란티스다. 전설의 섬, 아틀란티스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여전히 꿈의 상징이다. 영화나 만화 등으로 이 전설의 섬은 여전히 찾아야 할 문명으로 여겨지고 있다. 

플라톤이 언급했던 전설의 섬, 아틀란티스는 17세기를 풍미했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에 의해 재해석되기에 이른다. 베이컨은 그의 저서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 유토피아의 구체적인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베이컨이 묘사한 새로운 유토피아, 아틀란티스는 벤살렘 왕국이다. 벤살렘 왕국은 과학기술로 이룩한 유토피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벤살렘 왕국을 통해 과학문명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전파하고자 했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이탈리아 철학자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에 영감을 받아 저술했다고 한다. [태양의 나라]가 묘사한 유토피아는 생산과 결혼을 국가(교황)가 관리하는 교회왕국이었다. 철학자들의 유토피아에 대한 꿈은 볼테르의 책에서도 볼 수 있다. 본격적인 유토피아 소설은 아니지만 볼테르는 그의 철학 소설 [깡디드]에서 유일한 희망의 나라, 유토피아로 엘도라도를 언급하고 있다. 이 엘도라도의 모습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매우 유사하게 그려지고 있다.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1894~1963)는 유토피아로 팔라(Pala)를 창조해 냈다. 헉슬리는 그의 소설 [아일랜드]에서 팔라를 종교간 충돌이 없고 아이들은 어른의 소유물이 아닌 평등한 존재로 여겨지며 정부에서 피임약을 나눠주는 합리적인 유토피아로 묘사했다. 사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를 통해 디스토피아 소설로 더 유명한 작가다. 디스토피아 소설에 대해서는 다음에 소개하기로 한다.

에드워드 벨러미의 1888년작 [뒤를 돌아보면서:2000~1887]공동소유의 사회주의를 유토피아로 그려내고 있다. 서기 2000년 미국에 사는 리트 박사가 113년 동안의 긴 잠에서 깨어나 부르주아 출신의 줄리언 웨스트에게 자본주의를 거쳐 사회주의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해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 지구환경을 주제로 한 유토피아 소설도 있다. 어니스트 칼렌바크의 [에코토피아]와 [에코토피아 비긴스]가 그것이다. 소위 생태주의 유토피아 소설로 불린다. [에코토피아]는 미국 연방에서 탈퇴한 3개 주가 새로운 독립국가 '에코토피아'를 세워 환경친화적 법률과 제도를 만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캉유웨이의 [대동서]는 동양적 감성의 유토피아 소설이다. 그가 [대동서]에서 묘사한 유토피아는 가족과 국가가 해체된 사회다. 즉 모든 고통의 원인이 되는 가족, 국가, 인종, 성별, 계급을 초월해야만 유토피아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유토피아 소설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철학자나 소설가들이 창조해 낸 유토피아는 현실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결국 단순한 공상소설이 아니라는 의미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인 이명준이 그의 연인과 꿈꾸는 '푸른광장'처럼 말이다. 안타깝게도 남쪽도 북쪽도 그들이 꿈꾸었던 '푸른광장'은 아니었다.

다음에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포함한 반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소설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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