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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켈트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고 아일랜드의 전설적인 왕이 된 누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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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전설에 따르면 누아다Nuada는 투아다 데 다난Tuatha Dé Dannan(아일랜드 신화에 등장하는 전설적 민족)의 첫 번째 왕이었다. 투아다 데 다난은 초자연적인 존재이자 아일랜드 문화의 창시자였다. 그들은 북쪽에서 아일랜드로 왔고 섬을 장악하기 위해 원주민들은 물론 침략자들과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다. 누아다는 자신의 백성들을 아일랜드로 데려왔지만 섬에 도착한 후 오랫동안 왕좌를 차지하지 못했다. 전투에서 오른쪽 팔을 잃은 누아다는 더 이상 육체적으로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왕이 될 수 없었다. 대신 포모르Fomoire(켈트 신화에서 끊임없이 침략자로 등장하는 거인족)와 투아다 데 다난의 혼혈인 브레스Bres가 왕의 자리에 올랐다. 누아다는 의술의 신 디안케흐트Diancecht가 만들어준 ‘은 팔’로 다시 왕좌를 차지하고 백성들에 대한 통치권을 회복했다.

 

 

누아다는 다시 한번 그의 왕좌를 포모르 혼혈인에게 넘길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예의 신 루Lugh였다. 하지만 투아다 데 다난의 이 위대한 영웅은 다시 한번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아일랜드 최초의 왕이 된 누아다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와 초자연적인 요소를 결합해 켈트 문화가 아일랜드를 지배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누아다에 관한 이야기와 발전 과정은 아일랜드 외부에서 유래했다.

 

전설에 따르면 누아다는 아일랜드에 정착하기 전에 투아다 데 다난의 왕이었다. 숙련된 사냥꾼이자 전사인 누아다는 그의 백성들을 북쪽으로부터 아일랜드로 인도했다. 그는 타라에 궁궐을 세우고 투아다 데 다난을 정당하게 통치했다. 그러나 투아다 데 다난만이 아일랜드에 거주한 것은 아니었다. 투아다 데 다난이 아일랜드에 도착했을 때 이미 피르 볼그Fir Bolg가 섬을 통치하고 있었다. 또 섬 근처에는 그들과 적대적인 포모르가 살고 있었다. 누아다는 피르 볼그 왕에게 섬의 절반을 요구했다. 피르 볼그는 이 요구를 거부했고 두 민족간 전쟁이 시작되었다.

 

 

피르 볼그와 투아다 데 다난 사이의 전쟁은 정정당당했다. 심지어 양측은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상대방이 무기를 검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티러이 벌판 전투는 전투는 피비린내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누아다는 피르 볼그의 스렝Sreng과 맞서 싸웠고 이 과정에서 오른쪽 팔을 잃었다. 그러나 스렝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투아다 데 다난의 승리로 끝났다. 누아다는 그들에게 세 가지 선택권을 물었다. 즉 아일랜드를 떠나거나 투아다 데 다난과 땅을 나눠 갖거나 전쟁을 계속하는 세 가지 선택권이었다. 피르 볼그는 계속 싸우기로 결정했고 스렝은 누아다와 일대일 결투를 신청했다. 이 때 누아다는 자신이 한 팔이 없으므로 스렝에게 자신과 동일한 조건으로 결투할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스렝은 이 조건을 거부했고 결국 아일랜드의 네 지방 중 셋은 투아다 데 다난이, 나머지 한 지방은 피르 볼그가 갖는 조건으로 양측은 휴전을 결의했다.

 

전쟁이 끝나고 투아다 데 다난은 새로운 통치자가 필요했다. 누아다는 그들을 잘 이끌었지만 그들의 법에 따르면 왕은 육체적으로 완벽해야 했다. 전쟁에서 오른쪽 팔을 잃어버린 누아다는 유능했지만 이 조건에 부합하지 못했다. 누아다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투아다 데 다난의 지도자로 브레스를 지목했다. 어쨌든 브레스가 투아다 데 다난의 왕이 되었지만 이는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일반적으로 괴물이나 거인으로 묘사되는 포모르 출신이었다. 즉 브레스는 투아다 데 다난과 포모르의 혼혈이었다. 브레스는 포모르가 아일랜드를 정복할 수 있도록 많은 권리를 주었다. 브레스의 이런 정책은 투아다 데 다난의 분노를 샀다. 투아다 데 다난은 누아다를 다시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방법을 강구했다.

 

의술의 신 디안케흐트가 전투에서 잃은 누아다의 오른쪽 팔을 은으로 다시 만들었다. 그리고 마법을 불어 넣어 정상적인 팔의 기능을 회복시켰다. 이 때문에 누아다는 누아다 아르게틀람Nuada Airgetlam(은 팔을 가진 누아다)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디안케흐트의 아들 미아흐Miach는 결국 누아다의 은 팔을 살과 뼈 중 하나로 교체했지만 누아다의 은 팔은 다시 왕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투아다 데 다난은 브레스의 7년 통치를 끝내고 누아다를 다시 왕으로 옹립했다. 이로부터 누아다는 20년 동안 아일랜드의 왕으로 군림했다. 한편 왕좌를 뺏긴 브레스는 투아다 데 다난의 쿠데타를 인정할 수 없었고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의 요청은 거부되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포모르의 외면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파괴의 힘이 있는 눈을 가진 포모르의 왕 발로르Balor는 그를 돕기로 결정하고 군대를 모았다. 전쟁이 임박하자 또 다른 혼혈인 루가 합류했다. 브레스와 달리 루는 누아다 백성들에게 충성했고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루의 가치를 인식한 누아다는 루에게 투아다 데 다난을 이끌도록 했다. 제2차 티러이 벌판 전투에서 루는 포모르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누아다는 이 전투에서 전사했고 루는 누아다를 계승해 새로운 아일랜드의 왕이 되었다.  

 

투아다 데 다난은 종종 아일랜드인들의 조상으로 묘사된다. 투아다 데 다난은 초인적인 힘과 긴 수명을 가졌지만 불멸의 신은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으로 살다 죽었다. 일부 역사가들은 신화적 요소가 추가되었지만 투아다 데 다난의 이야기는 고대 역사를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누아다는 그의 백성들을 아일랜드로 이끈 지도자였고 그곳에서 그들은 신화 속의 원주민인 피르 볼그를 만났고 섬을 완전히 지배할 때까지 그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많은 고고학적 증거들은 수천 년을 통해 아일랜드로 사람들이 유입되었음을 보여준다. 투아다 데 다난의 궁궐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타라 언덕은 철기 시대 요새였지만 그 이전의 많은 무덤들을 간직하고 있다.

 

누아다 이야기는 유럽 대륙에서 켈트족을 아일랜드로 데려온 철기 시대 지도자 중 한 명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피르 볼그가 만약 아일랜드의 철기 시대 이전 거주자라면 포모르는 이후 침략 세력들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기독교 이후 이 이야기는 그들을 공격했던 바이킹과 비슷한 외부 침략자들의 전설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누아다 이야기가 전적으로 역사에 기반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에 관한 이야기들은 다른 유럽의 신화들과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고대 영국인들은 누아다와 동족으로 알려진 노덴스Nodens를 사냥의 신으로 숭배했다. 일부 역사가들은 이 두 인물을 북유럽 신화의 뇨르드Njord와 비교해 게르만족의 원형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누아다의 가장 눈에 띄는 ‘은 팔’은 역사적이라기보다는 신화적 특징을 보여준다. 북유럽의 티르Tyr와 웨일즈의 루드 루 에리안트Lludd Llaw Eriant도 한 팔을 가진 통치자였다. 루드 루 에리안트는 브리튼을 통치한 신이 아닌 영웅이었다. 그의 초기 이름은 누드 루 에리안트Nudd Llaw Eriant 로 아일랜드와 웨일즈, 브리튼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런 증거들을 감안할 때 누아다 이야기는 아일랜드 역사와 켈트족의 종교를 결합한 것으로 보인다. 누아다의 아일랜드 침략과 방어 이야기는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켈트족이 이 섬에 정착하기 전의 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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