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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괴짜 경제학자 아빠의 이유있는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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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는 교육, 문화, 환경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시장논리가 적용되는 예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시장논리가 뭔가? 적자생존이다. 문제 하나 틀린 학생은 사회 낙오자가 되고 돈 안되는 영화는 간판 걸 극장도 찾지 못한다. 아무리 친환경을 외치지만 거대한 국책사업 앞에서는 소리없는 메아리로 사라져간다. 결국 경제라는 공룡 앞에 사람들이 누려야 할 풍요로운 삶은 수치화되어 순위가 매겨지고 때로는 도태되고 때로는 국가의 통제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육이나 문화, 환경 등을 결코 시장논리와 경제논리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Parentonomics], '육아경제학'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 책 한 권이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사랑이 전제되어야 할 아이 키우기마저 시장논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뉘앙스가 풍기니 말이다. 그러나 지레짐작으로 책을 덮어 버린다면 후회막급일 것이다. 반전이 주는 재미를 모르는 독자들은 이런 우를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원제와 달리 [아빠는 경제학자]로 번역한 마치 시트콤을 연상시키는 제목에서 이 반전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진정 책읽기의 고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 기르기로부터 배우는 생생한 경제원리

이음 출판사의 신간 [아빠는 경제학자]의 원제는 [Parentonomics]이다. 이 책의 저자인 호주 멜버른 대학교 경제학 교수이자 게임 이론가인 조슈아 겐즈(Joshua Gans)는 우리의 우려와 달리 '경제적으로 아이 키우기'를 표방한 게 아니다. 자신의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어떻게 하면 경제학을 쉽게 받아들일까 고민하던 중에 그가 아빠로서 거쳐야 하는 육아 과정에서 체험했던 경제원리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 뿐이다. 부제가 말해주는대로 '아이 기르기로부터 배우는 생생한 경제원리'가 이 책의 목적이다.

"이 책은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경제학에 대해서는 전문가일지 몰라도, 독자 여러분도 뒤에서 보게 되듯이 양육은 경제학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이 책에서 나는 다양한 경제학 개념을 설명했지만, 그 개념이 육아 문제와 연관이 있을 때에만 그렇게 했다." -[아빠는 경제학자] 서문 중에서-

실제로 저자의 대학원 강의에서 자신의 육아경험은 꽤 효과를 봤던 모양이다. 학생들은 졸업한 후에도 그의 육아경험담을 기억하고 있었고 이 이야기들을 사회생활에 적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육아 경험담 속에 들어있던 경제학적 메시지가 학생들의 뇌리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경제원리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세 자녀의 아빠이기도 한 조슈아 갠즈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경제원리가 적용된다는 사실을 호주 역사상 사상 최고의 출생자 수를 기록했던 2004년 7월1일을 더듬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당시 호주 정부는 기존의 출산보조금과 출산수당을 출산지원금이라는 새로운 지원금으로 통합하여 자녀를 출산하는 모든 산모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이 새로운 제도의 적용시점이 2004년 7월1일이었다. 경제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이와 유사한 사례로 새 천년이 시작되었던 2000년 우리도 충분히 경험했던 바 있다. 

그 해 7월말 첫째 아이를 낳게 된 조슈아 갠즈의 육아일기는 둘째, 셋째 아이를 낳고 첫째 아이가 8살이 되는 해까지 계속된다. 그의 육아일기는 시트콤처럼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고 좀 인기가 있다고 해서 방영횟수를 연장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는다. 16부작으로 조슈아 갠즈 원작, 조슈아 갠즈 연출의 시트콤은 막을 내린다.

그는 아이들의 균형잡힌 식단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마케팅의 원리를 설명해 주고 청결과 정돈이라는 사소한 문제에서는 거시경제학이라는 거창한 경제원리(최소한 나에게는)까지 보여준다. 또 아이2의 학예회를 통해서는 산학협력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육아과정에서 자주 겪게 되는 경제원리는 인센티브(Incentive)다. 그렇지만 인센티브가 육아과정에서 철저하게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5장 용변가리기에서 저자는 인센티브의 부작용을 경험하게 된다. 저자 뿐만 아니라 보통의 부모가 겪는 가장 힘든 육아과정 중 하나인 배변훈련은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재미있는 시트콤인 동시에 경제원리가 전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용변을 제대로 가리는 아이들에게는 '젤리빈'이라는 인센티브를 제공했지만 나중에는 아이들이 이 젤리빈을 먹기 위해 일부러 배변시간과 횟수를 늘리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소위 '실적 조작'을 저지른 것이다. 다행히 저자는 인센티브를 이용한 배변훈련의 실패에서 탁아소라는 공공 서비스의 중요성을 깨닫는 기회를 경험하게 된다. 

 
▲ 조슈아 갠즈의 웹사이트에 소개된 [아빠는 경제학자], 원제는 [Parentonomics]

1장에서부터 16장까지 읽는 과정에서 일부 독자들은 저자의 의도와 달리 여전히 육아를 경제 논리로 바라본다는 비난을 할지도 모른다. 저자가 이 책을 내기 전 자신의 블로그에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처럼 말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는 해명보다는 현재 부모인 아니면 앞으로 부모가 될 독자들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겪게 될 다양한 상황들을 먼저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으로 양육되어야 할 아이들과는 별개로 부모에게 육아는 시간과 비용이라는 현실이 존재기 마련이다. 이 현실이 육아의 스트레스가 되지 않고 이 현실을 좀 더 슬기롭게 헤쳐나갈 대안을 찾는다면 [아빠는 경제학자]라는 육아에 대한 재미있는 접근방식이 미약하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이1,2,3식의 표현에서 경제학자이기 전에 아이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한 세 아이 아빠로서의 세심한 배려와 사랑이  엿보이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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