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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중국

붉은 악마로 부활한 전쟁의 신 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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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화에서 치우蚩尤Chiyou는 구려九黎라는 신족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또한 삼황오제(일반적으로 삼황은 수인, 복희, 신농을 오제는 황제, 전욱, 곡, 요, 순을 말한다) 시절 황제와 맞섰다가 패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몽족(베트남, 중국, 라오스 등에 사는 묘족) 사람들에게 치우는 현명한 신화적 왕으로 알려졌다. 그는 특히 출처와 견해에 따라 동이족이나 묘족 등의 조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오늘날 치우는 전쟁의 신이자 몽족의 전설적인 건국 아버지로 숭배되고 있다.

 

중국 송나라(960년 ~ 1279년) 시대 역사서 <율시>에 따르면 치우의 성은 강姜으로 염제의 후손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치우는 금속 이마에 청동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4개의 눈과 여섯 개의 팔을 가지고 있었으며 모든 손으로 끔찍하고 날카로운 무기를 휘두를 수 있었다. 일부 자료에서 치우는 다양한 신화적 소[牛]들과 관련된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머리는 두 개의 뿔이 달린 황소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몸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치우의 뒷모습은 곰을 닮았다고 한다.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나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81명의 형제가 있었다. 역사적 사료들은 종종 그를 과감하고 용감한 지도자로 묘사했다. 일부 자료들은 81명의 형제가 실제로는 그의 왕국에 있는 81개의 부족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치우는 별자리와 기후를 불러 일으키는 주문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탁록 전투에서 주문으로 안개를 소환해 황제와 그의 병사들을 둘러쌌다고 한다.

 

거의 모든 출처에서 치우는 구려족 지도자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의 정확한 민족적 소속은 상당히 복잡하며 출처에 따라 여러 부족이 언급되었다.

 

노나라(기원전 1046년 ~ 기원전 256년) 좌구명(기원전 556년 ~ 기원전 451년)이 쓴 <국어>(<춘추좌씨전>을 쓰기 위해 8국의 역사를 나라별로 적은 책)에 따르면 치우의 구려족은 고대 삼묘족과 관련이 있었다. 고대 탁록에는 치우를 몽족의 조상으로 기념하는 동상이 있었다. 탁록은 삼묘족과 묘족의 고향으로 여겨진다. 즉 몽족은 묘족의 후손인 셈이다. 현대 중국 학자들은 구려족과 삼묘족을 남방인으로 여긴다. 치우는 또 동이족의 조상으로도 알려졌다.

 

염제가 그의 부족을 이끌고 치우의 구려족과 갈등을 겪고 있을 때 승기를 잡지 못하고 치우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그는 탈출해 탁록의 황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시점에서 치우와 황제 사이의 서사적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쟁은 치우가 우위를 점하면서 10년간 지속되었다. 탁록 대전 중 치우는 짙은 안개를 내쉬고 햇빛을 가렸다. 황제의 군대가 위험에 빠진 상황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황제는 남향 전차를 발명한 후에야 전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때 치우는 심각한 폭풍을 일으켰다. 그러자 황제는 가뭄의 여신 여와를 불렀다. 그녀는 폭풍우구름을 날려 버리고 전장을 선명하게 드러나게 만들었다. 치우 군대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고 결국 그는 황제에 의해 살해되었다. 탁록 전투가 끝나고 황제는 모든 화하족의 조상이 되었다. 패배한 몽족은 산에서 살도록 강요 받았고 끝내 그들의 왕국을 떠나야 했다. 치우가 죽은 후 얼마 동안 피가 비로 내렸다고 한다.

 

사마천(기원전 145년 ~ 기원전 85년)의 <사기>에 따르면 진시황은 치유를 전쟁의 신으로 숭배했고 한 유방(기원전 247년 ~ 기원전 195년)은 항우(기원전 232년 ~ 기원전 202년)와의 결정적 전투 전에 치우 사당을 찾았다고 한다. 황제와 염제가 단독으로는 치우를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치우에게 전쟁의 신이라는 별칭이 붙게 되었다. 치우는 80번의 경미한 대결을 포함해 9번의 주요 전투에서 승리했다. 마지막 열 번째 전투에서 황제는 염제와 연합해 치우를 물리칠 수 있었다. 치우는 오늘날까지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신화에 따르면 치우가 절대 패배할 수 없다고 선언한 후 여와 여신이 태산에서 내려와 그에게 커다란 바위를 던졌다. 치우는 그 바위를 부수지는 못했지만 무사히 피할 수는 있었다. 이 때부터 ‘태산석감당’이라고 새겨진 일명 태산석은 악과 재난을 막기 위한 영적 무기가 되었다.

 

청나라(1636년 ~ 1912년) 화가 나평(1733년 ~ 1799년)에 따르면 황제는 부하들에게 치우를 참수하라고 명령했다. 치우의 머리가 그의 몸과 분리되어 있는 것을 보고…후에 현자들은 그의 이미지를 제물을 바치는 배에 그려 넣어 권력과 부에 탐닉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일으켰다고 한다.

 

대한민국 축구를 상징하는 붉은 악마의 캐릭터가 바로 치우천왕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치우는 자료에 따라 동이족을 포함한 다양한 부족의 조상으로 묘사되어 있다. 우리나라 상고사를 연구하는 재야 사학자들은 치우를 한민족의 선조로 보기도 한다. <한단고기>에 따르면 치우천왕은 배달국의 14대 천왕으로 기원전 2707년에 즉위해 109년간 나라를 통치했다고 한다. 물론 <한단고기>에 대한 논란은 배제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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