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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아르고 원정대, 신화여행의 돛을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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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년의 남자가 미국에 있는 고급 중국 레스토랑을 찾는다. 동양인답지 않게 키가 크고 골격이 시원시원한 웨이터가 이 중년의 남자에게로 가서 주문을 받는다. 웨이터의 명찰을 힐끔 쳐다본 이 중년 남자가 반가운 얼굴로 말을 시작한다.

"제이슨? 자네 이름이 제이슨인가?"
"자네는 자네 이름이 고대 그리스 영웅의 이름에서 왔다는 것을 아는가? 물론 고대 그리스에서는 제이슨이라고 하지 않고 이아손이라고 했지. 이아손이 황금 양털가죽을 찾아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어둡고 위험한 바다로 나간 아주 위대한 영웅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가?"

보통은 식당에 가더라도 주문을 하는 것 빼고는 웨이터와 말을 섞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이 오지랖 넓은 중년의 남자는 난감해 하는 웨이터를 붙잡고 열심히 신화 얘기를 해댄다. 이 중년의 남자가 바로 우리 시대 위대한 신화 이야기꾼 이윤기 선생이란다.

이윤기 선생의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의 대단원의 막을 장식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5]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몇 날 몇 일을 소풍가기 전 아이의 설레임으로 밤을 뒤적였던 나는 출간되자마자 덥석 주문부터 했다. 황금 양털가죽을 팔뚝에 걸친 이아손의 늠름하지만 민망한(?) 사진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제5권의 부제는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이다.

이윤기 선생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그 많은 얘기들 중 왜 하필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을 그의 신화 시리즈 마지막 이야기로 선택했을까? 이윤기 선생은 그리스 신화 시리즈 제5권을 통해 독자들의 상상력과 궁금증을 한껏 높여준다. 이윤기 선생이 들려준 아르고 원정대의 메타포(은유)를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신화를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5]가 이윤기 선생의 그리스 신화 시리즈 마지막이라니 아쉬움과 더불어 그가 어떻게 이 위대한 신화 시리즈를 쓰기로 마음 먹었는지 궁금해졌다.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신화를 읽는 동안 밤하늘을 쳐다보는 횟수가 잦아진 독자들이라면 누구든 선생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었을 것이다. 선생은 시리즈 마지막 권에서 비로소 이 궁금증을 해갈시켜 주고 있다.

그가 처음으로 그리스 꾸러미 여행을 했던 1999년, 마르마라해와 흑해 사이의 해변에 위치한 이스탄불의 '흐린 주점'(황지우 시인의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에서 따온 말이란다)에서 문득 [아르고나우티카(아르고 원정대 이야기)]라는 책을 떠올렸고 이 책에 등장하는 '쉼플레가데스'(박치기 하는 두 개의 바위섬) 때문이었다고 한다. 쉼플레가데스는 그리스에서 흑해로 들어가자면 꼭 통과해야 하는 포스포로스 해협 어디쯤이라고 한다. 신화에 따르면 배가 지나가면 양족에서 맹렬한 속도로 박치기를 한다니 쉼플레가데스를 통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쉼플레가데스를 통과한 그리스인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아손이다.  

결국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2,3,4권은 이윤기 선생이 독자들에게 제5권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을 들려주고자 거처야 했던 몸풀기 과정이요, 길라잡이였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제5권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을, 또 이윤기 선생이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을 통해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메타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선 제4권까지의 이야기들을 꼭 읽을 필요가 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5]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1]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에 등장하는 외짝신 사나이 이아손의 이야기의 재탕(?)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윤기 선생도 정중히 양해를 구하긴 하지만 신화를 좀 읽어봤다고 자부하는 독자라면 굳이 이윤기 선생의 사과를 받지 않으려 할 것이다. 신화는 문맥을 알아야 재밌다는 그의 말에 충분히 공감하기 때문이다.

제5권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제1권에 소개되었던 이아손 이야기의 훗일담이다. 이아손이 아르고 원정대를 꾸려 쉼플레가데스를 극복하고 황금 양털가죽을 되찾기까지의 모험담이다. 아쉽게도 내가 소개해 줄 수 있는 제5권의 내용은 이것뿐이다. 이윤기 선생의 책을 자주 읽다보니 나도 따라쟁이기 된 것 같아 미안할 뿐이다.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 이야기는 아니 신화는 직접 읽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없다. 그래도 아쉬움에 몇가지 정보만 소개해 준다면 여장을 즐겨서 우리를 웃게 만들었던 헤라클레스가 여기서는 또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과 에우리피데스의 그리스 비극에도 등장하는 메데이아의 이력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윤기 선생이 그리스 신화 시리즈 제1권 시작하는 글에서 언급했듯이 신화는 그 의미를 읽으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을 끝으로 신화 입담꾼 이윤기 선생의 그리스 신화 시리즈는 막을 내렸다. 그를 사랑했던 많은 독자들은 또다른 신화 이야기를 기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위대한 이야기꾼의 신화 이야기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올 여름 끝자락, 그는 헤라클레스가 어머니 헤라의 젖꼭지를 너무 세게 물어 젖이 흘러나와 생겼다는 은하수 어딘가에 떠있을 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5]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 맺음말은 이윤기 선생의 딸 이다희씨가 아버지를 대신하고 있다. 이다희씨는 그동안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사랑해 준 독자들에게 아버지를 대신해서 뜨거운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있어 더 행복했다.

이제 우리는 황금 양털가죽을 되찾은 이아손과 원정대원들이 했던 것처럼 아르고스(아르고 원정대의 배)에 탑승해 신화여행을 떠나야 한다. 선생이 떠났다고 해서 신화여행이 끝난 건 아니다. 우리는 선생이 들려주었던 신화를 토대로 각자의 황금 양털가죽을 찾기 위한 모험을 떠나야 한다. 아르고스를 타고. 선생이 그의 유고작으로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무언의 바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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