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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3국 버전이 주는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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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읽다보면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서로 다른 지역, 서로 다른 시대 신화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내용들이 발견되다는 점이다. 운이 좋았는지 최근에 읽은 몇 권의 책에서 우리가 어릴 때부터 익히 알고 있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동화로만 알고 있었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가 [삼국유사]와 [페르시아 신화], [그리스신화]에서 유래했다는 얘기는 어렴풋이 들어 알고는 있었으나 실제로 읽어보니 그 감흥이 새롭게 다가온다.

어떻게 해서 하나의 이야기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존재하게 되었을까? 아니 서로 다른 문화에서 발견되는 동일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자못 궁금해졌다.

우선 서로 다른 세 권의 책에 실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내용은 이렇다.

#1 [삼국유사] 경문대왕의 귀이설화

신라 48대 경문대왕의 이름은 응렴이다. 응렴이 왕위에 오르자 왕의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당나귀의 귀처럼 되었는데 왕후와 궁인들은 모두 이를 알지 못했지만 유독 한 사람, 임금이 머리에 쓰는 왕관을 만드는 복두장만은 그의 직업상 이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복두장은 이 일을 알고도 평생 남에게 이 사실을 발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복두장은 죽을 때 도림사(경북 월성군 내동면 구황리에 있었던 절) 대밭 속 아무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서 대나무를 보고 외쳤다. "우리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와 같다". 이 일이 있은 후 바람이 부는 날이면 대밭에서는 이런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같다".

왕은 이 소리가 듣기 싫어서 대나무를 베어 버리고 그 자리에 산수유 나무를 심었다. 그랬더니 이제는 바람이 불면 거기에서는 다만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는 소리만 들렸다고 한다.

 

#2 [페르시아 신화] 알렉산더 대왕과 풀루트

페르시아 신화에서 이방인이자 정복자인 알렉산더 대왕은 신의 반열에 올라서 있다. 그래서 알렉산더를 그린 그림에는 머리에 뿔이 달리 모습으로 나타나곤 한다. 또 알렉산더는 귀가 매우 컸다고 한다. 황금 왕관으로 자신의 귀를 숨기고 살았지만 그의 이발사만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알렉산더는 이 비밀이 누설될 경우 이발사의 귀를 잘라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이발사는 이 비밀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병을 얻게 되고 어느날 절망감에 사로잡혀 들판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그는 깊게 파인 우물을 발견하고는 머리를 우물 안 깊숙히 넣고 세계의 '왕 알렉산더 대왕이 커다란 귀를 가지고 있다'고 외쳤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이제까지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왕궁으로 돌아온다.

어느날 이발사가 외쳤던 우물 안에서 대나무 가지 하나가 뻗어올라왔다. 어느날 양치기가 그 대나무 가지를 꺽어 풀루트를 만들어 불었는데 그 소리가 마치 '알렉산더 대왕의 귀가 크다'는 것으로 들렸다고 한다. 들판을 지나다 우연히 이 소리를 들은 알렉산더 대왕은 이발사가 그의 비밀을 폭로했을 것으로 눈치채고 이발사를 추궁했다. 이발사는 혼자서 비밀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견뎌낼 수 없어 이 비밀을 안전하게 묻어둘 수 있는 우물에 대고 외쳤다고 이실직고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어느 누구에게도 비밀을 강제로 지키게 할 수는 없으며 결국에 비밀이란 모두 드러나게 될 것임을 알고 이발사를 용서해 주었다고 한다.

 

#3 [그리스 신화] 아폴론과 마르시아스 그리고 미다스왕

욕심많은 미다스왕은 디오니소스로부터 그가 만지는 모든 것을 금으로 변하게 하는 소원을 성취했다. 그러나 음식까지 금으로 변하는 통에 굶어죽게 된 미다스왕은 그때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디오니소스에게 부탁해 어느 강가에서 몸을 씻은 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이런 미다스왕에게는 신체 비밀이 한가지 있었다. 바로 귀가 당나귀 귀였다고 한다.

미다스왕은 왕관으로 항상 귀를 가리고 다녔지만 그의 이발사에게만은 숨길 수 없었다. 미다스왕은 이발사에게 절대 이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으나 이발사는 참지 못하고 땅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미다스왕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나서는 구덩이를 메웠다. 그런데 구덩이가 있던 자리에서는 나중에 갈대가 자라났는데 바람이 불어 갈대가 흔들릴 때마다 '미다스왕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미다스왕이 당나귀 귀를 가진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태양의 신이자 음악의 신인 아폴론과 입에 대기만 하면 아름다운 가락이 흘러나오는 아테나 여신의 피리를 줍게 된 강의 신 마르시아스가 어느날 음악 솜씨를 겨루는 시합을 하게 되었다. 이 시합의 심판으로 무사히 아홉 여신과 미다스왕이 초대되었다.

무사히 아홉 여신은 아폴론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미다스왕은 마르시아스 편을 들고 말았다. 이에 화가 난 아폴론은 음악의 신과 강의 신의 가락도 구분할 줄 모른다며 미다스왕의 귀에 당나귀 귀를 붙여주었다고 한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내용만은 동일해 보인다. 한국과 이란 그리고 그리스, 서로간에는 어떤 문화적 공통점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거리상으로도 멀리 위치해 있는 국가들이다.

역사학자나 지리학자들은 이에 대해 역사적 검증을 통해 문화 교류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놓겠지만 나는 그저 책을 좋아하는 일개 독자에 불과한 탓에 그 수준까지 분석할 능력이 없다. 다만 언어도, 피부색도, 종교도, 문화도 다르지만 다 사람사는 세상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신체 중에서 큰 귀는 비범함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그림에 신을 상징하는 뿔이 그려진 것도, 불상의 부처 귀가 유달리 큰 것도 이런 이유일게다. 일상에서도 큰 귀는 복을 상징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렇듯 서로 다른 문화지만 우리가 조금만 귀를 열고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면 거기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람냄새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다문화와 다종교 시대로 접어든 요즘 서로에 대해 이해하려는 단 1%의 노력만 있다면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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