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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민동석 책 권하는 경기도가 못마땅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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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쇠고기 졸속협상의 당사자가 언론의 침묵 속에 외교통상부 2차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청와대 뒷산에서 촛불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명박 대통령은 그를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공직자로서의 자기소신을 지킨 사람이라고 한껏 추켜세웠단다. 그가 누군고 하니 2008년 미국과의 소고기 협상을 '미국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는 굴욕적 발언을 했던 민동석 전 농림수산식품부 통상정책관이다.

타이완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는 자국민의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유보하거나 수입조건을 강화하고 있던 상황에서 우리는 타이완이나 일본보다 훨씬 완화된 수입조건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고 급기야 촛불정국의 단초를 제공했던 이가 바로 민동석 전 통상정책관이다. 그에게 미국은 우리 국민의 안전한 밥상에 우선하는 정신적인 절대자였는지도 모르겠다.

협상에 실패한 책임자를 다시 불러들이는 MB의 불도저같은 저돌성에 경외감마저 든다. MB가 쇼에 능하다는 사실은 지난 3년간의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었지만 머슴이 되어 섬기겠다던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헌신짝 버리듯 하는 모습에서 그동안 그가 흘렸던 눈물이 '악어의 눈물'이었음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야당과 시민단체의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는 표현을 넘어 국민들을 아예 링 위로 올라오라고 손짓하는 꼴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 조간신문을 펼쳐보는 순간 또 하나의 충격적인 기사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경기도가 '교양도서 구입 협조'라는 제목의 공문을 통해 민동석 전 정책관의 저서 [대한민국에서 공직자로 산다는 것]이란 책을 도내 각 기관에서 구입하도록 독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협상대표는 동네북인가'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협상 실패자의 자기변명서에 불과

한 것으로 보인다. 참여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촛불시위의 흔적을 지우려는 MB의 눈물겨운 노력에 경기도가 지원사격을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 책을 읽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서둘러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이 책에서 민동석 전 정책관은 촛불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한 협상을 했지만 결국에는 악의를 가진 거대한 이념세력에게 무너진 희생양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한다.그가 말한 '악의를 가진 거대한 이념세력'이란 촛불시위대를 지목한 것일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서평을 게재한 언론 대부분은 촛불시위에 비판적이었던 경제신문을 비롯한 보수신문들이다. 심지어 어떤 경제신문은 이 책을 '협상의 교과서'로 소개하고 있다. 실패한 협상을 주도했던 담당자의 책을 '협상의 교과서'로 소개한 이 대목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책읽기를 권장하는 내가 왜 한 지자체의 아름다운(?) 책 권하는 사회를 위한 정책에 발끈하고 나선 것일까? 이유는 딱 한가지다. 그 의도의 불순함 때문이다. 책도 읽어보지 않고 비판부터 시작하는 나와는 달리 직접 읽어보고 감명받은 독자도 있을 것이고, 또 모 언론의 소개대로 '협상의 교과서'로 인정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기도가 이 책의 구입협조공문과 함께 첨부한 홍보전단에서 민동석 전 정책관을 '왜곡과 선동의 광풍, 촛불 광풍에도 꿋꿋이 소신을 지닌 대한민국 공직자'로 소개하며 전 도민이 읽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니 그 의도가 뻔하지 않은가!

책 권하는 사회,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공동체가 있을까? 그러나 독서에 대한 순수성이 배제된 채 정치적 목적으로 특히 실패한 공직자의 자기 변명서를 교양도서로 포장해 이루려는 책 권하는 사회는 책 못 읽게 하는 사회보다 나을게 없어 보인다.

아직 11월에 읽어야 할 책들을 결정하지 못했다. 머릿속에 읽고 싶은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만큼이나 아직 읽지 못하고 방구석을 나뒹구는 책들이 많다. 이 참에 민동석 전 정책관의 [대한민국에서 공직자로 산다는 것]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보고 다시 글을 써볼까 고민중이다.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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