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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양심적 작가의 일갈; 규장각 도서 반환을 촉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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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장발장]으로 더 익숙한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 )의 동상이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세워진다고 한다. 그것도 서구에 대한 중국인의 분노가 서려있는 옛 중국황실의 정원이었던 원명원에 말이다. 빅토르 위고가 프랑스의 대문호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을진대, 중국에 빅토르 위고의 동상이 세워진다니 그 사연이 궁금했다.

홍콩의 유력 일간지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그 사연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우리도 중국과 같은 과거 역사를 경험했고 또 그 역사가 지금도 진행중이기에 가볍게 넘길 수 없어 그 전문을 번역 소개하고자 한다. 

150여년 전 베이징 북쪽에 있는 원명원 약탈로 비난받아온 영국과 프랑스는 여전히 중국인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단 한 명의 인물을 제외하고 말이다. 19세기 유명한 작가인 빅토르 위고, 최소한 그의 동상만은 원명원 약탈 현장에서 환영받는 유일한 프랑스인이다.  

"박물관에 침입해 방화와 약탈, 파괴를 자행한 2명의 도둑은 보물이 가득 담긴 자루를 매고 낄낄대며 현장을 떠났다. 그 도둑 중 한 명은 프랑스였고 또다른 한 명은 영국이었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중국 여행]이라는 그의 책에서 150년 전 중국 황실의 정원이었던 원명원 약탈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원명원 관리소장인 첸 민지에에 따르면 프랑스와 영국의 '범죄적이고 야만적인' 행위를 비난한 최초의 서양 작가인 빅토르 위고를 기념하기 위한 실물 크기의 동상이 원명원에 세워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첸은 원명원 약탈 150주년 행사에 영국이나 프랑스 고위인사는 초청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기념식 기간에는 국제 심포지엄과 전시회 및 갈라 퍼모먼스도 함께 열릴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기념행사는 역사적 사건의 민감성을 감안해 순수한 민간교류 차원의 행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여전히 영국과 프랑스가 1860년 2차 아편전쟁 당시 원명원 약탈을 자행했던 굴욕적 사건에 대해 타협의 여지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원명원 물시계의 일부로 청동으로 된 12지신상 중 토끼머리상과 쥐머리상이  국제경매회사인 크리스티에서 경매가 진행중이라는 점이다. 작년 2월에 알려진 이 사건은 중국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결국 문화재 관리국은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의 사업거래에 대한 정밀조사를 의뢰했다. 중국인들의 분노는 원명원 약탈이 미국과 유럽, 일본의 조사기관과 박물관으로부터 약탈품목 관리를 약속받은  유물전문가 집단의 소행이었다는 점이다.

중국정부에 따르면 서구열강에 의한 유물약탈이 150여만 점에 이른다고 한다. 또 이 유물들은 전부 회수되어야 한다는 게 중국 정부의 입장이다.

반면 칭후 대학교 리 둔 사회학과 교수는 중국 정부가 역사적 사건과 약탈 품목에 대해 말할 합법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원명원 약탈유물에 대한 중국 정부의 피해의식은 중국이 그동안 이를 외면한 채 증오만을 가르쳐왔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리 둔 교수는 또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보고 피해의식 대신에 어떻게 이 지경이 됐는지 자문해 보는게 어떨까요?

리 교수는 대중들도 원명원 약탈로 인한 손해가 1950년대 후반 대약진 정책과 1966년부터 1976년 문화혁명 기간 동안 마오쩌뚱의 홍위병들에 의해 자행된 문화재 약탈로 인한 손해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또 타이완의 역사학자이자 [잃어 버린 천국:원명원]의 저자인 왕용쭈는 원명원 약탈 사건이 서구열강의 야만적인 침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본토 근대화에 대한 고통스런 경종을 울려주었다고 말한다.

"역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계속 전진해야할 때입니다. 잊은 게 아니라 용서할 뿐이라는 영국의 유명한 속담처럼 말이죠"

프랑스가 약탈해 간 규장각 도서의 반환을 촉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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