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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은 정말 향기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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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꽃을 보며 성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바치는 꽃 한송이는 세상 그 어떤 선물보다 진한 감동을 준다. 꽃이 발하는 빛은 눈을 즐겁게 하고 그 꽃이 풍기는 향기는 심신을 평안하게 해준다. 그런데 향기없는 꽃이 있단다. 그야말로 '앙꼬없는 찐빵' 신세란 말인데, 바로 모란이 그렇단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모란을 꽃 중의 왕으로 여겼다. 서양에서 장미를 꽃의 여왕으로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신라시대 설총이 신문왕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지었다는 [화왕계]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할미꽃은 꽃들의 왕 모란에게 아첨하는 장미를 경계하라고 간했으나 듣지 않았다. 그러자 할미꽃은 '요염한 꽃을 가까이 하면 충신을 소원하게 여긴다'며 떠나려하자 왕이 크게 깨닫고 사과했다."

아름다운 자태라면 여느 꽃에도 뒤지지 않을 동서양의 화왕(化王)인 모란과 장미가 한 쪽의 시각에서는 왕과 간신으로 묘사되니 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그 자태는 봐주는 이의 마음에 따라 결정되는가 싶다. 볼품없이 꼬부라진 할미꽃은 충신을 상징한다니 더 말해 무엇하리!

또 우리 조상들은 모란을 꽃 중의 꽃이라고 했다지만 현재 모란은 그만한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한 것 같다. 평양의 모란봉, 남파간첩의 암호명 모란봉....어쩌면 우리는 남들은 이미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 이데올로기를 여지껏 품에 꼭 쥐고 꽃이 주는 아름다움마저 느끼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겠다던 모윤숙마저 대표적인 친일작가였다니 인간세상에서 겪는 모란의 수난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참, 꽃 이야기에 푹 빠져 본분을 잊고 괴발개발 옆길로 새고 말았다. 모란은 정말 향기가 없을까? 아니다. 세상에 향기없는 꽃이 어디 있겠는가! 빛과 향기로 벌과 나비를 유혹해야 대를 이을 수 있거늘...아마도 선덕여왕과 관련된 일화 때문일게다. [삼국유사] '선덕왕의 지기삼사'편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덕만이 선덕여왕으로 재임할 당시 중국 당나라 태종이 붉은색, 자주색, 흰색의 세가지 색으로 그린 모란과 그 씨 석 되를 보내온 일이 있었다. 선덕여왕은 그 그림을 보더니 "이 꽃은 필경 향기가 없을 것이다."하고 뜰에 씨를 심도록 했다. 과연 거기서 꽃이 피어 떨어질 때까지 모란에서는 어떤 향기도 풍기지 않았다고 한다.

정말 당태종이 보낸 씨앗에서 나온 모란의 꽃이 향기를 풍기지 않았는지는 타임머신이 없는 한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사실여부를 떠나 선덕여왕의 지혜를 배우는 걸로 만족해야 할 듯 싶다. 선덕여왕은 죽기 전 신하들이 어떻게 모란꽃에 향기가 없는 걸 알았는지 묻자 당태종이 보내준 림에 나비가 없으므로 그 향기가 없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대답했다. 또 당태종이 나비가 없는 모란 그림을 보내온 것은 선덕여왕 자신이 혼자인 것을 희롱하기 위한 수작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선덕여왕의 모란 그림에 대한 반응은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모란에 나비를 같이 그려넣지 않았다고 한다. 모란은 '부귀와 명예'를, 나비는 '80세'를 상징하는 탓에 모란과 나비를 함께 그렸을 경우 부귀와 명예가 80세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영원히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바램은 인지상정일터이니 말이다.

문득 내가 죽어 환생해서 꽃으로 태어난다면 무슨 꽃으로 태어날까 궁금해진다. 다음 세상은 전생과 반대로 태어난다니 나는 어떤 꽃인지는 몰라도 여하튼 꽃으로 태어날 게 틀림없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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