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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아킬레스건의 유래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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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일리아스>/BC 8세기(?)

‘아킬레스건을 잡아라’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면 ‘약점’을 뜻하는 아킬레스건은 어디에서 유래됐을까? 트로이 전쟁의 영웅 중 한 명인 아킬레우스(Achileus)의 독특한 신체 구조에서 비롯되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인 아킬레우스의 어머니는 ‘지혜의 여신’으로 테티스이다. 테티스는 아킬레우스의 발뒷꿈치(아킬레스건)를 잡은 채로 스틱스 강(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을 돌아 흐른다는 강)에 담가 발뒷꿈치만 인간이고 나머지는 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의 특성을 지닌 발뒷꿈치만 상처를 입는다는 뜻에서 생겨난 말이다.

호메로스(Homeros, BC 9c~8c?)의 『일리아스』는 반신반인인 아킬레우스를 비롯한 트로이 전쟁 영웅들과 그리스 신들의 사랑과 증오, 질투를 그린 그리스 최고의 대서사시이다. 『일리아스』는 일리오스(트로이)의 이야기라는 뜻으로 10년 동안 계속되었던 트로이 전쟁 중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단 4일간의 치열한 전투를 그렸다. 호메로스가 남긴 수 십 편의 시 중 『오디세이아』와 함께 전편이 본문 그대로 전하는 시가 『일리아스』다.

『일리아스』의 시작은 트로이 원정에 나선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인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갈등으로부터 시작된다. 아폴론의 사제 크리세스가 자신의 딸을 아가멤논이 돌려주지 않자 아폴론에게 축원해서 그리스 연합군에게 역병을 내린다. 이 사건으로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를 모욕하게 되고 아킬레우스의 여인인 브리세이스를 빼앗아가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에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전쟁에서 손을 뗀다.

아킬레우스가 없는 그리스 연합군은 연일 패배하게 되는데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테티스가 여러 신들이 양군을 원조하지 않도록 해 달라며 제우스에게 간청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연합군의 계속되는 패배에도 싸움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던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친구이자 부하인 파트로클로스가 트로이의 헥토르에게 살해되는 아픔을 겪은 후 아가멤논과 화해하고 출전을 결심한다.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 준 특별한 갑옷과 투구를 착용한 아킬레우스는 출전은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킨다. 결국 트로이의 명장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살해되고 만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체를 전차에 달고 진영으로 돌아오는데 헥토르의 아버지인 프리아모스 왕은 어둠을 틈타 아킬레우스의 막사로 들어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서로의 처지를 이야기하며 헥토르의 시체를 받아 트로이 진영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 소설 『일리아스』를 영화화한 <트로이>, 브래드 피트가 주인공인 아킬레우스 역을 열연했다.

그렇다면 트로이 전쟁은 어떻게 발발했을까?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아킬레우스의 부모인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결혼식장에 황금사과를 던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이 이 황금사과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황금사과를 두고 헤라와 아프로디테, 아테나가 서로 싸우게 되는데 제우스는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결정권을 준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황금사과의 주인이라는 심판을 내렸고 아프로디테는 그 대가로 파리스에게 스파르타 왕인 메넬라오스의 아내인 헬레네의 사랑을 얻게 해 주었다.

이렇게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는 형 아가멤논과 함께 트로이 원정에 나서면서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었다.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
호메로스는 『일리아스』를 통해 천재 시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실존했던 역사적 사실을 그리스 신들을 빌려오는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뿐만 아니라 전쟁의 와중에 나타나는 인물들간의 갈등과 전투 장면들을 생생한 묘사를 통해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테티스여, 비록 슬픔에 싸여 있는데도 올림포스에 왔구려. 우리 신들은 헥토르의 시체를 두고 9일 동안이나 논쟁을 벌였소이다. 신들은 헤르메스에게 시체를 훔쳐오라고 하지만, 나는 그대가 이 일에 나서 주었으면 하오. 그대는 막사로 가서 아들에게 신들이 노했다고 말하시오. 누구보다도 내가 화를 내더라고 이르시오. 아마도 그는 나를 두려워하여 헥토르를 내 줄 것이다. 그럼 나는 이리스를 프리아모스 왕에게 보내어 아카이아 막사를 방문해 충분한 보화로 아들의 몸값을 치르게 하겠소”

서양 인본주의의 모태
흔히 서양 문화의 원류를 기독교로 대표되는 헤브라이즘과 그리스 문화로 대표되는 헬레니즘에서 찾는다. 헬레니즘의 대표적인 산물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이다. 인간과 같이 사랑하고 증오하고 질투하는 그리스 신들의 특징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그리스인들에게 신과 인간의 구분은 죽음뿐이었다. 즉 不死와 必死만이 신과 인간을 가를 뿐이라는 인간 중심의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이런 그리스 정신은 유럽의 문학, 정치, 사회, 예술 등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이탈리아의 문예 부흥기인 르네상스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일리아스』는 직접 읽어보지 않으면 ‘문학적으로 뛰어난 대서사시’라느니 ‘휴머니즘 세계관’이라느니 하는 평론가들과 역사가들의 평가를 이해하기 어렵다. 아쉽게도 우리의 교육현실은 『일리아스』같은 위대한 작품을 교과서에서 보여주는 단 몇 줄로 일괄하고 만다. 진정한 교육은 체험이고 실험이다. 그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일리아스』의 배경이 된 트로이가 실재했다는 역사임을 알게 해 준 것도 산경험의 결과물이었다. 독일의 고고학자인 슐리만은 어릴 때부터 접한 『일리아스』에 심취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1870년 지금의 터키 서쪽 지역에서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유적들을 발굴해 내는 위대한 업적을 거두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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