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화와 전설/그리스

죽음과 소생의 풍산 신, 아티스

반응형

식물의 신 아티스Attis 신화는 터키 북서부 프리기아에서 유래되었다. 아티스의 소멸과 죽음, 부활의 반복은 농업의 주기를 상징한다. 아티스는 메소포타미아의 두무지를 모델로 삼은 ‘죽음과 소생’의 풍산 신이며, 양 치는 목자에 기원을 둔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500년 경 무렵부터 기원후 400년 무렵까지 숭배된 신으로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시작되어 그리스와 로마 문화에서도 숭배된 신이었다.

 

식물과 농업의 신 아티스. 출처>구글 검색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악령 아그디스티스Agdistis는 아티스의 탄생, 죽음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아그디스티스는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신들은 이를 두려워했고, 그를 죽일 음모를 꾸몄다. 신들은 그에게 잠드는 약을 삼키게 하고는 남성 성기를 그의 발에 묶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아그디스티스는 잠에서 깨어나 일어났고 성기와 발을 연결한 줄이 팽팽해지면서 스스로 거세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 때 땅에 떨어진 그의 피는 대지를 비옥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한편 피가 떨어진 그의 발에서는 아몬드 나무가 자랐고 강의 신 상가리오스의 딸 나나는 나무에서 아몬드 열매를 따서 품에 안았다. 이 때 아몬드 열매는 사라졌고 나나는 아티스를 임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나는 아이를 버렸고, 숫염소가 버려진 아티스를 발견하고는 그를 돌봤다고 한다.

 

아티스는 자라서 머리가 길고 신을 닮은 잘생긴 청년이 되었다. 그는 미다스 왕의 딸과 결혼했다. 그러나 대지의 어머니 키벨레 여신이 그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아티스의 결혼식 날 질투심에 불탄 키벨레는 신부를 납치했고 아티스와 신부의 아버지를 미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티스와 그의 장인은 결혼식 하객들 앞에서 스스로를 거세했고, 신부는 자신의 가슴을 도려내는 엽기적 행각을 벌였다.

 

아티스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죽었다. 아그디스티스는 제우스에게 아티스의 몸이 절대 부패하지 않고 분해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빌었다. 비록 필멸의 인간이었지만 아티스는 추앙받고 숭배되었다. 그리스인들은 아티스를 프리기아 판테온의 일부로 편입시켰고 그를 식물과 농업의 신으로 추대했다. 이탈리아 마그나 마테르 대학에는 아티스 동상이 세워져 있다. 또 바티칸 박물관에도 그의 동상이 보관되어 있다. 이 동상들은 아티스가 거세 후 누워있는 자세로 왼손에는 양치기의 지팡이를 들고 있고 오른손에는 석류열매를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또 꽃으로 장식된 화관과 초승달을 의미하는 프리기아 모자를 쓰고 있다. 아티스 신전 사제들은 모두 그들이 모신 신과 마찬가지로 거세한 남성들이었다.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견된 아티스의 유물들은 서기 79년에 발생한 베수비누스 화산폭발 당시에도 아티스 숭배가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헬르쿨라네움은 폼페이와 함께 79년 화산폭발로 사라진 고대 도시였다. 한편 대지의 어머니 키벨레 여신이 아티스의 어머니였다는 설도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