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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잔혹 동화의 모티브가 된 크로노스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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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자식을 집어 삼키는 크로노스(Cronus). 출처>구글 검색

엄마 염소와 아기 염소 일곱 마리가 살고 있었다. 엄마 염소는 아기 염소들에게 늑대를 조심하라는 당부를 하고 먹이를 찾으러 숲으로 갔다. 잠시 후 늑대가 나타나 자기가 엄마라며 문을 달라고 했다. 원래 늑대는 변장술이 뛰어났기 때문에 아기 염소들은 진짜 엄마 염소로 착각하고 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집에 들어온 늑대는 시계 속에 숨어 있던 막내 염소를 빼고 모두 잡아 먹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막내 염소는 이 사실을 엄마 염소에게 알리고 둘은 늑대를 찾아 나섰다. 엄마 염소와 막내 염소는 풀밭에서 낮잠을 자던 늑대를 발견했다. 엄마 염소는 가위로 늑대의 배를 갈라 아기 염소들을 구하고 늑대의 배 속에 돌덩이를 채운 다음 꿰맸다. 잠시 후 잠에서 깬 늑대는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기 위해 강가에서 몸을 구부리는 순간 배 속의 무거운 돌덩이 때문에 강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림 형제(Jakob Grimm & Wilhelm Grimm, 독일)의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의 줄거리이다. 그림 형제의 유명한 잔혹 동화 중 하나로 이 동화의 모티브가 그리스 신화라는 것을 아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늑대가 아기 염소들을 통째로 삼키는 장면과 그리스 신화에서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자식에게 권좌를 빼앗길 것이라는 신탁이 두려워 자식들이 태어나자마자 집어 삼키는 장면이 그것이다. 또 막내 염소와 엄마 염소가 늑대의 배를 갈라 아기 염소들을 끄집어 내는 장면과 막내 제우스가 지혜의 여신 메티스의 도움으로 크로노스에게 약을 먹여 형제들을 토해내게 하는 장면도 닮았다.

 

이제 잔혹 동화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의 모티브가 된 크로노스 신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크로노스 신화가 잔혹 동화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의 모티브가 된 이유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크로노스(Cronus)는 아마도 가장 유명한 티탄 신일 것이다. 그는 비록 티탄 12신 중 막내였지만 우라노스, 올림피아 신들과 전쟁을 했을 때 형제들의 지도자이자 티탄의 왕이었다. 가이아와 우라노스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났지만 그는 가장 강력했다. 특히 그는 아버지의 권력을 빼앗았지만 결국 그의 아버지처럼 아들인 제우스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스 신화에서 크로노스는 태초의 시간의 신으로 시간은 파괴적이며 모든 것을 집어삼켜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크로노스는 그의 티탄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 우라노스를 제압하고 우주를 지배해 신화적 황금 시대를 열었다. 그리스 역사가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크로노스는 아버지의 권력과 우주의 지배자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고 한다. 우라노스는 그의 자식들인 헤카톤케이레스와 키클롭스를 지하세계에 숨겨 가이아의 분노를 샀다. 분노한 가이아는 부싯돌 낫을 만들었고 아들 크로노스를 설득해 우라노스를 거세하게 만들었다.

 

알다시피 크로노스에게 거세당할 당시 대지에 떨어진 우라노스의 피에서 기간테스, 에리니에스, 멜리아 등이 태어났고 바다에 떨어진 피는 파도 거품과 섞이면서 아프로디테가 태어났다.

 

우라노스에게서 권력을 빼앗은 크로노스는 다시 한번 헤카톤케이레스와 키클롭스를 지하세계에 감금하고 타르타로스의 옥지기 노파 또는 용 캄페(Campe)에게 그들을 지키라고 명령했다. 크로노스는 그의 누이 레아(Rhea)와 결혼해 황금시대를 통치했는데 당시 백성들은 법이 필요 없을 만큼 도덕적으로 완벽했다. 크로노스는 자식들을 많이 낳았는데 그 중에서도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의 딸 필리라(Philyra)와의 불륜을 통해 태어난 자식이 가장 유명했다. 아내 레아에게 불륜이 발각되자 크로노스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종마로 변신하고 도망쳤다고 한다. 한편 필리라는 부끄럽고 창피해서 펠라스기안 산등성이로 숨었고 그곳에서 지혜로운 반인반수 켄타우로스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케이론(Chiron)이라고 한다.

 

하지만 크로노스도 그의 아버지 우라노스와 같은 운명일 것이라는 신탁은 늘 그를 괴롭게 했다. 크로노스는 불길한 신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자식들을 낳을 때마다 다시 집어삼키는 엽기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데메테르, 헤스티아,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 등이 바로 그 자식들이었다. 결국 그의 누이이자 아내인 레아는 막내 제우스를 낳았을 때는 돌을 헝겊에 싸 갓 낳은 아들로 위장해 먹임으로써 가까스로 제우스를 구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의 일부 버전은 아말테아(Amalthea)라는 염소나 이다 산의 님프 아다만테아(Adamanthea)가 크로노스 몰래 제우스를 길렀다는 것이다.

 

제우스가 청년이 되었을 때 그는 아버지 크로노스가 삼킨 형제들을 다시 토하게 만들었고 이들과 연합해 10년 동안 티탄 신족과 전쟁을 벌였다. 양측의 근거지는 올림포스 산과 오트리스 산이었다. 이 우주 전쟁을 티타노마키아(Titanomachia)라고 부른다. 제우스로 위장했던 돌은 파르나소스 산 아래 피토에 세워졌고 인간들에게는 그 돌이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제우스를 필두로 한 올림피아 신들은 티탄 신족을 물리치고 그들을 타르타로스의 구덩이로 몰아넣었다. 또 지하세계에 갇혀있던 헤카톤케이레스와 키클롭스들을 풀어주었는데 그들은 올림피아 신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제우스에게는 번개를, 하데스에게는 쓰면 보이지 않는 투구를, 포세이돈에게는 삼지창을 만들어 선물했다고 한다.

 

크로노스는 종종 부싯돌 낫으로 묘사되는데 그것은 우라노스를 거세할 때 사용했던 무기였다. 그는 또 아테네의 열두 번째 달과 관련이 있는데 그 달에 개최된 크로니아 축제는 수확을 기념하기 위해 크로노스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아마 크로노스가 황금시대의 통치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크로노스는 아들 제우스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추수를 관장하는 신으로 계속해서 인간들에게 기억되었다.

 

크로노스의 최후에 대해서는 다양한 신화가 존재하는데 타르타로스에 갇혔다고도 하고 밤이나 어둠의 동굴인 닉스의 동굴에 갇혔다고도 한다. 또 이후의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의 그의 형제들인 티탄 신족들을 지하세계에서 풀어주었고 크로노스는 축복받은 사람들의 세계인 엘리시안(Elysian)의 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엘리시안은 오르페우스, 아테네 왕 판디온과 필리아의 아들 리코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아약스, 메넬라오스 등의 마지막 안식처였다.

 

한편 크로노스는 로마 신화의 새턴(Saturn)과 동일시되는데 고대 로마인들은 사투르날리아 축제를 열어 새턴을 기념했다. 새턴은 농업의 신으로 크로노스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숭배되었다. 수확용 낫을 휘두르는 묘사는 르네상스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크로노스를 위한 신전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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