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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중국

황제는 어떻게 중국인들의 조상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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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이 그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황제. 출처>구글 검색

모든 중국인들은 공통의 조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바로 황제(黃帝, Huangdi)다. 황제는 먼 훗날 중국이 될 땅의 첫 번째 통치자였다. 그는 기원전 2697년 황하 평원의 부족들을 통합했다고 전해진다. 황제는 네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네 개의 방향으로 자신의 땅을 바라볼 수 있었으며 그가 움직일 때는 많은 동물들의 행렬이 뒤따랐다. 도교신자였던 황제는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왕위를 내려놓고 영적 완벽을 추구했다. 결국 그는 신선이 되어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역사와 신화가 혼재된 전설은 황제에 대한 많은 논란을 야기시켰다. 신화적으로 황제는 창조신이며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도구들을 만든 발명의 신이었다. 일부 현대 학자들은 그가 실제 인물인 것처럼 역사에 기록된 신화라고 주장한다. 반면 고대 중국 학자들은 황제를 훗날 신화가 된 역사적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그렇다면 황제는 그의 딸인 가뭄의 여신 도움으로 바람의 신, 비의 신과 싸웠던 모든 중국인들의 신성한 조상이었을까? 아니면 고대 중국 왕조를 건설하고 지금은 산시성에 묻혀있는 고대 통치자였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황제는 정말 가장 초기의 도교 숭배자 중 한 명에 불과했을까?

 

아마도 황제는 이 모든 것들의 일부였을 것이다. 신화에 따르면 황제는 신하들을 시켜 수학과 문자를 최초로 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루조(嫘祖, Leizu)를 시켜 비단과 양잠을 발명했고, 네 번째 부인인 모모(嫫母, Momu)를 통해 거울을 발명했다고 한다. 한편 황제의 아버지는 소전(少典, Shaodian)이었고, 어머니는 부보(附寶, Fubao)였다. 부보는 불의 신 염제(炎帝, Yandi)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황제 자신도 달력이나 나침반과 같은 유용한 물건들을 직접 발명했다고 한다. 또 황제는 북을 발명했는데 전투용 북의 우레와 같은 소리는 아군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고 상대편의 병력을 흩어지게 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실제 전장에서 북소리의 위압감은 아군들마저도 동요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황제는 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현악기인 거문고도 발명했다고 한다.

 

그는 또 세계 최초의 의학서로 알려진 <황제내경>의 편찬에도 기여했다고 전한다. 즉 황제와 그의 신하이며 천하의 명의인 기백(岐伯)과의 의술에 관한 토론을 기록한 책이 <황제내경>이라고 전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진한 시대에 쓰여진 의서라는 것이 정설이다.

 

황제를 중국인들의 조상으로 묘사한 최초의 인물은 전한 시대의 역사가이자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司馬遷, BC145 ~ BC86)이었다. 사마천에 따르면 황제에게는 25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 중 14명이 황제의 성을 이어받아 수 천년 후 황하 평원을 가득 채울 부족이 되었으며, 중국 왕조의 혈통을 형성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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