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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오이노클로스의 비극적 최후, 과연 정당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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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에니아니아는 그리스 테살리 남쪽의 도티아 평원을 차지한 작은 지역이었다. 아에니아니아와 오에타에아 지역은 모두 스페르케이오스 강의 계곡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오에타에아는 하류 지역을, 아에니아니아는 상류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등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두 지역의 경계는 오에타 산에서 팀프리스토스 산에 이르는 활 모양의 고지대로 북쪽은 스페르케이오스 강의 상류 지역, 동쪽으로는 오트리스 산의 서쪽 돌출부를 경계로 하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에니아니아는 델포이 동맹의 일원으로 동맹 평의회에서 오에타에아와 함께 2표를 나눠 가졌다고 한다.

 

오이노클로스 왕은 신탁 때문에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다. 출처>구글 검색


하지만 아에니아니아인들의 삶은 평탄치 않았던 모양이다. 라피타이족에게 쫓겨 도티아 평원에서에피로스 지역으로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몰로시아와 카시오파이 지역에 정착했다. 아에니아니아인들은 이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더 남쪽으로 내려가 키라라는 지역에 새로운 정착지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삶도 극심한 기근으로 도탄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아에니아니아인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신밖에 없었다.

 

아에니아니아인들은 신전을 찾았고 드디어 아폴론의 신탁을 받았다. 신탁에 따르면 그들의 왕을제물로 바치면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흥분한 아에니아니아인들은 그들의 왕을 찾아가 돌을 던져 죽였다고 한다. 자기의 백성들을 이끌고 비옥한 땅을 찾아 카라까지 왔지만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던 것이다.

 

이 때 백성들에게 희생 제물로 죽은 아에니아니아 왕이 바로 오이노클로스(Oenoclus)였다. 오이노클로스의 죽음으로 아에니아니아인들은 더 이상 방랑 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집단의 극심한 생활고가 한 사람의 죽음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는지는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를 통해 전해 내려오는 그리스 전설이라고 한다. '모랄리아'는 '도덕', '윤리'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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