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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군주의 부활을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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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부활을 경계하라. 개발독재시대나 있을 법 했던 언론통제가 21세기를 사는 오늘에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한눈팔 겨를도 없이 노골적이다.

한편 2002년과 2008년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살펴보면 기존 선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주목할만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인터넷(미국대선에서는 트위터)을 통한 유세 활동이었고 결국 인터넷이 당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준 선거였다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단순히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기술적 발전을 뛰어넘어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직접 소통을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철권통치가 유지되고 있는 국가가 있고 새로이 권위주의 정부가 출현하고 있는 국가가 있는 게 현실이다. 직접 소통의 길이 열리면서 국민들의 정치를 보는 눈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를 거부한 채 정권연장에 혈안이 된 정부는 국민들의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교묘한 방법으로 억압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지 1년 반이 넘어선 우리나라도 이러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500년 전 마키아벨리의 명저 [군주론]은 단순한 과거의 추억이 아닌 현실을 되돌아보고 현실을 각성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사에서 마키아벨리만큼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바로 그가 메디치 국왕에게 바친 짧은 문건 때문이다. [군주론]은 처음에는 서신 형식이었으나 죽은 지 30년이 지나서 책으로 출간된 근대 정치학의 효시로 인정받고 있다. 인간 중심의 문예 부흥기인 르네상스 시대를 산 마키아벨리에게 혹독한 비평에도 불구하고 동시대를 이끌어간 인물 중 하나로 간주하는 이유도 기존에는 국가의 통치 형태가 윤리와 도덕이 강조된 정교일치 체제였으나 마키아벨리가 윤리와 도덕을 배제한 채 정치를 하나의 통치기술로 새롭게 조명했기 때문이다.

이 책이 공개되자 1599년 로마교황청은 [군주론]을 포함한 마키아벨리의 모든 저작물을 금서목록에 올렸고 1740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군주론]을 악덕을 권한 책이라고 매도했다.

급기야 프랑스의 법학자인 이노센트 젠틸레는 자신의 정치사상을 표명하기 위해 권모술수의 대명사인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당시 이탈리아 반도의 분열상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막강한 군주에 힘을 실어줄 수 밖에 없었던 ‘필요악’이라는 관점에서 마키아벨리를 옹호라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사적 기여도와 반시민사회적 주장에 대한 공과가 극명하게 대립된 인물이 마키아벨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럼 [군주론]의 어떤 구절이 마키아벨리를 ‘악의 화신’으로 만들었을까?

[군주론]은 전체 2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논란의 핵심이 되는 부분은 15장에서 25장에 걸쳐 주장한 군주의 자질과 군주가 갖추어야 될 행동규범이다.

분열된 이탈리아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막강한 군주와 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마키아벨리였기에 그의 주장 또한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먼저 그는 군주의 자질로 관용보다는 인색함을, 동정심보다는 잔인함을 꼽았다. 관용과 동정심은 군주를 무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란다.

“현재의 프랑스 왕은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자기의 부하들에게 전비(戰費)를 보충하기 위한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이는 평소에 돈을 아껴쓰는 인색함이 있었기 때문에 전시에 부대경지를 감당할 충분한 능력이 있었다.”

“케자르 보르지아는 잔인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 잔인성이 로마를 통일시켰고, 백성들을 일치단결하게 만들었으며, 국가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국민들의 복종을 낳게 했다.”

무엇보다도 [군주론]의 핵심이자 그를 권모술수의 대명사로 평가하게 만든 부분은 18장에 나타난 여우와 사자에 관한 내용이다. 군주는 반인반수의 자질을 갖추어 인간과 짐승의 특성을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섞어서 백성을 통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즉 군주가 올가미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여우의 지혜’가 있어야 하고 군주가 늑대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사자의 위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명한 군주는 그의 공약이 자신을 불리하게 만들 때에는 그의 말을 지킬 수 없으며 또 지켜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자질을 갖춘 현명한 군주의 행동규범으로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군주는 존경받지는 못하더라도 경멸과 증오는 피해야 한다.
군주가 새로운 영토를 차지했을 때는 원주민들에게 무장을 시켜서는 안 된다.
군주가 명성을 얻으려면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주변국들과 적절한 동맹을 맺어야 한다.
군주는 현명한 판단력으로 신하를 선택해야 하며 신하는 자신의 질문에 대해서만 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이 질문하지 않았는데도 평소에 바른 말을 하는 신하나 백성은 군주의 위엄을 떨어뜨리므로 조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군주들이 영토를 잃은 이유는 다름 아닌 무능한 군주 때문임을 강조하며 이탈리아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현명한 군주와 강한 군대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인간이란 참 이해하기 힘든 면이 많다.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기도 하지만 역사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잘못된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탈리아의 통일이 최우선 과제로 판단했던 마키아벨리에게는 그의 선택이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었다고 가정하더라도 백성이 주인이고 백성과의 소통이 국가 경영(?)의 기본이 된 오늘날 시민사회에서 마키아벨리를 모방하려는 것은 백성에 대한 무모한 도전임에 틀림없다.

광장(廣場)의 또 다른 이름이 ‘소통’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의 기원을 찾는 것도 ‘아고라’라는 광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광장]으로 유명한 최인훈은 사람에게는 밀실과 광장이 있는데, 광장으로 나오는 길은 저마다 다르다고 했다. 이게 바로 광장의 본질이다.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들이 부딪치면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내는 곳이 광장이고 민주주의이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철권을 휘두르는 강력한 군주가 현명한 군주였을지 모르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광장을 열고 광장에서 부르짖는 외침에 귀를 열 줄 아는 군주가 현명한 군주가 아닐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작은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져 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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