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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손수건을 떨어뜨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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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익스피어의 <오셀로(Othello)>/1604년

중세시대 전장에 나가는 기사들은 갑옷 속에 부인이 준 손수건을 고이 간직했다고 한다. 또 토니 올랜도 앤 돈(Tony Orlando & Dawn)의 명곡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에서도 감옥에서 출소한 주인공은 옛 애인에게 여전히 자신을 사랑한다면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손수건)을 매달아 달라고 노래한다. 이쯤되면 손수건이 사랑의 징표라는 사실은 분명해 졌다. 

그런데 여기 애인에게 받은 손수건을 잃어버린 댓가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주인공이 있다. 바로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의 주인공 오셀로와 그의 연인 데스데모나이다. 물론 악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오셀로의 기수(旗手) 이야고의 간계로 사랑에 대한 의심이 싹트게 되지만 비극의 결정적인 원인은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에게 선물한 손수건이었다.

<오셀로>가 세익스피어의 또다른 비극인 <햄릿>, <맥베스>, <리어왕> 등과 다른 점은 개인의 비극이 국가적 혼란의 원인으로 발전하지 않고 순전히 개인간의 갈등과 그 갈등으로 맞이하게 되는 비극이라는 점이다. 햄릿의 성격 유형에 관한 논쟁 중 구국 사명설도 햄릿의 우유부단함이 국가적 위기를 걱정하는 데서 비롯됐을 것으로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럼 오셀로와 데스데모나가 겪게 되는 비극의 과정과 비극적 결론을 통해 세익스피어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메세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결국 비극으로 끝나다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사랑은 처음부터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비극적 사랑의 결말을 도출해 내기 위한 세익스피어의 의도적인 복선은 아니었을까? 베니스 정부에 근무하는 오셀로는 이슬람계 흑인인 무어인이다. 그의 개인적인 매력에도 불구하고 데스데모나의 아버지인 브러밴쇼가 둘의 결혼을 반대하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로 정조준을 했건 에로스의 황금화살은 오셀로와 데스데모나를 사랑이라는 끈으로 묶게 된다. 영화건, 연극이건 인생사 악역이 없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쓰고 데스데모나와 오셀로는 전장인 사이프러스섬으로 떠나게 되고 여기서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카시오에게 오셀로 장군의 부관 지위를 빼앗긴 이야고는 복수를 결심하고 오셀로와 데스데모나가 사이프러스섬으로 이동한 첫날부터 그 계획을 실행해 간다. 먼저 캐시오가 술에 약한 점을 이용해 소동을 일으키게 하고 부관의 지위를 박탈당하게 만든다. 이어 이야고는 데스데모나를 접촉해 캐시오의 복직운동을 유도하고 동시에 오셀로에게는 데스데모나와 캐시오가 부적절한 관계인것처럼 간계를 꾸미게 된다.

사랑의 힘이 바위를 뚫을지라도 가늘지만 쉼없이 내리는 이간질의 이슬비는 그 사랑마저도 파괴할 수 있는 법. 이야고의 계략에 애인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무너져가던 오셀로는 어느날 자신이 데스데모나에게 선물로 주었던 손수건을 캐시오의 손에서 확인하는 순간 그동안의 사랑은 포말처럼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캐시오가 갖고 있던 손수건은 데스데모나가 떨어뜨린 것을 이야고의 아내 에밀리어가 주워서 똑같이 본떠 짠 것이었다. 이 또한 이야고의 의도된 계획이었다.

결국 데스데모나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오셀로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데스데모나의 비극적 죽음과 함께 진실이 밝혀지게 되고 오셀로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오셀로가 무어인이 아니었다면 이야고의 간계가 둘의 사랑을 이렇게 쉽게 갈라놓을 수 있었을까? 사랑의 비극에 심장박동이 요란스러워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야 진실을 깨닫는 인간의 나약함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죽인 후에야 그간 일어났던 일들의 진실을 알게 된다.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오셀로는 한없이 나약했던 인간 오셀로의 모습에 무한한 슬픔을 느끼게 되고 또다른 비극, 자살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인간이기에, 너무도 나약한 인간이기에 강철같은 사랑도 보잘것 없는 말장난에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살인과 자살이라는 비극적 결말은 오셀로가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 비극이라는 막장 앞에 다다르기 전에 인간이라는 존재의 보잘것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역설은 아닐까? 오셀로는 자살하기 직전 다음과 같은 마지막 대사를 남긴다.

"사실 그대로 나를 전해주길 바라오. 나를 조금이라도 두둔하거나 악의를 개입시키거나 하지 말아주시오. 말하자면 이렇게 적어주시오. '분별은 부족했어도 진정 깊이 아내를 사랑한 사람이었다. 경솔하게 남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속임수에 넘어가 극도로 당혹하여 어리석은 인도인처럼 자기의 온 민족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진주를 스스로 팽개쳐 버렸다. 생전 울어보지도 않던 자가 이번만은 슬픔에 못 이겨 아라비아의 고무나무가 수액을 흘리듯이 억수같이 눈물을 쏟았다....'이렇게 써주시오."

손수건을 떨어뜨리지 마라. 누군가 당신의 사랑을 질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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