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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이집트

알렉산더와 카노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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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이 시리아에서 다리우스 3세가 이끄는 페르시아 군대를 격퇴한 후 그의 군대를 이끌고 이집트로 진격했다. 당시 이집트인들은 24살의 마케도니아 왕(알렉산더 대왕)의 군대를 해방군으로 인식했다. 심지어 그를 태양신의 아들인 파라오의 귀환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집트 성직자들은 알렉산더 대왕이 어릴 적부터 그의 실제 아버지를 이집트 태양신인 아문-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아문-라를 서부 이집트 사막 깊숙한 곳에 있는 오아시스인 시와 신탁소의 제우스-아몬과 동일시했다.

 

이집트의 고대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 출처>구글 검색


시와 신탁소 제우스-아몬이 알렉산더 대왕의 진짜 아버지일 거라는 믿음은 한 때 도도나의 제우스 신탁소 성직자였던 신비스런 어머니 올림피아 여왕에 의해 어린 알렉산더 마음에 깊게 새겨졌다. 올림피아스 여왕은 그녀가 제우스의 아들 디오니소스처럼 세계를 하나로 묶을 신성한 영웅 아들의 엄마가 될 운명이라고 믿었다. 기원전 357년 올림피아스가 마케도니아의 필립 2세와 결혼했을 때 이집트는 그리스이 오랜 적대국이었던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올림피아스와 필립 2세의 결혼식 당일 올림피아스는 제우스-아몬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한다.

 

알렉산더의 꿈은 단지 세계를 정복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지식과 지혜에 봉헌될 도시를 만들고 싶어했다.  알렉산더가 꿈꿨던 도시는 도처에서 온 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인류를 위한 지식과 발견들을 공유하는 지적인 안식처였다. 어린 시절 알렉산더를 가르쳤던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티카>라는 책에서 그의 다양한 구상과 이상을 연구했고 그의 현명한 제자였던 알렉산더와 이 주제들을 토론했다고 한다.

 

▲헬레네가 카노포스의 무덤 앞에서 흘린 눈물에서 자라났다는 꽃 헬레니움. 출처>구글 검색 


알렉산더가 정복지 이집트에 건설한 새 수도 알렉산드리아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가 토론했던 바로 그 이상적인 국가였을까? 확실한 것은 수세기 동안 알렉산드리아가 보편적인 교육의 중심지였고 그곳 시민들이 자신들을 세계의 시민(코스모폴리탄)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사실 알렉산드리아가 정말 이상적인 도시였는지는 모르지만 코스모폴리탄이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디오게네스(Diogenes, BC 412~BC 323)가 어디에 사느냐는 질문에 나는 코스모폴리탄 시민이다라고 대답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로도스 섬의 건축가 디노클라테스가 알렉산드리아 도시를 설계했다고 한다. 그러나 새 도시의 얼개는 상 이집트의 테베와 고대 세계의 태양의 도시 헬리오폴리스처럼 이집트의 영향력 안에서 구상되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에는 두 개의 메인 도로 즉 카노포스 웨이(Canopus Way)와 소마(Soma)가 있었다. 카노포스 웨이는 동서로 소마는 북서로 뻗어 카노포스 웨이를 가로질러 아고라라고 불리는 지역을 형성하고 있었다.

 

 

여기서 카노포스 웨이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메넬라오스 함대를 조종한 전설적인 항해사이자 키잡이 카노포스(Canopus)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카노포스는 아미클라이 출신으로 메넬라오스가 트로이를 정복하고 헬레네와 함께 이집트로 돌아갈 때 탄 배의 키잡이였다고 한다. 카노포스는 외모가 수려한 젊은이였다. 그래서인지 뭇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이집트의 왕 프로테우스의 딸 테오노에도 카노포스를 사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카노포스는 그녀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다. 어쨌든 카노포스는 육지에 내러던 날 뱀에 물려 죽고 말았다.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는 카노포스의 시신을 묻고 그 자리에 묘비를 세워 주었다. 사람들은 카노포스가 묻힌 도시를 카노포스라고 불렀다. 한편 카노포스의 시신을 묻으면서 헬레네가 흘린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서 헬레니움(Helenium)이라는 꽃이 피었다고 한다.

 

그러나 몇몇 이집트 학자들에 따르면 카노포스 웨이의 유래는 고대 이집트 장례식 때 사용된 카노포스 단지라고 주장한다. 카노포스 단지는 고대 이집트에서 미이라를 만들 때 시신의 장기만을 따로 보관했던 항아리를 말한다. 이 신화에 따르면 카노포스는 사후세계에서 오시리스의 키잡이였다고 한다. 또 카노포스는 아르고 호의 키잡이이기도 했다. 신화에 따르면 카노포스와 아르고 호는 신들에 의해 별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만든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카노포스 웨이의 유래가 카노포스 단지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알렉산더가 이집트의 신 오시리스와 연관되었던 디오니소스와 헤라클레스의 후손이라는 전설에 주목했다. 그리스의 역사학자이자 저술가인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에는 헤라클레온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이곳에 오시리스 신전이 있었다고 한다. 카노포스 웨이가 확장되었을 때 바로 헤라클레온 근처를 지나간다고 한다. 어릴 적 헤로도토스가 쓴 책을 읽었던 알렉산더가 이런 내용을 알고 카노포스 웨이라는 이름을 지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최근에 헤라클레온이라는 마을이 실제로 발견되었다고도 한다.

 

정리하면 카노포스(Canopus)는 메넬라오스와 헬레네가 탔던 배의 키잡이 이름이기도 하고 고대 이집트에서 미이라를 만들 때 장기만 따로 보관했던 항아리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후세계를 지배했던 오시리스의 키잡이 또한 카노포스였다. 또 그리스 신화 속 아르고 호의 키잡이 이름도 카노포스였다고 한다. 이들 배와 키잡이는 모두 별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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