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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시인의 마을

21세기에 20세기 소월이 더욱 그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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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시집>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많은 이들은 주저없이 소월 김정식을 꼽을 것이다. 그가 떠난 지 1세기가 가까워 오지만 소월의 시 마디마디에는 여전히 수천년간 심장 깊숙이 새겨진 한국인의 정서가 오롯이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일까? 소월이 남긴 많은 시들은 노래로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부모', '진달래꽃', '산유화',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초혼', '엄마야 누나야' ...

그러함에도 소월이 20세기 과거 인물임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소월이 떠난 후 우리 사회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격언이 무색할 정도의 변화를 거듭해 왔다. 이 변화는 빛의 속도로 미래를 압도할 것이다. 변화와 더불어 한민족이라는 순혈주의는 다문화 사회라는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요구받고 있다.

그렇다면 소월의 노래는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오늘의 한국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할 수 있을까?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한다는 소월의 시가 검은색, 흰색 피부를 가진 이들에게도 공감과 감동을 일으킬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문학을 읽는 특히 시(詩)를 읽는 수고는 접어야 할 것이다. 한 편의 시가 100년이 지나도, 1,000년이 지나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동서고금을 초월해 심장을 뛰게 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장소를 떠나 변하지 않는 것은 당시의 시인도 사람사는 세상을 노래했다는 것이다. 사는 환경이 변했다고 사람사는 세상의 본질이 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왜 20세기 소월을 그렇게 그리워 하는 것일까?



돌아갈 고향을 잃어 버린 우리

언젠가 문화부가 운영하는 블로그인 <정책공감>에서 소월의 대표작인 '엄마야 누나야'를 인용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을 읽어본 누리꾼이라면 한 편의 아름다운 시가 이렇게 왜곡될 수도 있겠다 싶었을 것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현정부의 4대강 사업이 소월이 엄마와 누나에게 살자고 했던 강변을 되살리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서평 참고자료로 인용할 겸 해서 오랜만에 <정책공감>에 들어가 봤으나 그 글은 지워지고 없었다. 관련 기사만 몇 개 검색될 뿐이었다.

<정책공감> 전문 대신 기사를 인용해 보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강변 마을은 홍수 피해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제방을 따라 발달했다. 소월이 소망한 ‘강변’도 이런 강변 마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월은 자연제방 앞에 형성된 사주에서 ‘반짝이는 금모래 빛’을 보았을 것"이란다.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수천년간 비바람과 물에 부딪쳐 생긴 자연둑을 콘크리트 제방에 비유하는 당당함에 경의(?)마저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문명의 이기가 삶을 풍요롭게 할 지언정 마음의 풍요까지 가져다 줄 수는 없다. 회색빛이 삶의 곳곳을 침투할수록 흙이 주는 따뜻함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흙은 누구나 돌아가고 싶어하는 돌아가야만 하는 고향이다. 소월이 불렀던 뒷문 밖의 갈잎의 노래가 돌아갈 고향을 잃어 버린 현대인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세계는 콘크리트 제방을 허무는 데 만들 당시보다 더 많은 비용을 아끼지 않고 있다.

소월이 바라는 강변은 매케한 콘크리트 제방의 시멘트 냄새가 아닌  '되는 대로 되고 있는 대로 있는 무연한 벌'에서 맞이하는 상쾌한 아침일 것이다. 또 우리가 바라는 상쾌한 아침은 소월의 그것보다 더욱 절실한 지도 모른다.

무연한 벌 위에 들어다 놓은 듯한 이 집
또는 밤새에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아지 못할 이 비
신개지에도 봄은 와서 가냘픈 빗줄은
뚝가의 어슴푸레한 개버들 어린 엄도 추기고
난벌에 파릇한 뉘 집 파밭에도 뿌린다
뒷 가시나무밭에 깃들인 까치 떼 좋아 짖거리고
개굴가에서 오리와 닭이 마주 앉아 깃을 다듬는다
무연한 이 벌 심거서 자라는 꽃도 없고, 메꽃도 없고
이 비에 장차 이름 모를 들꽃이나 필는지?
장쾌한 바다 물결, 또는 구릉의 미묘한 기복도 없이
다만  되는 대로 되고 있는 대로 있는 무연한 벌!
그러나 나는 내 버리지 않는다. 이 땅이 지금 쓸쓸타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금, 시원한 빗발이 얼굴에 칠 때,
예서뿐 있을 앞날의 많은 변전의 후에
이 땅이 우리의 손에서 아름다워질 것을! 아름다워질 것을!

- <김소월 시집>, '상쾌한 아침' 중에서 -

 

일도 '빨리빨리', 사랑도 '빨리빨리'

소월이 가장 많이 노래했던 것 중 하나가 사랑이다. 그가 노래했던 사랑은 오늘날 우리의 사랑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사랑이었다. 헤어진 님이 가시는 길에 '진달래꽃 아름따다 바치는' 슬퍼도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 그런 사랑이었다. 그러나 소월이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고 했던 정제된 슬픔 뒤에는 세상 어떤 비유로도 표현할 수 없는 크나큰 원망의 심정이 담겨있다.

사실 '빨리빨리'는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된 우리 역사에서 그나마 오늘을 있게 한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의 산물이었다. 그런 '빨리빨리'가 어느 정도 살게 된 오늘날에는 삶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고 말았다. 심지어 사랑에까지도

사랑의 시작도 '빨리빨리', 사랑의 결말도 '빨리빨리', 사랑에서 '빨리빨리'는 단순한 사랑의 방식뿐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범죄까지 서슴치 않는 무서운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저만치'서 바라보고 둘이서 나란히 같은 곳을 바라보는 그런 여유가 사라진 지 오래다. 서서히 달궈지고 서서히 꺼져가는 그런 사랑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기도 하다.


임이 가신 뒤에도, 임이 나를 버린 뒤에도 임과 함께 했던 당시의 사랑만은 추억으로 간직할 수 는 없는 것일까?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오며는
어스레한 등불에 밤이 오며는
외로움에 아픔에 다만 혼자서
하염없는 눈물에 저는 웁니다.

제 한 몸도 예전엔 눈물 모르고
조그마한 세상을 보냈읍니다
그때는 지난날의 옛이야기도
아무 설움 모르고 외었읍니다

그런데 우리 임이 가신 뒤에는
아주 저를 버리고 가신 뒤에는
전날에 제게 있던 모든 것들이
가지가지 없어지고 말았읍니다

그러나 그 한때에 외어 두었던
옛이야기뿐만은 남았읍니다
나날이 짙어 가는 옛이야기는
부질없이 제 몸을 울려 줍니다

- <김소월 시집>, '옛이야기' 중에서 -

21세기에도 20세기 소월의 노래가 소중한 것은 시(詩)는 살아있는 생물이고 시대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전히 읽는 이의 몫인 까닭이다. 20세기 소월이 노래한 자연과 사랑이 물질 속에 갇혀 사는 21세기 우리에게 주옥같은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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