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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폴리네시아

너무도 사랑해서...랑이누이와 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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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땅과 하늘은 하나였다. 둘은 열렬히 사랑해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러니 세상은 암흑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천지창조는 그들을 떼어놓는 과정이었다. 전세계 대부분의 창조신화에서 보여지는 것이 바로 하늘과 땅의 분리다. 뉴질랜드 마오리족 신화도 마찬가지다. 다만 하늘과 땅의 분리를 반대했던 신의 분노로 세상은 한바탕 큰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 어쩌면 현재의 세상이 갖춰지는 과정일 것이다.

 

마오리 신화에서 랑이누이(Ranginui)와 파파투아누쿠(Papatuanuku)는 부부로 마오리 판테온의 최초이자 최고신이다. 랑이누이는 하늘의 아버지, 파파투아누쿠는 대지의 어머니로 불린다. 랑이누이는 지역에 따라 라키(Raki) 또는 라키누이(Rakinui)로도 불린다.

 

뉴질랜드 마오리족에게 랑이누이와 파파투아누쿠는 태초의 부모로 장기간의 분리되지 않는 성교를 하고 있던 하늘의 아버지와 대지의 어머니였다. 이 부부에게는 아들들만 있었는데 떨어질 줄 모르는 둘 사이의 비좁은 어둠에 갇혀 있었다. 아들들은 계속 성장했고 늘 햇빛이 그리웠다. 급기야 아들들 중 가장 악랄한 성격을 가진 투마타우엥아(Tumatauenga)가 곤경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부모를 살해하자고 제안했다


 대지의 어머니 파파타우누쿠와 하늘의 아버지 랑이누이. 출처>구글 검색


그러나 형이었던 타네(Tane)는 투마타우엥아의 제안을 거부했고 둘을 떼어놓자고 다시 제안했다. 이 제안에 찬성해 농사의 신 롱고(Rongo), 바다의 신 탕아로아(Tangaroa), 그의 형제이자 야생 음식의 신인 하우미아 티케티케(Haumia-tiketike)가 합류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랑이누이와 파파투아누쿠는 좀처럼 사랑의 포옹을 풀려고 하지를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숲의 신 타네는 랑이누이와 파파투아누쿠를 떼어놓을 수 있었다. 똑바로 서서 손으로 미는 대신 타네는 누워서 강한 다리로 랑이누이와 파파투아누쿠를 떼어 놓았다. 타네는 힘줄이 당길 때마다 절규하면서 밀고 또 밀었다. 이렇게 해서 랑이누이와 파파투아누쿠가 완전히 떨어져 하늘과 땅이 생겼다.

 

비로소 랑이누이와 파파투아누쿠의 자식들은 빛을 볼 수 있었고 처음으로 움질일 공간이 생겼다. 다른 자식들이 부모를 떼어놓자는 데 동의했지만 폭풍과 바람의 신 타휘리마테아(Tawhirimatea)만이 열렬히 사랑중인 부모를 떼어놓을 수 없다며 화를 냈다. 타휘리마테아는 서로 떼어질 때 절규하는 부모의 울부짖음과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약속했다. 그의 형제들은 그날 이후로 그의 분노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타휘리마테아는 하늘이 된 랑이누이에게로 날아가서 바람을 포함한 네 명의 자식들을 낳아서 1년 중 4/1씩을 다스리게 했다. 타휘리마테아는 형제들과 싸우기 위해 그의 자식들로 구성된 군대를 소집했다. 서로 다른 종류의 바람과 구름, 성난 돌풍, 돌개바람, 잔뜩 흐린 구름, 금방이라도 비를 내릴 듯한 구름, 허리케인 구름, 폭풍우 구름, , 안개 등이 타휘리마테아가 소집한 그의 자식들이었다. 그들은 타네가 다스리고 있던 숲을 맹렬하게 공격했고 결국 타네의 숲은 폐허가 되어 부패한 음식과 해충들만 남게 되었다.

 

그때 타휘리마테아는 바다를 공격했고 거대한 파도와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바다의 신 탕아로아(Tangaroa)는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 탕아로아의 아들 풍아(Punga)는 두 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물고기들의 아버지 이카테레(Ikatere)와 파충류의 조상 투 테 웨이웨이(Tu-te-wehiwehi)가 그들이었다. 타휘리마테아의 맹렬한 공격을 받은 물고기들은 바다로 도망쳤고 파충류들은 숲으로 도망쳤다. 탕아로아는 타네에게 손자들의 피난처를 마련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타네는 형인 투마타우엥아에게 카누와 그물, 낚시를 준비하게 해서 탕아로아의 손자들을 구할 수 있었다. 탕아로아는 복수로 카누를 덮치고 집을 쓸어버렸다. 땅과 숲에는 홍수를 일으켰다.

 

타휘리마테아의 다음 공격 대상은 그의 형제이자 경작의 신 롱고(Rongo)와 미경지의 신 하우미아 티케티케(Haumia-tiketike)였다. 롱고와 하우미아는 타휘리마테아의 공격에 공포를 느꼈지만 타휘리마테아는 어김없이 그들을 맹폭했다. 이 때 대지의 어머니 파파투아누쿠는 그들을 타휘리마테아가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주었다고 한다. 타휘리마테아의 다음 공격 대상은 투마타우엥아였다. 하지만 투마타우엥아는 타휘리마테아의 공격을 잘 견뎌냈고 드디어 신의 분노가 가라앉고 세상에 평화가 왔다고 한다.

 

투마타우엥아는 부모를 떼어놓으려했던 타네의 행동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새를 잡을 덫을 준비했다. 이후로 타네의 자식들은 더 이상 자유롭게 날 수 없었다고 한다. 또 숲에 그물을 설치해 탕아로아의 자식들은 해변에만 머물게 되었다. 투마타우엥아는 땅을 팔 호미를 준비했고 타휘리마테아의 공격 때 대지의 어머니가 숨겨준 그의 형제들인 롱오와 하우미아 티케티케를 잡았다. 대지의 어머니 파파투아누쿠가 땅에 숨겨주었으나 땅 표면에 그들의 머리카락이 보이는 바람에 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투마타우엥아는 비겁한 그의 형제들을 먹어치우고 말았다. 하지만 투마타우엥아가 유일하게 처벌하지 못한 형제가 바로 폭풍과 바람의 신 타휘리마테아였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인간은 폭풍과 허리케인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하늘의 아버지 랑이누이와 대지의 어머니 파파타우누쿠에게는 둘이 분리될 때 미처 태어나지 못한 자식이 몇 명 있었다. 이들이 어머니 배를 찰 때마다 생기는 것이 지진이라고 한다. 루아우모코(Ruaumoko)는 이 때 태어나지 못한 자식으로 지진과 화산의 신이 되었다. 타네는 하늘의 아버지가 제대로 옷을 입을 수 있도록 빛을 찾아 주었다. 그게 바로 별과 달과 태양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들의 사랑은 식지 않아서 하늘의 아버지 랑이누이(Ranginui)는 그의 연인이었던 대지의 어머니 파파투아누쿠(Papatuanuku)를 내려다볼 때마다 그리움에 눈물을 흘려 비를 내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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