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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어리석음의 대명사, 에피메테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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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속담에 '선물 든 그리스인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호의적인 태도로 위장한 적을 조심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속담의 어원은 저 멀리 신화 속, 아니면 역사 속 트로이(Troy)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게해를 사이에 두고 미케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연합군과 현재 터키를 중심으로 한 트로이군이 10년에 걸쳐 벌인 전쟁이 트로이 전쟁이다. 하지만 지루했던 전쟁의 종말은 싱겁기 그지 없었다. 그리스 연합군이 목마 속에 30여 명의 전사를 숨기고 침입해 기습작전을 펼쳐 트로이는 패망하게 된다. '선물 든 그리스인을 조심하라'에서 선물은 '트로이 목마'를 의미한다.


그리스 신화 속에도 선물을 잘못 받아 어리석음의 대명사가 된 이가 있다. 그는 선물을 잘못 받기도 했지만 선물을 잘못 주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그 흔한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 속에도 쉬 등장하지 않는다. 같은 배 속에서 태어난 형이 억압받는 자의 대명사가 되어 그림은 물론 여러 문학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가 바로 에피메테우스(Epimetheus)다. 코카서스의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는 그림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가 그의 형이다. 

에피메테우스는 티탄 신족으로 이아페토스(Iapetus)와 클리메네(Clymene)의 아들로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이다. '먼저 생각하는 자'라는 의미와 프로메테우스와는 반대로 '뒤늦게 생각하는 자'인 에피메테우스는 이름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을 많이 했다. 만물이 창조될 때 에피메테우스와 프로메테우스는 모든 짐승과 인간에게 각각의 재주와 능력을 부여하는 일을 담당했다. 하지만 에피메테우스는 앞뒤 재지않고 짐승들에게 모든 재능을 다 써버렸다. 즉 가지고 있는 선물이라곤 선물은 다 짐승에게 주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정작 인간에게 줄 선물이 남지 않았던 것이다.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결국 동생 에피메테우스 때문에 매일 간이 뜯기는 형벌을 받은 것이다.


인간과 짐승에게 선물 분배를 제대로 못했던 에피메네우스는 호의로 포장된 선물을 덥석 받음으로써 또 한번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의 도움을 받은 인간을 벌하기 위해 에피메테우스에게 선물을 하나 준비했다. 제우스의 계산된 선물이었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동생에게 선물을 받지 말 것을 당부했으나 에피메테우스는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아니 제우스의 선물인 판도라의 아름다움에 홀려 선물을 덥석 받고 말았다. 제우스의 선물은 바로 '판도라'였다. 알다시피 판도라는 제우스가 준 상자 하나를 열어 인간 세상에 온갖 불행을 가져다 준 여인이었다. 애시당초 에피메테우스가 판도라를 아내로 맞이할 때부터 예견된 참사였다. 


한편 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 피라(Pyrrha)는 프로메테우스의 아들 데우칼리온(Deucalion)과 결혼하게 되는데 이들은 제우스가 인간을 벌하기 위해 내렸던 대홍수에서 살아남아 인류의 새 조상이 되었다. 판도라의 상자 맨 아래에 그나마 '희망'이라는 것이 남아있어 인간이 절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에피메테우스의 어리석음보다는 프로메테우스적인 선견지명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건 모든 인간의 공통된 생각이 아닐까?

참고로 프로메테우스는 '프롤로그(Prologue)', 에피메테우스는 '에필로그(Epilogue)'의 어원이 되었다. ◈사진> 판도라에 반한 에피메테우스와 말리는 프로메테우스. 출처: 구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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