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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피리부는 사나이, 마르시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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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작은 도시 하멜른은 쥐가 많아 골칫거리였다. 심지어 쥐들이 사람들까지 공격하니 하멜른 시민들은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멜른 시 당국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 때 초라한 차림의 낯선 남자가 하멜른을 방문했는데 그는 시장에게 도시의 모든 쥐들을 없애줄테니 금화 천냥을 요구했고 시장은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시장은 내심 설마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남자의 제안은 허언이나 허풍이 아니었다. 남자가 도시 곳곳을 다니면서 피리를 불자 쥐들이 남자를 따르기 시작했고 급기야 도시의 모든 쥐들이 피리 부는 사나이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남자는 쥐들을 강가로 끌고가서 모두 물에 빠뜨려 죽였다고 한다.


피리 부는 사나이, 마르시아스


도시의 골칫거리가 해결되었지만 시장은 처음에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남자를 도시에서 추방해 버렸다. 얼마 후 남자가 다시 나타나 피리를 불었고 지난 번 때와는 달이 이번에는 도시의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남자는 130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도시를 떠나 외딴 동굴로 들어갔는데 그 후 피리 부는 사나이와 아이들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독일 하멜른에서 내려오는 전설을 그림형제가 동화로 재구성해 약속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마성의 연주 실력을 가진 남자가 그리스 신화 속에도 등장한다. 바로 관악기의 일종인 아울로스(Aulos) 연주의 대가 마르시아스(Marsyas)다. 

마르시아스는 원래 강의 신이었지만 그리스 신화에서는 숲의 정령 사티로스(Satyros)의 하나로 등장한다. 마르시아스는 반인반수로 피리의 일종인 아울로스를 불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훗날 마르시아스는 자신의 아울로스 연주 실력을 믿고 현악기의 일종인 리라(Lyre) 연주의 대가 아폴론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물론 그 댓가는 혹독했지만. 마르시아스와 아폴론의 숨막히는 연주 대결을 보기 전에 마르시아스가 아울로스를 손에 쥐게 된 배경에 대해 살펴보자.


그리스 신화에는 또 한 명의 대가가 등장한다. 베짜기에서는 인간 세상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여인이 있었다. 리디아의 아라크네(Arachne)였다. 그녀에 대한 주위의 칭찬으로 그녀의 시선은 지상이 아닌 천상으로 향했다. 직물과 공예의 여신 아테나(Athene)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급기야 신(아테네)과 인간(아라크네)의 베짜기 시합이 성사되었다. 그야말로 불꽃 튀는 명승부였다. 하지만 아라크네가 옷감 위에 신들을 비꼬는 그림을 수로 놓은 사건을 두고 신들은 경악했고 아테나는 아라크네를 거미로 변신시켜 평생 실을 뽑고 수를 놓는 운명으로 바꿔 버렸다.


마르시아스의 도전과 좌절, 신은 공정하지 못했다


이렇게 싱겁게 시합이 끝난 후 신들은 아테나를 위로하기 위해 잔치를 벌였다. 안정을 되찾은 아테나는 피리(아울로스) 연주로 신들의 호의에 보답했고 뛰어난 연주 실력에 신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이 때 장난꾸러기 에로스가 나타나 아테나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피리를 부느라 양쪽 볼이 툭 튀어나온 모습이 장난꾸러기 에로스에게는 무척이나 재미있는 광경이었던 것이다. 에로스의 이런 행동에 신들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테나는 거울로 피리를 불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았고 아니나 다를까 피리를 부는 자신의 모습이 그리스 3대 미인(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우스꽝스러웠다. 화가 난 아테나는 불던 피리를 천상 아래로 던져 버렸다. 이 피리를 마르시아스가 주웠던 것이다.  

우연히 피리를 얻게 된 마르시아스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했다. 급기야 주위에서는 그리스 신화에서 또 한 명의 리라 명수였던 오르페우스(Orpheus)를 능가한다는 칭찬까지 받았다. 소문은 천상에까지 퍼졌다. 하찮은 반인반수라고 생각했던지 아폴론이 마르시아스 앞에 나타나서는 자기와 겨뤄 이길 수 있냐고 물었다. 마르시아스는 아폴론의 제안에 동의했고 드디어 관악기와 현악기 연주 대가들의 불꽃튀는 명승부가 시작되었다. 이 때 심판관으로 등장한 이가 있었으니 프리기아의 왕 미다스(Midas)였다. 


둘의 승부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최후의 승부를 위해 아폴론은 각자의 악기를 거꾸로 연주하자고 제안했다. 일설에 의하면 아폴론은 연주와 노래까지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고도 한다. 어떤 방식이건 마르시아스에게는 절대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피리를 거꾸로 불 수도, 피리를 불면서 노래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시아스는 덥석 아폴론의 제안에 동의하고 말았다. 결국 대결은 아폴론의 승리로 끝났고 그 댓가로 마르시아스는 인간의 가죽을 쓰고 신의 흉내를 냈다고 해서 가죽이 벗겨지는 끔찍한 복수를 당했다. 마르시아스 뿐만 아니었다. 아폴론은 쉬 승자를 결정하지 못했던 미다스 왕에게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며 귀를 당나귀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혹자는 아라크네와 마르시아스의 신에 대한 도전과 혹독한 결과가 오만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생각이 다르다. 끔찍한 패배의 댓가를 알면서도 거부하지 않았던 도전 정신이 바로 인간의 힘이 아닐까? 사실 승부의 세계를 복수로 마무리한 신들의 처사가 더 옹졸하지 않은가 말이다. ◈사진>라우리츠 툭센(1853~1927)의 '아폴론과 마르시아스', 주세페 리베라(1591~1652)의 '아폴론과 마르시아스'. 출처: 구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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