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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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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슬픈 결혼식 축가, 임을 위한 행진곡 이승에서 맺지 못한 인연을 하늘에서 맺은 부부가 있었다. 1982년 2월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는 1980년 5월 27일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에게 사살된 윤상원과 1979년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이날 영혼결혼식에는 한 편의 노래극(뮤지컬)이 헌정되었다. 1981년 소설가 황석영과 당시 전남대학교 학생이었던 김종률 등 광주 지역 노래패 15명이 공동으로 만든 노래극 이 그것이었다. 바그너의 결혼 행진곡도, 세익스피어의 소설 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멘델스존의 결혼 행진곡도 없었지만 그 노래극의 마지막 합창 부분은 부부가 된 윤상원과 박기순을 위한 결혼식 축가나 다름 없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세상에서 가장 슬..
맵짠 러시아 텃세 vs 맵짠 연아 맵짜다 한국인 밥상에서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 김치다. 있으면 손이 가지 않은 때도 있지만 막상 없으면 가장 생각나는 반찬이 김치다. 김치 없는 밥상이란 제 아무리 산해진미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라도 허전하기 그지 없다. 또한 한국인의 김치를 대표하는 맛이 맵고 짜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코끝으로 전해져 오는 매운 냄새에 맛을 보기도 전에 고개부터 흔들고 본다. 각 국을 대표하는 음식 중에 비단 김치만 매운 것이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오래 사는 것보다 얼마나 건강하게 사느냐로 관심사가 옮겨지면서 김치도 일대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듯 하다. 맵고 짠 음식이 건강에 해롭다는 각종 연구 보고서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치라고 다 매운 것만은 아닌데, 가령 물김치나 동치미처럼 전혀 ..
책 사재기 파문과 좋은 책 고르는 방법 인간의 습성이란 참 무섭다. 이성적으로는 부정한 행위인 것을 알면서도 육체는 어느덧 이성의 통제 밖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걸 두고 관행이라고 하나보다. 잊을 만 하면 터지는 사재기 의혹이 유명 작가들의 절판 선언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어 이번 사건의 파문이 쉽게 사그러들 것 같지 않다. 지난 7일 SBS 시사 프로그램 '현장21'은 자음과 모음 출판사에서 황석영 작가가 등단 50주년 기념으로 낸 장편소설 와 김연수 작가의 장편소설 , 백영옥 작가의 이 사재기를 통해 베스트셀러로 조작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의혹은 사실로 밝혀지면서 그 파장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황석영 작가는 이번 사재기 의혹은 작가에 대한 모독이라며 의혹에 휩싸인 자신의 책을 절판시키고 출판권 회수는 물론 출판사를 상대..
부자들의 허위의식을 고발한 촌철살인의 한마디 섬섬옥수/황석영/1973년 드라마 속 가난한 여주인공 앞에는 늘 '실장님'이 등장한다. '실장님'의 포스는 외모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잘생긴 얼굴에 훤칠한 키, 게다가 상대가 하류인생일수록 더 깍듯해지는 매너까지. 어디 하나 빠진 구석이 없는 완벽한 남자가 드라마 속 '실장님'의 캐릭터다. 또 한가지 뻔한 사실은 '실장님'은 늘 재벌가 2세거나 속칭 잘 나가는 기업의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차세대 실력가라는 점이다. 그런 '실장님'은 꼭 한 여성의 비루한 인생을 책임진다는 게 알고도 속는 인기 드라마의 불편한 진실이다. 결국 그저그런 삶을 살아왔던 여자 주인공은 비로소 신데렐라가 되어 여성 시청자들의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 되기에 이른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란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노력이 아닌..
어떤 날도 소중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몰개월의 새/황석영/1976년 하얀 것이 차 속으로 날아와 떨어졌다. 내가 그것을 주워 들었을 적에는 미자는 벌써 뒤차에 가려져서 보이질 않았다. 여자들이 무엇인가를 차 속으로 계속해서 던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무수하게 날아왔다. 몰개월 가로는 금방 지나갔다. 군가 소리는 여전했다. 나는 승선해서 손수건에 싼 것을 풀어보았다. 플라스틱으로 조잡하게 만든 오뚝이 한 쌍이었다. 그 무렵에는 어직 어렸던 모양이라, 나는 그것을 남지나해 속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작전에 나가서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 중에서- 누구는 인생을 살만하다고 하고, 누구는 인생을 마지못해 산다고 한다. 살만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고 또 마지못해 산다는 말은 또 어떤 뜻일까. 누가 삶의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하..
고달픈 서민들의 이상향 삼포를 아십니까 삼포 가는 길/황석영/1973년 마당 앞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온갖 채소들로 가득한 뒤뜰을 나지막한 산이 내려다보고 아이의 눈과 같은 높이로 서있는 언덕배기에는 누렁 송아지와 강아지가 한가로이 술래잡기 하는 곳. 반나절에 한 번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주름진 노인의 얼굴에는 미소가 흐르고 굽이굽이 힘든 줄 모르게 고개를 넘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해가 내려앉은 곳. 질흙 같은 어둠 속에서도 이야기가 새어 나오는 곳. 누군가에게는 빛바랜 사진 속 풍경일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마음 속에 고이고이 담아둔 꿈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천박스럽다고 하지만 로또 한 장에 일주일이 희망인 서민들의 꿈은 소박하다. 아니 고달픈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민들의 꿈은 얕아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고 대..
남한 자본주의의 축소판, 강남을 말하다 황석영의 /2010년 1995년 6월29일. 전역을 3개월 앞두고 2년여 군생활을 마감하는 마지막 훈련을 마치고 복귀하는 날이었다. 며칠을 몸에서 삭힌 악취는 내무반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그 정체를 드러냈다. 사회와 격리되고 또 며칠은 더한 오지로 한번 더 격리되어 생활했으니 TV 속 세상이 궁금한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비로소 전우의 악취가 내 코를 자극하기 시작할 즘 TV 속 화면에 누구랄 것도 없이 동작그만을 하고 말았다. 분홍색깔 기둥이 텔레비전 양 기둥을 받치고 그 사이로는 무너진듯 한 건물 잔해들 위에서 여태 흙먼지가 날리고 있었다. 꿈이 아니었지만 분명 꿈을 꾼듯 했다. 꿈을 꾼듯 했지만 분명 현실이었다. 백화점이 무너졌단다. 대학 때문에 서울 생활 갓 1년 하고 군대에 온 지방촌놈에게 ..
전쟁이 남긴 가족의 상처 그리고 치유 송기원의 /1977년 전세계에서 한국처럼 전쟁의 잔혹성과 후유증이 국민들 개개인의 사생활 깊은 곳까지 침투해 있는 곳은 드물 것이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열강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국토는 허리를 잘리게 되었고 단일민족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던 가족의 이별, 그리고 전쟁. 형제끼리 총칼을 겨눠야만 했던 야만성과 고착화된 분단상황에 냉전적 이데올로기가 더해지면서 지금까지도 전쟁과 이념대립의 트라우마들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화합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데탕트 분위기와는 별개로 움직이는 사회. 바로 한국사회의 현주소다. 벌써 분단 1세대들은 세월의 무게에 쓰러져가고 있지만 이에 아랑곳없이 남과 북의 위정자들은 그들의 이해타산에 따라 날선 대립각만을 고집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