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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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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친구의 기막힌 이별과 어색한 재회 문순태의 /1985년 문순태의 은 최인훈의 을 떠올리게 한다. 해방 후 만주에서 귀국한명준은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경찰서로 끌려가 고문을 받게 된다. 이로 인해 현실에 눈을 뜨게 된 명준에게 남한의 현실은 타락했고 인간적 확증을 확신하며 살 수 없는 땅에 불과했다. 결국 인천에서 배를 얻어 타고 월북을 감행한 명준은 북한에서 아버지의 도움으로 노동신문 기자가 된다. 그러나 북한 사회 또한 그에게는 기계적 관료 사회에 불과할 뿐 인간이 인간됨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한국전쟁 중에 포로가 되고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을 선택하게 된다. 최인훈의 은 명준이 인도로 가는 배 위에서 딸의 환영을 보고 바다에 자살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문순태의 에서 의 명준과 같은 선택을 한 인물이 ..
단 5분간의 회담이 결렬된 이유 김성한의 /1955년 "저걸 좀 내려다보아라. 과거는 잊어버리자. 저걸 수습해야 할 거 아니냐? 요컨대 너와 나의 싸움이니 적절히 타협하잔 말이다. " "그게 역사죠. 역사는 당신과 나의 투쟁의 기록이니까." "그러나 이건 진전이 아니라 말세다." "당신의 종말이 가까웠으니까……" "내 종말은 즉 세상의 종말이 아니야?" "흥, 그거 또 괴상한 얘기로군." - 중에서- 프로메테우스와 신이 구름 위에서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며 단 5분간의 짧은 회담을 하고 있다. 그 사이 인간세상에서는 프로메테우스와 신을 대리하는 자들이 열변을 토해내고 있다. 그러나 회담의 아름다운 결정체가 타협이거늘 프로메테우스와 신 사이에는 접점이 보이지않는 평행선만 존재할 뿐이다. "지나치게 자기 재주를 믿는 것도 사고야. 이제 막다른..
젊은 박경리를 슬프게 한 것들 박경리의 /1957년 전쟁이 남기는 상처 중에 가장 치유하기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사회적 관계로 묶어 주었던 신뢰가 무너지는 것이다. 특히 '동족상잔의 비극'이라 일컫는 한국전쟁은 수천년 동안 이어내려온 민족적 동질감을 이데올로기라는 괴물이 침투해 철저히 파괴해 버린 경우다. 결코 우선일 수 없는 이념은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비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만들어 버리고 만 것이다. 영화 '만무방'에서 어느 깊은 산골에 사는 촌부가 낮에는 태극기를 걸고 밤에는 인공기를 걸어야 했던 것처럼 생존을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의 덫에 스스로 갖혀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린 게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한국문학의 거목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경리의 소설 는 이처럼 전쟁이 허물어버린 신뢰의 벽을 일..
딸이 사랑한 남자는 종놈의 자식이었다 손소희의 /1954년 과 의 저자 김동리가 첫째 부인이 자신의 문학세계를 이해해 주지 못해 방황하던 중 1948년 겨울 서울 명동의 '마돈나 다방(설마 요즘 다방과 같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없을 터...)'에서 만나 불같은 사랑을 한 사람이 바로 손소희였다고 한다. 두 사람의 로맨스는 어쩌면 천생연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손소희도 결혼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소설가 이호철이 한국일보에 연재한 기사에 따르면 한국전쟁 1.4후퇴 당시 부산에서 따로 살림을 차린 김동리와 손소희 집에 김동리의 본부인이 기습해 당시 부산중앙일보의 특종기사가 되었다는데 가두판매 역사상 최고의 판매부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후에 정식 부부가 되지만 각각 두번째였던 이들의 결혼생활도 오래가지 못하고 김동리가 새 안식처를 찾아 ..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두 여인의 서로 다른 선택 최인욱의 /1948년 진영은 호주머니 속에서 휴지를 꺼내어 타다 마는 사진 위에 찢어서 놓는다. 다시 불이 붙기 시작한다. 사진이 말끔히 타 버렸다. 노르스름한 연기가 차차 가늘어진다. 진영은 연기가 바람에 날려 없어지는 것을 언제까지나 쳐다보고 있었다. 내게는 다만 쓰라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 무참히 죽어 버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 진영의 깎은 듯 고요한 얼굴 위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겨울 하늘은 매몰스럽게도 맑다. 참나무 가지에 얹힌 눈이 바람을 타고 진영의 외투 깃에 날아 내리고 있었다. '그렇지. 내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지. 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 진영은 중얼거리며 참나무를 휘어잡고 눈 쌓인 언덕을 내려오는 것이었다. 1957년 《현대문학》에 발표된 박경리의 소설..
국가폭력을 대하는 두 작가의 같은 듯 다른 시선 임철우의 (1984년)과 이창동의 (1985년) 반값등록금 집회에서 야당 최고위원이 테러를 당했다. 평범한 우리네 이웃처럼 보이던 한 중년의 여성은 '김대중 노무현 앞잡이'니 '빨갱이'니 하면서 집회현장에 뛰어들어 정동영 최고위원의 머리채를 잡아흔들었다. 비단 정동영 최고위원만이 아니다. 최근들어 진보인사들에 대한 백색테러가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이 중년 여성에게 21세기는 여전히 '빨갱이' 소탕에 혈안이 된 반세기 전의 그 날에 불과했던 것일까? 분노보다는 연민과 안스러움이 앞서는 이유는 누가 그녀를 과거 속 악몽에 내던졌나 하는 것이다. 게다가 백주대낮에 야당 지도자를 상대로 자행된 테러에 대해 일종의 해프닝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찰을 보면서 또다른 형태의 국가폭력을 보는 것 같아 답답할 뿐이다. ..
우리는 제3인간형을 강요받고 있는 건 아닐까 안수길의 /1953년 요즘 한국사회를 보면 카오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땅과 하늘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뒤섞여있던 혼돈의 시대는 천지가 사람으로 바뀌었을 뿐 영락없는 닮은꼴이다. 녹색성장을 얘기하면서 땅을 파헤치고 공정사회를 외치지만 승자독식의 방정식은 점점 더 확고해져만 간다. 아이들이 미래의 희망이라면서 그들의 굶지않을 권리를 두고 이전투구가 한창이다. 학자금을 갚기 위해 학생들이 강의실을 떠나니 상아탑이란 말은 교과서에서나 들릴 뿐이다. 산업역군이니 수출역군이니 하는 사탕발림 뒤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노동자들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통일을 얘기하면서 서로의 허물을 헐뜯는 걸로 날새는 줄 모른다. 왜곡된 과거를 청산하자니 청산 대상자의 후예들이 견고한 권력의 성을 구축하고 있다. 앞으로만 굴러..
동화적 상상으로 깨버린 반공 이데올로기 황순원(1915~2000)의 /「신천지」52호(1953.5)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 접전 지역의 한 초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만무방'을 보면 주인공인 초가 주인여자는 낮에는 태극기를, 밤에는 인공기를 걸어두는 장면이 나온다. 전쟁의 참혹성과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 과거군사정권 시절 납북됐다 귀환한 사람들이 남쪽에서는 간첩혐의를 뒤집어쓰고 사는 경우도 허다했고 북파공작원들은 자신들의 임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국가로부터 버림받곤 했다. 한편 이들 납북자들과 북파공작원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준 정권과 단체를 향해 빨갱이라고 비난한다. 해방 후 찾아온 남북분단과 6.25전쟁은 정치·경제·문화·사회 등 한국사회 전반에 뒤틀린 질서를 태동시켰다. 이데올로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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