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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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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 권력인 시대의 현명한 대처법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성석제/1995년 호랑이가 소머리를 쓰고 곶감을 사칭하며 여우떼를 물리친다는 마해송의 동화 은 호랑이가 곶감을 무서워했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엄마는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호랑이가 잡아간다고 무서운 표정으로 말하지만 아이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세상에 무섭다는 것은 다 동원해 보지만 아이의 울음은 그칠 줄 모른다.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한 것은 엉뚱하게도 울지 않으면 곶감을 주겠다는 엄마의 단 한마디였다. 이 말을 밖에서 듣고 있던 호랑이는 곶감의 정체를 알지도 못한 채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한 엄마의 말에 곶감을 무서워하게 됐다는 내용이다.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한 엄마의 재치라고 할 수 있는 이 설화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실체도 없는..
긴급조치 9호 위반 리빠똥 장군, 이유 있었네 리빠똥 장군/김용성/1971년 박정희가 1972년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본따 만들었다는 유신헌법은 입법부와 사법부의 권한을 제한하고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대폭 강화해 영구집권을 가능하게 한 한국 현대사에서 대표적인 악법으로 꼽힌다. 결국 김재규의 총탄에 의해 무소불위의 권력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긴 했지만 최근 박근혜 전 대표가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면서 유신의 역사적 평가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역사적 평가가 끝난 사안을 두고 다시 역사적 평가에 맡기자는 그들의 논리를 보며 지난 5년 동안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자행되었던 '역사의 후퇴'가 다시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긴급조치는 유신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조치로 박정희는 긴급조치를 발동함으..
딸이 사랑한 남자는 종놈의 자식이었다 손소희의 /1954년 과 의 저자 김동리가 첫째 부인이 자신의 문학세계를 이해해 주지 못해 방황하던 중 1948년 겨울 서울 명동의 '마돈나 다방(설마 요즘 다방과 같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없을 터...)'에서 만나 불같은 사랑을 한 사람이 바로 손소희였다고 한다. 두 사람의 로맨스는 어쩌면 천생연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손소희도 결혼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소설가 이호철이 한국일보에 연재한 기사에 따르면 한국전쟁 1.4후퇴 당시 부산에서 따로 살림을 차린 김동리와 손소희 집에 김동리의 본부인이 기습해 당시 부산중앙일보의 특종기사가 되었다는데 가두판매 역사상 최고의 판매부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후에 정식 부부가 되지만 각각 두번째였던 이들의 결혼생활도 오래가지 못하고 김동리가 새 안식처를 찾아 ..
분지필화사건과 미국을 보는 또 하나의 시선 남정현의 /1965년 1965년 5월8일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인 《조국통일》에 한 편의 소설이 실렸다. 중앙정보부(지금의 국정원)는 부랴부랴 이 소설의 저자를 긴급체포했다.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저자에게 이 소설이 북한이 보내준 원고가 아니냐는 추궁이 이어졌다. 며칠 후 구속적부심에서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석방되었지만 1년 후 반공법 위반혐의로 다시 기소되었다. 한승헌 변호사 등이 무료변론에 나섰고 안수길과 이어령 등 동료문인들이 피고인측 증인을 자처하고 나섰다. 또 《창작과 비평》창간 편집인이기도 했던 문학 평론가 백낙청은 저자의 구속에 항의하는 글을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다. 결국 이 사건은 6개월의 실형으로 마무리되었고 피고인이었던 이 소설의 저자는 1967년 선고유예 판결로 풀..
MB만 비껴간 코미디 풍자, 과연 바람직한가 20세기 한국소설05/창비사 1980년대 KBS 코미디 프로그램 [유머 일번지] 중에 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비룡 그룹 임원 회의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기본 설정으로 한 당대 최고의 인기 코미디 프로였다. 비룡 그룹 임원회의에는 몇 명의 정형화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김회장(故김형곤), 쥐뿔도 아는 게 없지만 회장 처남이라는 이유로 자리를 버티고 있는 양이사(故양종철), 쓴소리만 해대는 그래서 늘 찬반신세인 엄이사(엄용수), 김회장 옆에서 딸랑딸랑 방울소리만 울려대는 영혼없는 김이사(김학래). 마치 도때기 시장 같은 비룡 그룹의 임원회의는 김회장이 주먹으로 자신의 이마를 때리며 “잘 되야 될텐데…”라는 말과 함께 끝이 났다. 이들이 쏟아내는 웃음 보따리는 힘겨운 시대를..
태석이 빨갱이가 된 사연 [20세기 한국소설] 중 채만식의 『도야지』/「문장」27호(1948.10)/창비사 펴냄 “1940년대의 남부조선에서 볼셰비키, 멘셰비키는 물론, 아나키스트, 사회민주당, 자유주의자, 일부의 크리스천, 일부의 불교도, 일부의 공맹교인, 일부의 천도교인, 그리고 주장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들로서 사회적 환경으로나 나이로나 아직 확고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잡힌 것이 아니요, 단지 추잡한 것과 부정사악한 것과 불의한 것을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과 바르고 참된 것과 정의를 동경 추구하는 청소년들, 그 밖에도 XXX과 XXXX당의 정치노선을 따르지 않는 모든 양심적이요 애국적인 사람들(그리고 차경석의 보천교나 전해룡의 백백교도 혹은 거기에 편입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사람을 통틀어 빨갱이라고 불렀느니라.” -『도..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게 뭐 있어' [20세기 한국소설] 중 채만식의 『논 이야기』/「협동」(1946.10)/창비사 펴냄 파출소 한 켠 긴 의자에는 늘 한 남자가 자고 있다. 넥타이는 반쯤 풀어져 있고 양복 윗도리는 의자에 걸쳐져 있으며 흰색 와이셔츠는 바지 밖으로 삐져나와 추레하기 짝이 없다. 신문지로 경찰서 아니 스튜디오의 환한 조명을 가리고 자고 있는 이 남자. 그도 평범한 늑대인지라 여우의 향기에 벌떡 일어나 방청객을 향해 사자후(?)를 토해낸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 방청객들은 박수를 넘어 열광적인 환호로 이 술취한 남자의 등장을 맞이해 준다. 많은 논란 끝에 폐지되었던 KBS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코너에서 박성광은 이렇게 세상을 향해 소리쳤다. 방청객들과 시청자들은 묘한 카타르..
도진개진 인생들의 도토리 키재기 [20세기 한국소설] 중 채만식의 『치숙』/「동아일보」(1938.3.7~14)/창비사 펴냄 ‘도진개진’이라는 말이 있다. 윷놀이에서 도가 나오나 개가 나오나 거기서 거기란 뜻일 게다. 표준어인지 사투리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 중 하나다. 한자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와 같은 말이다. 도토리가 제 아무리 크다 해도 재보면 다 고만고만하다는 뜻이다. 도진개진 인생들, 도토리들만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채만식의 『치숙(痴叔)』은 폼나는(?) 인생들이 너 잘났냐, 나 잘났다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채만식은 이들을 고만고만한 도토리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이들이 채만식에게 밉보인 이유를 들어보자. 채만식의 풍자는 전방위적이다. 『치숙』에서는 등장인물 모두가 풍자의 대상이 된다. 등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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