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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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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홍 사과로 떠올린 1894년과 1991년 그날 1894년 프랑스 육군 대위였던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더러운 유대인'이라는 군중들의 야유를 받으며 악마의 섬으로 유배당했다. 당시 프랑스 군부가 제출한 유일한 증거는 스파이가 남긴 편지 글씨였는데 드레퓌스와 필체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드레퓌스를 되살린 사람은 의 작가 에밀 졸라였다.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신문에 기고해 독일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유배당한 드레퓌스는 결백하다는 것과 프랑스 군 고위층이 범죄를 은폐했다는 것을 폭로했다. 당시 에밀 졸라는 비난 여론에 못이겨 런던으로 망명해야 했지만 결국 프랑스 지식인들의 노력으로 드레퓌스는 12년만에 무죄판결을 받고 누명을 벗었다. ▲에밀 졸라(1840년~1902년, 프랑스) 1..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내 사촌 별정 우체국장/김만옥/1986년 "당신은 지금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살기 좋은 세상' 이란 것이 '○○○은 ○○○이다'와 같이 정확한 정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각양각색인지라 선뜻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기도 하겠다. 그렇다고 해도 '소시민'이라고도 부르는 보통 사람들의 대답은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머리카락 한올한올마다에 굴곡진 인생의 자화상을 선명하게 아로새긴 사람들 집단에서는 더욱 더 그러할 것이다. 안방에서 클릭 하나만으로 지구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주말에는 바다 건너 휴양지에서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고, 전화 한 통이나 클릭 한 번으로 끼니마저 해결할 수 있으니 과거..
한국사람이 '어뢴지' 하면 미국사람 되나요 말의 사기사님네께/신동엽(1930년~1969년) 한 천년 졸아나보시지요 일제히 고개들을 끄덕대며 무슨 싸롱이라든가에 들어앉아 별들이 왜 별입니까 그것은 땅덩이지요. 아 그 유명한 설계사 피카소씨라시죠 아니, 저, 뭣이냐 그 입체파 가수들이라시던가요. 멋쟁이시던데요 새파란 제자들을 대장처럼 데리구 앉아. 농사나 지시면 한 백석직은. 품도 한창 아쉴 땐데. 염체 좋은 사람들 그래, 멀쩡한 정신들 가지구서 병신 노릇 하기가 그렇게나 장한가요 마음껏 흉물 쓰구 뒤나 자주 드나드시죠 양식은, 피땀 흘려 철마다 꼭 꼭 보내올릴께요. 뽕먹는 누에처럼 그 괴상한 소리나 부지런히 뽑아서 몸에 자꾸 감아보세요 「어떻게 되나」 참 훌륭도 하시던데요 어쩌면 그렇게도 꼭 같을까 미국사람을 참 훌륭히도 닮으셨어 조끔만 더 있으면..
직선을 그릴 수 없었던 한 만화가의 절규 직선과 독가스-병동에서/임철우/1984년 생각해 보세요. 난 지금껏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평범하고 소박한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야말로 약하고 힘없는 소시민 그대로지요. 게다가 보시다시피 겨우 오십 킬로그램 근처에서 체중기가 바늘이 왔다 갔다 하는 타고난 약골인 데다가 아직껏 닭 한 마리도 목 비틀어 죽여본 적이 없는 겁쟁이입니다. - 중에서- 그야말로 소시민이었던 이 남자가 지금은 정신병동에서 감호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숨통을 조여오는 독가스에 자기의 일은 물론 일상마저 위협받고 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 독가스의 정체는 군대에 있을 때 사방을 밀폐시킨 천막 안으로 방독면을 쓴 채 오리걸음으로 들어가 훈련조교들의 명령에 따라 방독면을 벗은 이삼 분 동안에 눈물 콧물 질질 흘렸던 기억을 떠..
금지된 사랑과 실천하지 못했던 지식인의 고민 이효석(1907~1942)의 /「춘추」4호(1941.5) 혹자는 이효석의 작품 중 세 편을 골라 ‘영서 삼부작’이라는 이름으로 묶기도 한다. 이효석의 고향인 강원도 평창을 비롯해 영서지방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일컫는 말일 게다. ‘영서 삼부작’은 (1936), (1937), (1941)으로 이 소설들에는 공통적인 주제가 있다. 고향과 핏줄과 근대화를 수용하지 못한 전통적인 생활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일제의 사상탄압과 위선적 문화정책이 시작되던 시기라는 점과 동시에 이효석의 말년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효석은 말년에 왜 그토록 향토적 묘사에 집착하였을까? 사실 이효석은 대학 졸업 후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조선총독부 검열계에 취직할 만큼 현실인식이 투철하지는 못했다. 한..
지식인이라고 다 지성인이 아니다 유진오의 /「신동아」39호(1935.1) 가 발표된 1935년 식민지 조선은 그 어느 때보다 일제의 사상탄압이 극심하던 시절이었다. 두 차례에 걸친 카프 맹원에 대한 검거 열풍이 있었고 문화정책이라는 미명 하에 조선의 전통적 가치관은 황국신민의 지위를 강요받고 있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많은 지식인들 특히 문학인들은 조선 청년들을 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모는 데 그들의 지식을 아낌없이 동원하곤 했다. 자발적이었건, 강요되었건 일제 말기 식민지 조선에는 지식인만 넘쳐날 뿐 지성인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시국이 되고 말았다. 의 저자 유진오가 문학인보다 정치인으로 더 기억되는 데는 이런 시대적 배경이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문학에 심정적 지지를 보냈던 동반작가로도 활동했던 유진오는 1939년 잡지「삼..
뺏기지 않는 놈은 도적질할 권리도 없다 [20세기 한국소설] 중 채만식의 『명일』/「조광」12~14호(1936.10~12)/창비사 펴냄 만일 내일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무슨 색깔일까? 노란색, 파란색, 흰색…아마 검정색이나 회색으로 내일을 표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일을 의미하는 또 다른 한자인 명일의 명 자도 ‘밝다(明)’라는 뜻이다. 새 날이 밝아온다는 직접적인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옛 사람들은 내일이 가지는 속성을 희망이고 꿈이고 기대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았을지 어설픈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여기 내일을 온통 회색빛으로 채색하고 있는 지식인이 있다. 그는 소위 룸펜(Lumpen) 지식인이다. 그에게 내일은 명일(明日)이 아니라 명일(冥日)이다. 채만식의 소설 『명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발표된 『레디메이드..
타협을 거부한 지식인의 핍박, 결국 親日로 돌아서다 현상윤의 /1917년 1992년을 잊지 못한다. 그해 총선이 있었고 대선이 있었다. 대학 새내기였던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성인이 되어 행사할 수 있는 투표라는 행위를 하게 되었다. 투표뿐만 아니라 직접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경험까지 했다. 나는 당시 백기완 대통령 후보와 민중당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물론 선배의 권유도 있었지만 소위 전교조 1세대인 나로서는 이미 고등학교 때 희미하게나마 현실에 눈을 떴던 것 같다. 그 당시 선거운동 참여도 나름대로는 자발적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이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기까지는 고민도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당시 선배들은 민중세력의 정치세력화를 두고 직접 참여하자는 쪽과 보수야당의 비판적지지를 통해 때를 기다리자는 쪽으로 나뉘었던 것 같다...